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해방은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 한 일본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이 었으며, ‘신사참배’로 대변되는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해방이 곧 분단으로 이어지고 남과 북에 미군과 소군이 들어오면서, 일제잔재 해 소 문제가 친미 대 친소 문제로 변질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과 북에서 모두 ‘기독 교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움직임이 태동하나, 신탁통치 문제가 일어나 자 북쪽의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대거 월남하면서 남쪽에는 ‘친미우파’가 형성되 고 북쪽에는 ‘친소좌파’만 득세하게 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사그라들게 되었다. 이렇게 사회적 혼란이 심화되고 있는 중 남과 북에 서로 이념을 달리하는 정권 이 들어서면서, 남과 북뿐만 아니라 남한 내에서도 오로지 이념 문제로 민족과 기독교가 분열을 거듭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 결정적 사건이 1948년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후에 일어난 제주4ㆍ3민중항쟁과 여순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친일 경찰과 군인 등을 ‘애국자’로 둔갑시켜 대거 투 입하고 기독 청년을 비롯한 ‘반공청년단’이 이에 협력하였으니, 그 피해자가 된 일반 백성들에게는 ‘친일=친미=반공’ 인식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6ㆍ25전쟁을 일으켜 우리 민족의 이념 분쟁을 고착시켰으 므로, 그 근본 책임은 일제와 북한에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 엘을 분열시킨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온상으로 만든 아합의 죄악 도 문제이지만, ‘이스라엘의 배역’을 두려워하지 않고 따르는 ‘유다의 반역’을 더 의롭지 못하다고 하신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합왕을 그렇게 범죄 하게 ‘충동’한 ‘이세벨의 영’이 신사참배의 죄악과 더불어 우리 남한 사회에 여전 히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 참회하는 기도가 비판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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