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하루키는 김일성이 만주에서 벌였던 유격대 활동의 경험을 전 인민이 본받아야할 역할 모델로 설정하고 인민들에게 유격대원으로서의 품성을 요구하는 이른바 ‘유격대 국가’라는 틀로 북한을 설명한 바 있다. 김일성의 항일 유격대의 역사는 북한 사회의 창세기에 해당한다. 김일성의 경험과 그로부터 연원한 그의 교시는 북한에서 확고부동한 원칙으로 작동한다. 이런 의미에서 김일성이 읽었던 책들과 그에 대한 그의 견해는 북한의 학술과 교육, 지식과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때문에 김일성 자신이 읽었다고 언급하고 있는 책의 세목을 검토하는 것은 김일성 개인 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의 지식 문화사를 이해하는 데에서도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이 글에서는 먼저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김일성이 읽었다고 회상하고 있는 책들의 목록을 추출했다. 이어서 김일성이 자기 삶에 특별한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하는 중요한 책들의 의미를 당대의 역사적 사실과 교차하면서 검토했다. 김일성이 읽은 책은 이광수, 루쉰 등의 문학 작품, 삼국지 등의 동아시아의 고전 소설, 각종 병서류,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저작들, 식민지 조선과 중국에서 간행되던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김일성의 독서의 궤적이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둥의 독서의 경로와 흡사하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에서 건국된 대표적인 사회주의 정권의 두 권력자의 유사한 지적 행로에 대해서도 비교의 시각을 열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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