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북한을 이탈해 중국에서 남한으로 이동한 여성의 자기서사를 통해 탈북여성의 증언과 자기재현 행위로서의 ‘이야기하기’가 발동하는 정치의 의미를 탐문하고자 했다. 1990년대 이후 탈냉전이라는 세계체제의 변화 속에서 남한으로 이동한 북한 주민들은 ‘탈북자, 탈북이주민, 새터민, 북한이탈주민’ 등으로 명명되며, 민족과 이방인, 시민과 난민, 냉전과 탈냉전이 이접된 불편한 타자로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탈북이주민의 주류가 여성들이다. ‘탈북의 여성화’는 1990년대 이후 식량난의 위기에 봉착한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와해되면서 남성을 대신해 생계부양자로 나선 여성들이 생존의 회로를 따라 초국적 이동을 감행한 결과이다. 1990년대 이후 인권 담론에 지지된 한국 문학과 문화 속에서 이들 탈북민 혹은 탈북이주민 여성들은 공포를 유발하는 적대적/이념적 타자로 표상되기보다 동정과 연민을 호소하는 수동적 피해자로 주조되면서 능동적 행위자로서 이들의 역능이나 다양한 주체 위치는 삭제되어 왔다. 이 글은 탈북여성에 대한 이러한 윤리적 재현에 은폐된 위계를 성찰하면서 탈북여성이 재현의 주체로 자신을 재정위하는 자기서사에 주목했다. 수기는 탈북민들의 주요한 집필 유형이지만, 대부분 ‘작가’의 지위가 부여되지 않은 이들이 쓰는, 문학의 가장자리에 혹은 위치한 경계적 글쓰기인 이들의 자기서사는 한국문학 혹은 탈북문학 연구에서도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글에서는 탈북여성의 자기서사가 구성되는 특수한 맥락, 즉 남한에 합당한 국민/시민임을 ‘증명’하라는 요구와 북한의 인민이나 남한의 시민을 초과하는 자기를 ‘발명’하려는 열망이 길항하는 상황을 고구하고자 했다. 아울러 이러한 상황을 성찰하면서 탈북 여성작가인 최진이의 자기서사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2005)를 통해 남한의 시민도 북한의 인민도 아닌 ‘난민’ 혹은 ‘경계인/접경인’으로 자기를 발명하고 ‘다른’ 고백의 정치를 발동하는 탈북수기의 가능성을 탐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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