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역사가 만든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쌓이는 저장고와 같은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의 형성과정은 마치 옛날 것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덮어씌우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은 각 시대의 흔적을 남기며 어떤 것을 어떻게 지우고 무엇으로 덮어씌울 것인가는 언제나 그 공간의 살아가는 당대 사람들의 고민으로 작용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공간의 특성과 역사의 연속적인 측면을 염두에 두고 해방 직후 평양의 도시계획을 1940년대라는 스펙트럼 속에서 분석하였다. 해방 직후 평양의 도시정비사업은 일제시기 미완으로 그쳤던 여러 토목공사와 택지사업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노동력 동원 또한 일제시기 의무동원방식과 비슷한 <의무노동동원령>을 시행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게 하였다. 단기간에 많은 노동력을 동원하여 결국 해방 직후 북한은 여러 토목공사들을 빠르게 완수하였다. 국가건설과정에서 ‘일제청산’을 강하게 강조했었던 북한이 일제시기와 노동력 동원방식에 변화를 만들지 않았음에도 국민들의 동요가 없었던 이유는 모든 토목사업이 ‘민중을 위한 것’임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부터 북한은 국가의 전 분야에서 ‘일본제국’을 거둬내고 ‘민주’라는 단어를 내세워 국가의 주인이 민중임을 선전하였다. 국가의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식민지기와 연속적으로 실시하면서도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서는 완벽한 단절을 주장하면서 ‘민주도시 평양’과 국가를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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