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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전력 위기와 발전선의 역할

Power crisis and power barge before and after the Korean War

상세내역
저자 전성현
소속 및 직함 동아대학교 사학과/석당학술원 부교수.
발행기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지 인문사회과학연구
권호사항 23(1)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69-103
발행 시기 2022년
키워드 #‘5.14 단전’   #한국전쟁   #전력위기   #발전선   #자코나호   #임피던스호   #부산항   #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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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제에 의해 북한지역에만 편중된 전력시설과 산업은 해방 이후 남한지역의 전력 위기로 현실화되었다. 첫 번째 위기가 북한의 ‘5.14 단전’ 단행이었다. 두 번째 위기가 한국전쟁이었다. 두 차례의 전력 위기를 모면하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기적이고 임시적인 조치이긴 하지만 즉각적으로 발전시설로 기능할 수 있는 발전선의 도입이었다. 발전선은 북한의 단전 조치 직전에 자코나호와 엘렉트라호가 도입되어 전체 전력의 20%를 차지하며 전력 위기를 모면하도록 했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력 위기에서는 수리 중이던 자코나호를 다시 귀환 조치해 발전하는 한편, 소형의 발전선인 마쉬호, 와이즈멘호, 화이트허스트호, 포스호를 긴급 사용했다. 더불어 3만 kw 발전선 임피던스호와 소형 발전선 세레낙호가 추가됨으로써 1952년 50% 넘는 발전 전력량을 차지했다. 나아가 본국으로 귀환하는 1955년까지 남한 전력의 1/3을 차지하며 전력 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발전선의 이 같은 역할도 발전선이 정박하며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항만과 송전, 배전, 변전 시설을 모두 갖춘 부산항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산항은 이미 1937년경 대구, 대전과 연결하는 한반도 남부의 전력망을 구축한 상태였다. 따라서 부산항을 중심으로 하는 전력망과 발전선으로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력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한편, 발전선 도입과 활용을 남한지역 전력 위기의 긍정적인 측면만으로 볼 수는 없다. 이른바 유엔군이 발전선 도입을 빌미로 전쟁 기간과 그 이후 사용한 전력요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의 전력회사와 전력생산에 원료를 공급하던 기간산업 자체는 파괴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는 등 복합적인 측면으로도 작용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