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1949~1965) 인민일보의 한국 관련 보도를 통해 중국 정부의 한국 인식을 살펴본 연구이다. 통계 결과 연평균 기사 수가 문화대혁명 시기보다 많지만, 개혁개방 시기에 비해 적고 북한 관련 기사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연도별로는 한반도광복 15주년과 한국전쟁 발발 10주년인 1960년이 4・19의거까지 발생함으로인해 가장 많았고, 광복 20주년과 한국전쟁 발발 15주년인 1965년이 한일협정 체결 반대 등에 대한 보도가 더해져 두 번째로 많았다. 주제별로는 시대적 상황의 특수성으로 인해 정치가 전체의 96%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상호 교류(교역)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나머지는 4%에 불과하다. 이들은 다시 문화・사회・경제 순으로 많지만, 4・19 이후 한국인을 칭송하거나지지하는 문학 작품이 다수 발표된 것 외에는 크게 의미 있는 차이와 변화를 찾을 수 없다. 당시 한국은 중국과 적대적인 관계여서 직접 취재가 불가했기에, 한국전쟁을 제외하면 외국 매체의 보도를 인용한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연평균 300건 이상의 기사에다 외국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한국 혹은 관련 국제 형세를 분석하여 사론 등의 형태로 중국 정부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점은 이웃한 한국에 관심이 없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 한국에서는 2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이승만 정부에 대한인식은 한국을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이자 서태평양 침략의 기지로 만든 괴뢰정권이고 윤보선 정부 역시 이승만을 대체할 ‘충실한 대리인’으로 보았다. 박정희 정부는 거기에다 미국의 지시로 성립된 군사 파시스트 독재라는 수식어가 덧붙여졌다. 한국전쟁은 미국의 전쟁 상인과 그들의 앞잡이가 도발한 침략 전쟁이며 중국이 참전한 것은 북한을 지원하고 주권을 지켜 평화건설을 하기 위한 정의로운 해방전쟁이라고 강조하였다. 정전 이후에도 한반도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를 상대하지 않고 미국을 협상과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지속되었다. ‘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은 주권을 상실하고 국위를 실추시키는 매국 조약이며, 한일회담과 한일협정 및 베트남 파병은미국의 환심을 사고 아시아 침략과 착취를 돕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자본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의 사회 현상을 북한의 번영한 모습과비교함으로써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또 미국의 원조가 한국 경제와 농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진단하며 일본 자본의 확장에 대해서도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 민중의 저항운동 보도는 초기유격대의 무장투쟁에서 점차 독재 반대 시위와 주한미군 폭행에 항의하고철수를 요구하는 등의 방향으로 옮겨갔다. 특히 4・19의거을 전후해 대규모민주화 운동에 관한 다양한 기사 및 중국 각계의 성원과 지지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 후에도 생존권 요구 투쟁과 반미 반정부 시위 기사를 통해한국인의 불의에 저항하는 이미지를 계속 전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기 중국 정부의 한국 인식은 한국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민중에 대한 동정적인 인식이 병존하고 있었다. 이는 아마도 당시 중국공산당의 통일전선 전술과 세계혁명 전략에다,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부각하고 한국전쟁 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명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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