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북한의 식량문제에 대한 대응으로서 1970년대 옥쌀의 주식화 및 토끼고기 섭취 캠페인을 다룬다. 북한에서 옥수수는 강냉이로 불리는데, 1960년대 말부터는 강냉이가루와 밀가루 등을 섞어 쌀 모양으로 가공한 것을 ‘옥쌀’이라 불렀다. 북한은 70년대에 주요 시·군에서 옥쌀의 생산시설을 건설, 확충하고 인민들에게는 옥쌀로 밥을 지어먹을 것을 독려했다. 1970년대 초반은 이상기후 현상으로 곡물 생산량이 급감해 주요 수출국이 수출량을 줄였고 이에 따라 식량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대두했던 시기였다. 특히 북한의 경우 급증한 인구로 인해 식량 수급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던 때였다. 이 시기 북한은 한편으론 옥쌀을 쌀 대용으로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곡물이 아닌 풀을 먹는 가축을 키워 고기로 먹으라는 운동을 전개했다. 풀 먹는 집짐승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 중 하나가 토끼였는데, 이는 토끼가 번식력이 매우 높고 빨리 크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옥쌀과 토끼고기 먹기 캠페인은 1970년대 북한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식생활 정책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선전에도 인민들의 옥쌀에 대한 인식이나 토끼고기에 대한 생활 속 수용 양상에는 도농간 차이를 비롯해 상당한 균열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1970년대 국가 주도 대용식으로서 옥쌀과 토끼고기가 선택되고 강제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인민들의 반응과 실제 수용은 어떠했는지를 고찰한다. 이어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던 ‘고난의 행군’ 이후 대중화되어 북한 인민의 식생활에 자리잡은 옥쌀과 토끼요리가 갖는 의미를 논의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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