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초기 북한과 소련의 미술 교류를 살펴보며 북한미술계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전수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1950년대 북한의 유화와 포스터를 중심으로 소련 작품과의 주제와 도상 및 화풍을 비교 분석하여 양국 미술 간의 영향 관계를 살펴보았다. 북한미술계는 해방 이후 일제강점기 미술계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하였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오고뇨크 Огонёк』, 『이스쿠쓰트보 Искусство』 등과 같은 잡지 수입을 통한 물적 교류뿐 아니라 미술 전문인 양성을 위한 소련유학생 파견 등의 인적 교류를하였다. 소련유학생들은 귀국 후에 미술대학 교수로 임용되거나 소련미술 서적 번역 등을 통해 북한미술계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북한미술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선전의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으며, 소련화가들의 독소전쟁 포스터를 참고한 작품이 다수 제작되었다. 북한미술가들은 주제 의식 및 구도와 도상에서 소련 전쟁 포스터를상당 부분 차용했다. 그러나 세부 도상 표현에서는 변주를 주어서 민족적 특성을 반영하였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북한미술계는 전후 복구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무렵 소련에서 파견된 레핀미술대학 교수 변월룡(邊月龍, 1916-1990)은 북한미술가들에게 현실에서 소재를 얻음으로써 형식주의를청산하고 민족적 특성을 살릴 것을 강조하며 북한미술계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전수했다. 1956년에서 1959년에 이르는 시기에 북한과 소련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가나타났다. 소련은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스탈린(Joseph Stalin, 1879-1953) 개인숭배를비판하는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 1894-1971)의 연설 이후, 미술계에 해빙기가 도래하였다. 북한미술계 역시 스탈린 숭배 관련한 흔적을 지우려 했으며 서정성과 낭만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이 시기풍경화가 다수 등장하였다. 1956년 클리마신(Victor Klimashin, 1912-1960)의 방북 또한 풍경화를 제작하던 북한미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는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공식 미학 중 하나인 민족적 특성의 구현과 관련하여 북한미술계는 조선화에 주목하게 되었고, 1950년대 북한미술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던 소련미술과의 관계는 변화하게 되었다. 거기에 동유럽 국가와의 경제 및 문화협정 체결에 따른 북한 미술가들의동유럽 방문과 중국 국화 원화 작품의 북한 전시 등이 활성화되면서 북한미술계는 중국과 동유럽 등과의 다양한 교류로 확장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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