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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 극작술의 변곡점과 관통선 - 천리마시대의 문학과 <박연암>의 징후적 독해 -

The Inflection Points and Penetration Lines of Song young's Dramaturgy -The Literature in the Cheonlima Era and Symptomatic Reading of Park Yeo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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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광욱
소속 및 직함 건국대학교
발행기관 겨레어문학회
학술지 겨레어문학
권호사항 (68)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11-157
발행 시기 2022년
키워드 #송영   #<박연암>   #실학   #반도식주의   #역사극   #천리마시대의 문학   #이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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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송영은 격동하는 한국사의 흐름에 유연하게 적응해 나가며 여러 차례의 작풍 변화를 보여 준 작가였다. 그러나 그는 변화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근본적 창작원리를 되돌아보며 변화의 정당성을 마련하고자 한 작가이기도 했다. 본고는 송영의 마지막 작품인 <박연암>에도 이러한 특징이 드러난다고 가정하는 가운데, <박연암>에 내재된 그의 문제의식과 대응 방식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했다. 즉, 그는 ‘천리마 시대의 문학’을 선언한 이래 점차 경직되어 가는 북한 문예 담론에 반감을 품고 있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박연암>을 창작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실학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을 주도한 것이 박지원 연구였음을 고려할 때, <박연암>은 시류에 편승한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박연암>이 창작된 1960년대 초반에 실학 연구의 중심은 정약용 연구로 이동한 상태였다. 더욱이 <박연암>은 천리마 시대의 문학에서 요구되었던 유형의 작품과 거리가 멀었다는 점에서 그의 창작 동기를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박연암>이 당대의 평단으로부터 외면받은 작품이었다는 점에 착목하여, <박연암>에 내재된 불화의 흔적을 살피고자 했다. 송영은 도식주의를 경계하는 가운데, 생활에 근거한 인물의 성격 발전을 보여 줘야 한다는 점을 창작의 근본 원리로 삼았던 작가였다. 그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겨주었던 항일혁명극은 도식주의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한계를 자각한 그가 택했던 방법은 역사극의 양식과 더불어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공인된 역사적 위인의 권위를 안전판으로 삼아 당대의 북한 문예담론에 대해 간접적으로 발화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불온성은 희곡에서만 보존될 수 있었으며, 공연은 마지막 막의 상당량이 삭제된 상태로 종결될 수밖에 없었던 바, 송영의 의도 또한 완전히 빗나가게 되었다. 연극 <박연암>은 민중과 함께하는 연암의 영웅적 형상을 보여주며 끝나게 되는데, 이는 ‘천리마시대’의 긍정적 인간형을 역사 속에서 발견하려는 체제친화적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이었던 것이다. <박연암>은 송영이 보여 준 갱신 노력의 소산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북한 사회의 경직성 속에서 사멸되는 장면을 보여 준 작품이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