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해방 이후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던 시점을 전후하여 북한 지역의 고아들은 국가적 보호 대상이 되었다. 북한 정권을 주도하고 있던 사회주의자들은 고아를 자본주의사회가 가진 모순의 산물로, 자본계급의 독점으로 인해 버림받은 존재로 인식하였다. 아울러 일제 치하 아동들은 식민권력과 자본가의 학대와 착취에 더하여, 봉건적인 가정과 사회의 억압 속에서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을 이루지 못한 ‘손상’된 존재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고아 문제는 일제 식민잔재의 청산과 자본주의적 모순의 타파를 내세운 북한 정권으로서는 국가건설 과정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였다. 고아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 정권은 해방된 민주주의 조선의 사회에서 고아들에게 기본적으로 부모가 있는 아동과 같은 생활과 교육을 보장할 것임을 천명했다. 북한 정권이 일제 치하의 ‘암담한 환경’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자라온 어린이들을, 고아이든 아니든 국가적 차원의 보호와 육성이 필요한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것은, 곧 식민지라는 총체적 비정상성을 극복하고 해방의 ‘정상성’을 실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 정권은 고아들에게 의식주를 비롯한 의료, 보건, 학교교육, 사상교양, 문화생활 등 일상의 모든 측면에서 전방위적 지원을 해주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는 고아들에게 부모와 가정이 있는 아이들과 ‘차별’이 없는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된 정책이었다. 북한 정권은 항일혁명투사의 유자녀 중에서 ‘의식과 신체가 건전한’ 아이들을 선발하여, 혁명자유가족학원에서 보호‧육성하였다. 혁명자유가족학원의 학생들은 입학‧재학‧졸업‧진로에서의 정치‧경제‧사회적 특혜와 특전을 받았다. 특별한 혜택의 근거는 일제강점기 식민지배에 저항한 부모들의 희생과 건국사업에 참여한 부모들의 희생이었다. 친일청산과 자주적인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당대의 민족적 과제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혁명자유가족학원은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사상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경우 국가건설에서 일반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기여’를 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했음은 물론 북한 권력의 중추인 정치‧군사부문의 간부가 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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