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농민항쟁은 신라 말⋅고려 초 정치⋅사회 변동의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특히 북한에서는 한국사 최초의 농민전쟁으로 평가하며 그 역사적 의의를 더욱 중시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북한의 역사교과서 서술과 연구사적 배경을 검토하였다. 북한 역사교과서에서는 9세기 농민항쟁을 중세 봉건사회에서 전개된 계급투쟁으로 규정하고, 그 원인을 귀족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가 가진 구조적 모순에서 찾고 있다. 이와 같은 이해의 기초는 1930년대 백남운의 중세사 연구에서 마련되었다. 그의 고대사⋅중세사 이해는 1950년대까지 북한 역사학계의 통설이었다. 그런데 연구의 심화와 더불어 중세사 이해가 변모하며 역사교과서 서술도 다소 변화하였다. 본격적인 연구는 1960년대 전반에 축적되었는데, 이를 전후해 발간된 역사교과서부터 그 성과가 반영되었다. 그리고 주체사상이 확립되며 1970년대 후반 이후 농민전쟁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계급투쟁의 성격을 한층 강조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역사교과서에서는 적고적이 부각되었는데, 이야기체 서술에서 계급투쟁의 순수성이 중시된 까닭이었다. 한편 1960년대 전반 중세사의 개막 시점은 통일신라에서 삼국시기로 상향되었는데, 이에 따라 9세기 농민항쟁의 배경이었던 통일신라 시기는 봉건사회 성립기가 아닌 재편기로 규정되었다. 9세기 농민항쟁은 부곡의 축소를 통해 인민 처지의 개선이란 성과를 얻었다고 하였는데, 부곡의 의미도 변화하였다. 부곡민은 삼국시기의 농노적 천민에서 통일신라시기 농노적 양민으로 성장하였다고 하였고, 부곡의 축소는 삼국시기 이후 “노예제적, 공동체적 잔재” 청산이란 의미를 가졌던 데서 ‘중세 봉건사회 재편’이란 의미를 갖는 것으로 재해석하였다. 장기 지속된 중세 봉건사회사 속에서 9세기 농민항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착된 것이다. 9세기 농민항쟁에 대한 북한의 역사학⋅역사교육은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데 치우쳐 실증의 측면에서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다만 9세기 농민항쟁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거시적인 시야에서 조망하고 민의 시각에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으로 논의의 진전과 아울러 북한 역사학⋅역사교육과 대화의 접점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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