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선언은 1987년 체제가 들어서고 제6공화국이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북방정책과 남북교류 협력을 추구하던 시기에 나온다. 이 선언은 1970년대 민주화와 인권 운동을 주도했던 NCCK의 선교방향이 민족자주와 평화통일로 전환했음을 의미하는 선언이었다. 선언의 내용은 분단의 죄악들을 회개, 주한미군과 핵무기 철수 등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 통일을 위한 1995년 희년 선포 등의 담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선언은 선교를 복음화로, 통일을 북한선교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었던 주류의 한국교회에 커다란 파장을 가져다 준다.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비정치화와 내세워 국내 및 국제정치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던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연합체인 CCK를 창설한 것이었다. 1990년대는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진보진영의 NCCK와 복음화와 북한선교가 우선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추구하는 CCK는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연합단체로 자리매김한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한국교회가 분화된 것이다. 두 단체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남북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부활절 연합예배를 시도하는 등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북한의 핵무장으로 경색되는 국면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반복한다. 보수와 진보 사이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부재하기 때문이었다. 보수진영에게는 복음화-북한선교-평화통일이라는 구조를 가진다. 진보진영은 민족-자주-평화통일의 구조인데 1987년 헌법체제를 민주화의 쟁취로 본다. 사실상 두 진영 가운데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이 빠져 버렸다. 보수진영은 민주주의를 반공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진보진영은 자유와 해방, 평등이라는 가치를 우선하고 기존의 기득권 타파와 권력체제의 개편에 더 관심을 두었다. 둘 모두 교회 갱신을 이야기했지만 다른 방향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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