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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후 미국의 군사원조 시기 한국 공군 전력증강과 그 성과

The ROK Air Force's Build-up and Its Achievements during the Post-War US Military Aid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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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성훈
소속 및 직함 단국대학교
발행기관 미래군사학회
학술지 한국군사학논총
권호사항 13(4)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47-66
발행 시기 2024년
키워드 #정전협정   #한국 공군   #군사원조   #북한 공군력   #전력 증강   #조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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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미국의 무상군사원조 시기 공군의 항공기 전력증강 과정과 이에 따른 항공전력 운용을 위한 조직정비 등의 성과를 고찰했다. 이 시기 공군은 프로펠러식 수준에서 F-86기로 제트화했고, F-86D 전천후 요격기 및 F-5A 전투기, F-4D 팬텀기 등을 도입했다. 그 결과 공군은 1950년대 말에 제10전투비행단, 제11전투비행단 등 2개 제트 전투비행단과 3개 전술부대, 2개 전천후 요격비행대대를 보유함으로써 전술공군으로 전환했다. 1969년 9월 F-4D 팬텀기 비행대대인 제151전투비행대대의 창설로 아시아에서 최초의 팬텀기 보유국으로서 북한의 기습에 대응할 전력을 마련했다. 또한 공군은 1965년 통신 및 방공관제기구 등을 강화했고, 효율적인 지휘통제를 위한 작전사령부를 설치했고, 항공기를 수리할 수 있는 항공창 창설과 군수지원 분야의 체계적인 능력확보를 위한 군수사령부로 확대 재편 등으로 발전의 토대를 확립했다. 이러한 성과가 가능한 배경에는 정전 후 1960년대 말까지도 국방예산으로 병력 유지에 그쳐서 항공기를 구입할 수 없는 여건에서 제공권 확보를 위해 미군에 의한 전력소요 산정과 군사원조로 공군 현대화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공군력의 증강에는 북한 공군의 증강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한·미 양국은 정전 후 계속된 북한의 공군 증강에 큰 우려를 낳았고, 결과적으로 유엔군 측은 1957년 6월 21일 증강하는 작전물자의 반입을 금지하는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을 폐기했다. 이에 따라 공군력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공군의 증강도 구체화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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