북한을 피고로 하는 손해배상소송의 사례가 축적되고, 이윽고 남한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인 제3국에서 이루어진 북한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소송까지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소송 사례는 북한의 불법행위를 심리할 때 재판규범이 어느 나라의 법률로써 지정되어야 하는지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남북한 사이의 법률관계에 대한 해석원칙인 남북한특수관계론에 따르면, 남북한 사이에서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 통일을 위한 동반자 관계의 규범영역에 포섭되는 것으로 보아 국제법원칙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자면 실체관계의 심리를 위하여는 준거법이 지정되어야 한다. 이때 국제법원칙을 유추한다면, 북한과 그 법질서에 외국에 준하는 실체를 인정하고 남한 국제사법에 따른 준거법 지정 규칙을 남북한관계의 성질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따를 수 있을 것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의 준거법은 일응 불법행위지의 것을 따른다. 이제 문제는 불법행위지가 어디인지를 확정하는 해석으로 모아진다. 특히 남한 법원이나 일본 법원에서 소가 제기되는 사례들은 예외 없이 북한이 위법하게 남한 주민 또는 일본 주민을 장기간 억류한 데 따른 것이다. 기존 국제사법학계의 논의를 따라 이를 격지불법행위로 보아도 최초 권유 또는 납치가 이루어진 남한 또는 일본의 법률과 억류가 계속된 북한의 법률을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선택의 여지 없이 북한 법률이 적용되는 경우 북한 손해배상법제의 특징인 전환된 증명책임, 법정된 배상액, 단기 소멸시효 등이 재판의 근거규범으로 타당한지 문제 되나, 그 자체만으로 공서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려워 그대로 적용하여야 한다. 몇 차례 선고된 판결들처럼 국가로서 북한 그 자체가 피고가 되는 경우 북한 손해배상법제상 국가책임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재판규범의 공백이 생긴다. 이는 법정지법인 남한 민법으로 보충하면 충분하고, 그 불법행위의 권력적 성질이나 장래 통일의 전망에 이끌려 남한 국가배상법 등을 고려할 일은 아니다. 이때 남한 민법은 국가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 손해배상법제의 태도가 남한 법질서상 공서에 어긋나 용인되지 않기에 보충적으로 적용되는 것일 뿐이므로 만일 제3국의 법률이 준거법으로 지정된다면 그에 따라 재판하여야 하고 남한 민법을 적용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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