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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경계·국경 인식과 북·중 접경지역 경비(1945~1947) - 국경경비대를 중심으로

North Korea’s Perception of Border and Security Activities in the Border Area of North Korea and China, 1945~1947: Focusing on the Border Guards

상세내역
저자 김선호
소속 및 직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발행기관 동북아역사재단
학술지 동북아역사논총
권호사항 (71)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354-388
발행 시기 2021년
키워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조선독립동맹   #동북항일연군   #민주기지론   #만주   #38선   #인민군   #중국내전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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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해방 당시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38선을 자본주의진영과 사회주의진영을 구분하는 사상적 경계이자 새로운 냉전질서의 경계로 인식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민주기지론에 따라 혁명기지인 38선 이북지역과 이남지역의 공간적 동일성을 강조했다. 반면에 독립동맹은 동북혁명기지론에 따라 혁명기지인 만주지역과 38선 이북지역의 공간적 동일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경계 인식의 연속선상에서 북조선분국은 38선을 ‘경계선’으로 인식했고, 독립동맹은 38선을 ‘국경선’으로 인식했다. 북·중 접경지역에 대한 경비는 1945년 9~11월 동안 소련군이 전담하다가12월부터 북한정치세력이 조직하기 시작한 국경경비대가 담당했다. 접경지역의 제1선은 1946년 6월까지 국경경비대가 담당했으나, 1946년 7월부터 중국국민당이 접경지역을 점령하자 소련군이 담당했다. 또한 북한정치세력은1947년부터 중국국민당이 동북지역을 대부분 점령하자 국경경비대 대신 인민집단군을 접경지역에 전면적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북한정치세력은 1946년부터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의 월경행위에 대해 각각 제한적 허용정책과 전면적 저지정책을 구사하였다. 북조선분국은 38선을 한반도의 지리적 경계로 인식한 것과 달리 북·중 접경지역을 한반도에 건설할 국민국가와 중국의 국경으로 인식했으며, 이와 같은인식에 따라 이 지역을 경비하는 부대에 “국경”이라는 용어를 부여했다. 1945~1947년 당시 북·중 접경지역은 국제법상의 국경은 아니었지만, 북한은이 지역을 ‘내재적 국경’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북한의 국경은 국민국가수립 이전에 내재적으로 출현하였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