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전반기 계응상은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연구활동을 수행한 이른바 떠돌이 과학자였다. 그는 일본의 제국대학에서 양잠학에 관한 교육과 연구 경험을 쌓았음에도 중국으로 건너가서야 연구활동을 활발히 벌일 수 있었다.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그의 자리는 보장되지 않았고, 해방된 후에도 그를 둘러싼 연구 여건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북한으로 올라간 후에야 국가적 지원을 받으며 과학연구의 전성기를 맞았다. 지역 이동을 할 때 그는 연구대상, 성과물과 일체가 되어 함께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계응상은 과학적 성과가 쌓임에 따라 보조적 연구자에서 연구집단의 선도주자로 성장해 갔다. 과학연구가 진척될수록 선택된 누에들은 자신이 자라온 자연 환경을 벗어나 더 거칠고 달라진 환경에서 살아가야 했다. 성과물은 해부 및 생리 연구에서 유전, 육종 연구로 바뀌며 학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성격도 강하게 지녔다. 이러한 그의 과학 여정은 과학적 생존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며 그 속에서 자신의 연구를 진전시키는 전략적 방식이었다. 지역 이동을 거듭할수록 그는 과학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올라섰고 연구집단의 중추적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국가가 중요하게 내세운 과학적 과업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손에 꼽히는 국가 최고의 과학자 반열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계응상을 통해 볼 때 그의 지역 이동은 조선인 과학자의 과학활동의 실례를 보여줌과 동시에 동아시아에서의 과학 순환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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