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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 남북한의 문해정치와 여성독본의 자리 - 박영애의 『여성독본』과 최화성의 『조선여성독본』을 중심으로 -

Literacy Politics and the Status of Textbook for Women in North and South Korea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 Focusing on Park Young-ae’s Textbook for Women and Choi Hwa-sung’s Textbook for Joseon’s Wom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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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세화
소속 및 직함 동국대학교
발행기관 인문학연구원
학술지 인문과학
권호사항 (85)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85-156
발행 시기 2022년
키워드 #문맹퇴치   #여성해방   #여성독본   #조선여성독본   #조선어독본   #문해교육   #문해정치   #성인교육   #민주주의 선거   #미군정기   #남녀평등권   #박영애   #최화성   #여성해방운동사   #리계산운동(이계산운동)   #임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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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해방기 여성들에게 ‘해방’이란 무엇이었을까. 탈식민국가의 여성에게 ‘해방’이란 제국주의와 봉건 가부장제로부터의 “이중적 해방”으로 칭해졌다. 이 글은 해방 이후 ‘다시 해방’되어야 했던 ‘여성해방’ 운동의 특수한 성격과 의미를 해방기 ‘문해정치’와 여성독본을 통해 살펴보았다. 좌우의 이념 대립과 체제 경쟁이 격화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남북은 통치의 정당성과 우월성을 확립하고 안정을 꾀하려는 목적 하에 문해정치를 펼치기 시작한다. 해방기 남북의 교육 정책은 외연적으로는 문맹퇴치를 위시한 민족교육, 민주주의, 남녀평등의 민족 사업으로 선언되었지만, 그 근저에는 통치 체제에 대한 인민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고 이념화를 꾀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문해의 영향력과 여파를 이념 정치의 문제로 해석하는 냉전적 사고는 결과적으로 교육에 대한 조선인들의 열망과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되었지만, 남북 교육정책의 출발과 방향성은 조선인들의 이상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것이었다. 조선의 문맹퇴치와 민족교육은 이미 그 출발에서부터 양단의 이질적인 이념성을 내장하고 있었고, 교육의 방향성은 점차로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점령국가의 이념 대결의 성격을 담지하게 되었다. ‘문맹퇴치 운동’ 저간의 이중성에서 드러나듯 남북이 각자의 상이한 목적을 가지고도 동일한 구호 아래 민족운동으로서 문해정치를 펼쳤던 것처럼, ‘여성해방’ 역시 전혀 다른 이념적 목적으로부터 출발했음에도 외연적으로는 동일한 기치와 선언 하에 그 노선이 생성되었다. 남북 모두 여권 신장과 평등 실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위한 여성문해교육을 정치적으로 전유하는 가운데, 해방기의 여성은 다시 한 번 민족의 ‘정치적 진보성’과 ‘근대성의 정도’를 드러내는 표지로서 작동하게 되었다. 남북 공히 내걸었던 ‘남녀평등의 민주주의 질서 확립’이라는 정책 기조는 각각 자본주의/공산주의 사회로의 재편이라는 점령의 기본 목표를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정치적 문제 해결과 사회 안정을 꾀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성 권익을 옹호하고 지위를 향상시킨다는 방침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여성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고 민주주의 이념의 실체와 효능감을 가시화하는 데에 더 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여성독본은 당대적 현실, 사상적 변화와 통치 이데올로기, 성 역할을 담지하고 재생산하는 제도적 구성물이자 정치 기획물로 기능해왔다. 박영애의 『여성독본』과 최화성의 『조선여성독본』은 여성 사회주의자가 쓴 여성독본으로서, 근대계몽기 이래 여성에게 이중의 주박이 되었던 ‘독본’이라는 형식을 빌어 역설적으로 ‘여성해방’을 위한 문해를 설파했다. 이 두 권의 독본은 여성이 직접 쓴 ‘해방기 여성의 이상’으로서 해방기 독본류 발행의 경향에서나 여성운동사의 흐름에서 특수한 위상을 점한다. 이들은 특히 ‘경제적 주체’로서 여성이 바로 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민족국가 건립과 혁명의 동지로서 소환되는 구도에서 벗어나 여성 스스로 해방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이 두 권의 책은 ‘여성해방’의 포문이 본격적으로 열리던 때에 통치 기획과 냉전 이념, 민족주의, 탈식민, 계몽이 결합되었던 근대여성운동의 상징적 사례이자 실체로서 주목을 요한다. 더불어 오랜 여성운동사에서 미완으로 머물던 이슈들을 현장정치와 학술담론의 영역에서 동시적으로 의제화하고 그것을 시대의 선결 과제로 부상시켜 혼란한 체제경쟁의 와중에 구체적인 법제화를 이끌어내었던 도정의 증좌로서 특수한 의의를 지닌다. 여성 문해는 미⋅소 분할의 냉전적 이념과 탈식민의 욕망을 이어주고 가시화하는 매개로 작동하였다. 때로 민족해방의 산물로, 민주주의의 선봉으로, 국가형성과 국민교육의 필수조건으로 다양하게 그 필요성이 설파되었지만, ‘문해교육’을 경유한 ‘여성해방’의 기저에는 냉전의 통치 테크놀로지가 작동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해방기 냉전 구도 속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며 역사상의 성과로 남은 여성운동은 냉전의 통치 이념과 정략적 공조 관계를 맺은 한에서 제한적으로 수용되었고, 언제나 ‘민족’ 을 경유한 위에서 가늠되었다. 여성을 새 나라 건립의 구성원이자 경제적 주체로서 호명했던 해방조선의 기조는 ‘여성해방’의 강력한 원동력인 동시에 한계였다. 해방기 여성은 그 한가운데에서 다시 ‘이중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였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