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북한 역사학계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일본 식민주의 사학의 폐해를 청산하는 것이었다. 1963년 김석형은 삼한과 신라, 가야 및 백제의 분국이 일본 열도에 설치되었다는 이른바 ‘분국론’을 제창하였다. 이것은 고대 일본이 한반도의 남부를 지배하였다고 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던 ‘남선경영론’를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었다. 이 글은 ‘분국론’ 대두에 이르기까지 북한 학계에서의 이루어진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를 정리한 것이다. 1958년 림건상은 ‘임나일본부’가 식민지 지배 기관이 아니라 일본이 무역을 위해 임나 곧 대가야에 설치하였던 상관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북한 역사학계에서 주체의 확립이 강조되면서 이 설은 폐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1년 리지린은 삼한인들이 대거 일본 열도에 이주하여 선진문화를 전수하였고, 일본의 국가 형성에 기여하였다고 보았다. 그는 이들이 귀화하였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남한의 군사정권은 한일회담의 조속한 타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북한에서는 이를 미국의 후원을 받아 부활한 일본 군국주의가 남한을 다시 침략하려는 시도로 규정하고 심각하게 우려하였다. 이런 가운데 ‘남선경영론’을 근본으로부터 뒤흔들 수 있는 ‘분국론’이 등장하였고, 곧 정설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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