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50년 6월 28일 서울 점령 당일부터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될 때까지 서울에서 인민군 원호사업과 군기기금헌납운동을 추진했다. 점령당국은 해방 전후 소련・일본・북한에서 추진한 원호사업과 기금헌납운동을 모델로 조선로동당 서울시당의 지도 아래 서울시임시인민위원회, 사회단체, 각 계층별 조직을 통해 시민들로부터 물품과 금품을 모집했다. 서울의 원호사업은 위문문・위문품 모집, 위문대・문화공작대 파견, 식사・세탁・간호・지도 제공, 군복 제작, 입대자 가족 원호 등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군기기금헌납운동은 행정기관・사회단체뿐만 아니라 각 계층별로 진행되었으며, 7월 12일부터 귀금속헌성운동으로 확대되었다. 2개 사업・운동에서 가장 큰 성과를 보인 것은 군복 제작과 군기기금 모금이었는데, 서울시민들은 약 10만 5,000벌의 군복을 제작했으며, 약 1억 원의 군기기금을 모았다. 그러나 서울의 원호사업・헌납운동 성과는 전쟁 전에 동일한 기간 동안 북한에서 진행된 원호사업・헌납운동의 성과에 비하면 35.7%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이 활동이 전담기구와 전체계획 없이 각 기관・단체・조직별로 진행됨에 따라 동력과 자원이 고갈되었으며, 서울의 노동자들이 추가보수를 지급받지 못했고 여름이라 농민들이 추곡을 수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시민들은 ‘원호’와 ‘헌납’의 명목 아래 점령기간 내내 물질적으로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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