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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 연호의 변화 양상과 논쟁: 한말,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헌국회의 연호 논쟁

Change and Controversy of Era Name in Modern Korea: Focusing on the late Chosŏn Dynasty, 1919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1948 Korean Constituent Assemb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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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희경
소속 및 직함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발행기관 한국정치연구소
학술지 한국정치연구
권호사항 31(1)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28
발행 시기 2022년
키워드 #연호   #단군 기원   #대한민국 기원   #대한민국임시정부   #제헌국회   #서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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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의 목적은 근현대 한국 연호의 변화 양상과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검토하려는 것이다. 연호는 역사의 시간을 표시하기 위한 기호이다. 그러나 연호는 단순한 기호와 상징이 아니라 역사인식과 정체성을 표현하며, 특정 시기에는 국가건설 및 정통성 문제와 직접 관련되었다. 이 때문에 역사적 격변기인 19세기 말부터 연호 사용에 큰 혼란이 발생했다. 1910년 일제의 강제병합 이후, 국가를 상실한 한국인은 ‘한민족’을 상징하는 연호로서 단군 기원을 사용했다. 그런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단군 기원이 아닌 대한민국 기원을 채택했다. 한민족의 ‘민족’보다 민국이라는 ‘정체’를 앞세운 것이다. 해방 후에도 연호의 혼란은 계속되었다. 과도입법의원과 신문은 단기와 서기, 일상은 단기와 대한제국의 연호를 병기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에도 연호의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는 1919년부터 기산한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했다. 민국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임시정부의 민주공화국 수립 정신을 계승하고, 동시에 북한의 공산 독재체제를 비판하고자 했다. 그런데 다수의 제헌의원들은 단기 연호를 지지했다. 단기는 민족주의에 부합했고, 편의성도 뛰어났다. 사회 일반과 국가 행정에서 광범위하게 단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결국 제헌국회의 다수의견을 수용함으로써, 1961년까지 단기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연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