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에 따라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 근대화의 거의 모든 고비마다 이승만의 성공과 실패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자신이 혼란스러운 조국 근대화와 하나였던 삶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승만은 공은 가려지고 잘못만 주로 부각되는 비운의 지도자이다. 이승만은 극심한 대립을 겪던 해방공간에서 우리에게 경제적 평등의 중요성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라는 커다란 선물을 안겨주었다. 지나친 이념 논쟁 때문에 그의 업적이 곡해되거나 간과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공화정을 향한 첫발을 내딛게 만든 만민공동회부터 농지개혁, 한미 상호 방위조약 체결, 교육개혁 등 대한민국 탄생 과정에서 보여준 이승만의 결정적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들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이뤄지고 있다. 한미동맹이나 농지개혁과 같은 공을 제대로 평가하자는 분위기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전역의 공산화를 막은 일등 공신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농지개혁은 사회 전반을 근대에서 현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이면 대한민국 물적 인적 인프라의 기반을 다진 공이다. 이승만은 원조에 의존하는 곤궁함 속에서도 인프라 확충에 공을 들였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풍요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 풍요의 시대는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70여 년 축적의 산물이다. 그 성공의 비결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의 기틀로 삼은 데 있다. 이를 바탕으로 농지개혁에 성공하고, 북한의 침략을 막아냈다.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도 큰 몫을 했다. 이러한 공(功)은 누구보다 이승만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제헌헌법의 제정에 이르기까지의 이승만의 행적을 살펴보고, 농지개혁과 교육개혁에 대한 헌법적 평가를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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