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독일통일 과정에서 일어난 ‘기적 속의 기적’, 즉 동독에서 비폭력 평화혁명이 성공한 배경과 원인을 추적하려는 시도이다. 어떻게 이런 ‘기적 속의 기적’이 가능했는가. ‘동서 냉전의 최전선’이라고 불리는 동독과 서독 두 적대적인 체제가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총성 한방 울리지 않을 수 있었던 말인가. 40년을 지배해온 강고한 스탈린주의 정권이 붕괴하는데 어떻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 있었단 말인가. 이 논문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동독에서 비폭력 혁명이 성공하고, 이것이 민주적 선거를 거쳐 독일통일로 이어지게 된 데에는 네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이다.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무력 개입을 포기하고, 국민주권을 인정한 페레스트로이카가 없었다면 동독의 비폭력 혁명은 존재할 수 없었다. 둘째,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의 카오스이다. 동독의 집권당은 동독의 ‘가을 혁명’ 시기에 깊은 혼란에 빠졌으며, 이때 온건 개혁파가 스탈린주의 강경파를 제압하면서 시위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저지할 수 있었다. 셋째는 동독 재야 시민운동의 이상주의이다. 동독혁명의 주역들이 반사회주의적 체제 전복자가 아니라, ‘현실사회주의’를 개혁하고자 하는 이상사회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동독 정권은 폭력적 진압을 자제한 것이다. 넷째는 개신교의 평화주의이다. 동독 개신교회는 동독혁명의 산실이자 훈련장이었다. 교회에서 익힌 비폭력 평화주의의 저항문화가 거리의 시위를 주도하면서 시위자들은 폭력행위를 극도로 배제하고 ‘비폭력’ 원칙을 고수할 수 있었다. 독일의 비폭력 평화통일은 오늘날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에 더욱 각별한 의미를 던지고 있다. 첫째, 국제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빠르게 포착한 동독 시민들이 비폭력 평화통일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급속도로 빠른 통일이 가능했던 것은 동서독이 분단 시대에 쌓아놓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북한도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교류함으로써 통일 한반도를 대비한 신뢰 쌓기에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동독혁명의 주역이 이상사회주의자와 진보적 개신교도였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분단 체제에서 살면서도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들이 평화로운 통일의 길을 열어낸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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