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북한영화 <소금>(1985)은 방언을 사용했다는 점, 강간과 출산의 장면을 묘사하고, 여성 신체를 노출시켰다는 점 등에서 기존 북한영화계의 금기를 깬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깨어진 금기들은 주로 최은희가 재현한 ‘혁명적 어머니’ 형상과 섹슈얼리티 문제의 측면에서 해석되어 왔다. 반면 문화어(표준어)만이 재현될 수 있었던 북한영화계의 방언 기입 문제는 면밀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소금> 속 방언을 다양한 요소들이 중층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파악하고, 방언 인용의 안팎을 포착함으로써 신상옥·최은희가 북에서 제작한 영화들이 갖는 함의를 재독하고자 한다. 김정일은 1970년대 후반 신상옥·최은희를 납북시킨 후 적극 후원함으로써 북한영화의 세계화와 산업화 이후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대중과 공명할 수 있는 영화제작을 요구했고, 두 영화인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다종한 시도를 행할 수 있었다. <소금> 속 방언 재현 역시 그 궤도에서 가능했는데, 신상옥과 최은희는 <소금>에서 ‘리얼’함을 살려 북한 내 관객을 겨냥하기 위한 장치로 방언을 사용했다. 최은희의 신체 위에 ‘각성하는 (조선)여성의 생활력’을 새겨 넣음으로써 남북이 아닌 ‘(조선)민족’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 사는 인민의 삶을 대유하는 언어로는 방언이, 각성 이후의 앎을 표상하는 것이 문화어로 제시되면서 방언은 지역성 혹은 민족성보다 계급성을 부각하는 장치로 탈바꿈한다. 그 자리에서 최은희와 신상옥이 기획한 ‘리얼’한 요소로서의 방언은 문화어의 규범 아래에 포섭된 채 북한의 헤게모니와 조우한다. 요컨대 <소금> 속 방언의 인용 사례는 북한영화계에서 돌출적인 위치에 있었던 신상옥·최은희가 일군 영화적 성과들이 북한 정권의 권역으로부터 불가분한 작업이었음을 드러낸다. 두 영화인의 금기 깨기는 어디까지나 허가된 금기 깨기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작업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정권 승계 과정에서 벌어진 틈새를 포착해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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