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적은 7·4 남북 공동 성명(1972)·6·23 평화통일 외교 정책 선언(1973) 직후 남한에서 출간된 최인훈의 장편소설 『태풍』(1973), 북한에서 출간된 4·15 문학창작단의 장편소설 『피바다(血海)』(1973)의 전쟁 서사에 형상화된 남성 주체와 여성/자연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가상 역사’의 기법이 창출하는 경계 횡단과 시공간 변형의 양상들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남북한 남성 주체의 이동이 초시간적/비역사적 과거로서 부동하는 것으로 위치지어졌던 여성/자연과의 교섭을 통해 타자의 역사성과 모빌리티 역량을 인지하는 한편, 남성적 근대/여성적 자연이라는 대립항을 횡단하여 타자의 시간적 침투를 수용함으로써 공현존을 실험했던 과정을 검토했다. 최인훈의 『태풍』은 태평양 전쟁의 역사 다시쓰기를 통해 남성 주체의 근대적 위상에 가려졌던 여성/자연의 모빌리티 역량을 수용함으로써 타자들의 이동을 통해 생성되는 연대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한편 피바다는 남성 주체의 물적·정서적 기반으로 부동(不動)하던 여성들이 “항일유격대원”으로 성장하여 모빌리티 역량을 발휘하는 과정을 형상화함으로써, 문명/야만, 남성/여성, 근대/자연이 ‘동행’하여 유격전을 수행할 수 있는 변형된 시공간의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최인훈의 단독저작인태풍이 남성 주체가 타자의 궤도에 동참하는 과정을 형상화했다면, 집체창작의 산물인 소설 『피바다(血海)』는 항일유격전에 참여하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을 조명하고 ‘공산주의 인간’의 보편적 위상하에 여성/자연의 모빌리티 역량을 서사화했다는 측면에서 차이점을 보였다. 아울러 소설 『피바다(血海)』는 1936년의 희곡·1969년의 영화·1971년의 혁명가극과 비교할 때 1972년·1973년의 선언으로 인한 인식적 변화를 수렴함으로써, “봉건적 억압과 인습에서 해방”된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역사 다시쓰기를 수행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는 1970년대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시도되었던 ‘식민지 전쟁사 다시쓰기’의 흐름들을 총체적으로 포착하는 한편, 여성/자연이라는 타자로부터 공통적으로 유래하는 한반도의 공현존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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