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50~60년대 한국전쟁 정전 이후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이 남·북한의 냉전적 경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체제 선전장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또한 이 글은 1950~60년대 판문점의 개방 과정에서 남북한의 방문자들 사이에서 발생한 다양한 ‘비공식적’ 접촉의 사례들을 발굴하고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탐색했다. 판문점은 한국전쟁 정전회담이 열린 장소였으며, 정전협정 타결 이후에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사무 구역으로 활용되었다. 판문점은 남북한이 공식적으로 접촉하는 한반도의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에 1953년 정전 직후부터 기자와 민간 방문객들의 출입이 잦았다. 1960년대 판문점은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방되었는데, 여기에는 남한 정부의 적극적인 관광 육성책, 그리고 판문점의 선전적 가치에 대한 유엔군사령부의 판단·인식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판문점의 관광지화 과정에서 자유의 집, 판문각 등의 시설이 들어서면서 판문점의 선전장으로서의 성격은 한층 강화되었다. 판문점이 개방되면서 남북한의 방문객들 사이에 다양한 비공식적 접촉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접촉들은 물론 국가의 통제 하에 있었지만 냉전 질서에 균열을 낼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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