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주적 주권국가 수립을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민중의 형성과 그 위상 정립의 문제성에 대해 주목하여 10월 항쟁의 성격과 문학사적 의미를 고찰했다. 해방기 민중은 이념과 선동에 함몰된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주권국가 건설의 당사자로서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역사적 존재였다. 특히 식민제국의 붕괴와 동시에 경제적 혼란에 휩싸인 해방기라는 특수한 시대의 문제성은 새로운 ‘점령자’이자 ‘해방군’이었던 미국(소련)과의 관계성 속에서 민중운동의 에너지를 분출-상실하게 만든 조건으로 작용했다. ‘10월 항쟁’은 해방기 민중을 결집하고 민주적인 주권국가 수립의 욕망과 방향성을 재확인하게 만든 분기점으로서, 남북한 문학장의 ‘민중’ 인식과 재현에도 결정적인 엇갈림을 만들었다. 이 글은 대구 출신의 월북작가 이갑기의 소설 「요원(遙遠): 항쟁의 서사」(1949)와 「보도자」(1950), 이동규의 「함성」(1947∼1948)에 주목하여, 10월 항쟁의 민중운동사적 의미와 재현의 언어들이 반미(反美)-반공(反共)의 역학 속에 함몰되어간 궤적을 탐색했다. 민중항쟁에 이념적 색채가 덧씌워지는 과정에서 남한에서는 항쟁을 의미화하거나 재현하는 활로가 막혔고, 미군정과 군경 폭력의 문제성은 은폐되었다. 북한에서는 남로당 숙청과 함께 ‘10월 항쟁’이라는 기표가 삭제되었다. 결과적으로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10월 항쟁’은 잊혀진 항쟁이 되었다. 그러나 10월 항쟁은 불과 2년 뒤의 여순항쟁과 제주4・3을 가능케 한 민중의 경험이자 역사적 자산이었고, 불행하게도 공권력에 의해 ‘반공’의 이름으로 민중을 잔인하게 학살할 수 있다는 반역사적 교훈을 남긴 사건이었다. ‘폭동’과 ‘항쟁’을 경유하여 남북을 비교항으로 두고 비극과 희망을 재현했던 엇갈린 관점은 미-소, 남-북이 경합했던 복합적 요인 속에서 냉전적 주체로서의 민중이 형성되고 역사화되었던 점령기의 망각을 담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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