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북한에서 항일무장투쟁이 ‘혁명전통’으로 신격화되기 시작한 시기인 1950~60년대에 주목하여, 북한의 ‘혁명전통’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발굴’되고 정착되었는지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북한사회에서 절대적인 규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혁명전통’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유일한 ‘혁명전통’으로 복원하기 위해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지역을 답사하면서 관련 유적·유물을 조사·수집할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특히 1959년 5월 중국 연변을 답사했던 조사단은 5개월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김일성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연변을 중심으로 200여 곳의 사적지를 답사하였다. 조사단의 ‘성과’는 전시회, 답사기 성격의 출판물 발간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선전되었다. 북한 국내 혁명전적지 및 박물관 정비작업도 실시되어 김일성의 실제 전투활동이 벌어졌던 보천보와 양강도 일대가 ‘혁명전통’의 공간으로 자리잡았고, 보천보박물관을 비롯한한 각종 박물관들은 ‘혁명전통’ 교양의 학교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혁명전통’의 내용이 되는 역사의 발굴과 공간조형물 조성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이를 활용하여 ‘혁명전통’을 선전하는 작업으로 나아가야 했다. 북한은 학생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항일전적지 답사단과 답사행군을 조직하여, ‘유희’에 초점을 맞춘 체육활동의 일환으로 이를 추진하였다. 1959년부터 북한사회 전역을 휩쓴 『회상기』 학습과 ‘혁명전통’ 기념행사의 추진은 북한 주민들에게 ‘혁명전통’이 일상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로써 항일유격대원은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배우고 계승해야 할 준거집단이 되었다. 북한이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에 걸쳐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 ‘혁명전통’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되자, 역사서술과 역사교육의 방향도 이에 맞추어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혁명전통’에 입각해 서술된 『조선민족해방투쟁사』(1958)와 『조선근대혁명운동사』(1961)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만을 유일한 ‘혁명전통’으로 설정하고, 여기에 기반하여 모든 내용을 설명하였다. 이 같은 역사서술의 변화는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항일무장투쟁 시기의 모든 일들이 해방 후 당 창건 준비를 위한 투쟁이었다는 점을 교육해야 했다. 또 교육현장에서는 다른 단위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김일성원수의 혁명활동연구실’이 설치되어 학생들을 ‘혁명전통’을 체화한 인간형으로 양성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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