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산물인 직업 및 노동의 의미와 가치는 자신의 생계유지를 위한 재화 확보 화동, 사회적 역할의 분화를 통한 사회적 기여 활동, 자아의 성취 및 자아실현이라는 세 가지 가치로 분화했다. 근대사회에서 개인들의 직업관은 이들 중 어떤 측면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남과 북도 마찬가지이다. 남과 북은 각기 다른 정체-경제체제를 지향했기 때문에 직업관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초점집단면접을 통해 북의 직업관을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초점집단면접은 인터뷰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서로의 발화를 상호확인하고 교차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점에서 개별 인터뷰보다 더 객관적인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기에 채택한 연구방법이다. 해방 이후, 농업사회에서 근대 산업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북에서는 사회-국가에 대한 기여라는 의미에서 노동에 가치를 부여했다. 하지만 근대적인 노동에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를 근로대중 인민으로 변모시키기 위해서는 근대적 노동규율을 확립하고 법 제도를 개혁하는 등의 국가통제 방식이 요구되었다. 이후 공산주의적 새 인간을 내세우면서 자발적으로 국부(國富)를 증진시키는 인간형을 창출해 나갔다. 여기에 애국주의적 서사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 차원의 혁명에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혁명주체로 노동자들을 계속적으로 호명하였다. 하지만 자아실현의 의미가 축소되고 개인의 삶과 멀어진 ‘사회 기여 노동’은 배급제의 붕괴라는 사회 시스템의 와해 앞에서 토대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생계 유지 노동’라는 관점에서의 노동 및 직업의 의미가 현실성을 지니게 되었다. 북의 직업관은 고난의 행군 전후로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였으며, 고난의 행군 이후 직업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신의 생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냐의 여부였다. ‘돈’의 가치가 부각되면서 북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자본’ 하에서 ‘경제자본’이 출현하고 있었고, 이 균열을 메우는 장치가 뇌물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하는 정치자본의 영향 아래 정치적 배신만은 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사고체계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묵인할 수 있을 정도의 일탈과 침묵은 균열을 메우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북이 시장화되면서 남쪽처럼 생계나 사적 욕망에 따른 경쟁에 의한 직업관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북쪽의 직업관은 남쪽 사람들과 만났을 때, 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남쪽이든 북쪽이든 직업관에서 상대적으로 결여하고 있거나 부차화했던 것은 자아 성취 또는 자아실현이란 의미에서의 직업이다. 이것은 남 또는 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근대적인 노동의 가치, 노동중심, 생산중심의 노동관 또는 직업관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문제는 남북의 직업관을 단순 비교해서 어느 한쪽의 직업관이 낫다는 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을 중심으로, 근대적인 직업관 그 자체를 넘어서는 방안을 찾아가는 차원에서 남북의 직업관을 비교 연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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