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국시대 초기는 물레질과 타날성형, 그리고 환원소성이라는 신제도기술이 남한지역에 도입됨으로써 이지역 토기생산기술의 큰 변화가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이래 신기술의 계통을 요동과 서북한의 타날문 회도에서 구했지만 와질토기론이 제기되면서 그 기원을 낙랑토기에서 찾았다. 와질토기 논쟁을 거치며 다시 전국계토기 기원론이 부상하고 근래에는 남한의 원삼국시대 환원소성 토기를 이른바 세죽리-연화보유형의 타날문회도와 비교하는 연구가 제출되고 있다. 이 논문은 이주-전파에 초점을 맞춘 기원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요녕지역을 대상으로 신제도기술의 확산과 수용을 기술혁신의 과정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연이 동북지역으로세력을 확장하기 직전부터 서한시기에 해당하는 건창 동대장자, 조양 원대자, 본계 상보촌, 그리고 서풍 서차구 등 네 고분군의 토기유물군을 분석하여 타날문 회도 기술의 수용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연구에서는 연, 혹은 진·한 제국이 설치 운영한 거점에 회도 제작기술과 생산체계가 이식되는 과정을 설명의 대상으로 보지않고 토착사회의 도공이 신기술을 수용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의 진출 직전의 동대장자와 연이 진출한 거점 내부의 원대자유적 토기유물군을 통해 이식된 회도와 토착 무문토기계가 공존하는 가운데 토착도공이 물레질을 익혀 소형 발과 호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물레질-타날법을 수용하여생활용기를 광범하게 생산했는지에 관해서는 알기 어려웠다. 요동지역의 상보촌과 서차구유적은 중원의 세력권 밖에 분포하는 토착집단의 고분군으로 그 부장 토기유물군에서도 토착 무문토기와 회도 생산체계의 공존이 확인되었다. 두 유적의 타날문호에 대한 관찰 결과 제국의 거점에서 수입된 것이 아니라 토착집단의 도공이 서한 초기의 打捺陶罐이나 壺의 제작기술을 익혀 생산해낸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를 통해 요녕지역 토착사회의 신제도기술 수용과 그 시기, 그리고 생산기종에 대한 일단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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