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확산 성공과 ‘북-중-미’ 전략적 상호작용 분석 - 핵확산전략 이론의 비판적 고찰을 중심으로- 지도교수 박상남 국가와 공공정책 김준현 본 연구는 “약소국 북한은 어떻게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핵확산에 성공할 수 있었는 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안보를 목적으로 핵확산에 나선다고 할 수 있다. 핵무기는 그 속성상 적대국을 대상으로 가장 강력한 무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따 라서, 적대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한 ‘예방전쟁’마저 불사한다. 국가가 핵확산 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더구나 적대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이라면 핵개발 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은 탈냉전후 미국과 국제사회의 저지에 맞서 핵확산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다. 나아가 미 본토공격까지 가능한 수준의 핵무력 고도화를 달성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본 연 구의 목적은 이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같은 연구 목적을 위해 먼저 뎁스와 몬테이로(Alexandre Debs and Nuno P. Monteiro)의 핵확산 전략이론에 주목했다. 뎁스와 몬테이로의 핵확산 전략이론은 국가의 핵확 산의 배경과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밝혀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핵확산 (Nuclear Proliferation)은 핵확산 국가와 적대국, 동맹국간에 일어나는 전략적 상호작용에 따라 발생한다. 국가간 전략적 상호작용은 다음 세가지 독립변수로 이루어 진다. ① 적대국 의 ‘안보위협의 수준’. 이를 통해 국가정책결정권자들에 의해 결정되는 미래 충돌의 수준과 가 능성을 알 수 있다. ② 핵확산 국가의 ‘상대적 힘’. 이는 제일 중요한 변수로서 적대국을 대상 으로 한 군사력 수준을 반영한다. ③ 동맹국의 ‘공약수준과 신뢰성’. 이는 동맹국의 동맹조약, 병력 및 무기의 지원, 핵우산 제공 등에 따라 ‘밀착(closed) 동맹’ 또는 ‘느슨한(loose) 동맹’ 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결과 핵확산 국가의 ‘의지’(willingness)와 ‘기회’(opportunity)의 제 약(constraint)이 발생하며 이를 극복해야 비로소 국가의 핵확산은 완성된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힌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안보위협으로 항상 불안해 있다는 의미다. 이는 북한이 핵확산 의지를 갖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하지만,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상대적 힘’은 핵확산의 ‘기회’를 충족할 만큼 강하 지 못하다. 또한, 1980년대 이후 북-중 동맹관계는 형해화됐기 때문에 동맹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경우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확산을 완성시켰다. 이는 뎁스와 몬테 이로의 이론만으로 북한의 핵확산을 규명하기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한이 어 떻게 핵확산을 완성시켰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나랑(V. Narang)의 핵확산 전략 이론이 필요하다. 나랑(Vipin Narang)은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지금까지 핵무장을 추진했던 29개 국가를 비 교·분석하여 유형화해 ‘핵확산전략이론’을 내놨다. 그에 따르면 핵무장을 추진했던 국가들은 국가별 국내·외 안보환경과 정치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헤징형(기술형, 보험형, 고강도 형), 전력질주형, 은닉형, 강대국 비호형 4가지의 유형으로 핵확산전략을 선택한다는 것을 밝 혀냈다. 본 연구는 뎁스와 몬테이로의 핵확산전략 이론을 바탕으로 주요 분석틀을 만들고 나랑의 네가지 핵확산 유형을 분석도구로 활용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지난 약 40년에 걸친 시기를 ‘핵확산 의지와 기회의 모색’, ‘모호성 전략과 핵확산 성공’, ‘핵무력 국가 완성’로 나눠 분석 했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① ‘핵확산 의지와 기회의 모색’기(1970년대~1990년대) 북한은 탈냉전과 함께 한-소 수교, 한-중 수교 등 동맹들로부터 방기가 극에 달하면서 최 악의 안보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안보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 직접 안전보장을 받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우선, NPT 탈퇴선언을 통해 핵확산 전략의 ‘의지’를 분명 히 드러냈다. 그후 자신들의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군사공격이 가능한 수준의 ‘상대적 힘’을 레버리지로 삼아 미국과 핵협상에 나서면서 핵확산의 ‘기회’의 창을 열고자 했다. ② 모호성 전략과 핵확산 성공기(2000년대) 2002년 2차 북핵 위기 발발하자 북한은 핵확산 ‘의지’를 다시 한번 공식화했다. 이는 2002년 10월 25일 외무성을 통해 “우리는 미국 대통령 특사에게 미국의 가중되는 핵 압살 위 협에 대처하여 우리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 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 주었다”고 밝힌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과 대중 동맹 신뢰도가 낮았기 때문에 다가올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 안 동결했던 핵 프로그램을 부활하기 위한 준비를 은밀히 준비했다. 이는 핵프로그램 비용 대 비 안보이익이 더 클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결과 2006년 1차 핵실험으로 북 한의 핵확산에 성공했다. ③ 핵무력 국가 완성기(2010년대) 이 시기는 김정일의 갑작스런 유고로 체제위기가 고조되면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 단한채 ‘전력질주’로 핵무력의 고도화에 매달린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1차 핵실험으로 핵확산에 성공하고 자신들의 안보이익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무엇보 다 1차 핵실험 단행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군사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북한으로서는 새 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계기였다. 미국을 상대로 한 ‘실존적 핵억지’역량이 증명됐기 때문이 다. 당시 중국은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사실상 ‘배제’당했다. 북한은 6자 회담 진행과정에서 중 국을 더 이상 동맹으로서 신뢰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상대적 힘’을 더욱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북한은 1차 핵실험으로 얻은 ‘상대적 힘’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미래 권력이라 할 김정은 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자 했다. 북한이 2009년 핵협상을 중단하고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보다 핵억제력을 우선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북한은 핵무력 고도화를 위해 모든 자원을 집중했다. 이처럼 북한의 2006년 핵실험 성공이후 2009년부터 2017년까지는 ‘전력질주’의 전형적인 양태를 보였다. 5년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핵실험(4회)과 미사일 발사시험(81회)을 병행하 면서 핵무력 고도화를 이뤄냈다. 이는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에도 버텨내며 국가의 모든 자 원을 총동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시에 경제제재를 버텨낼 수 있는 극단적인 폐쇄경제 (autarky economy)와 미국의 예방적 군사공격이 어려운 지정학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상과 같이 지난 핵협상 과정을 분석하면 북한은 2009년 비핵화 완성을 눈앞에 두고 협 상의 문을 스스로 닫고 핵무장을 고도화하는데 집중했음을 알게 된다. 북한이 2006년 핵확산 성공에 이어 2009년에 안보이익 극대화를 위해 핵확산 완성 즉, 핵무력 고도화를 결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자신들의 지정학적 장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기회’의 창을 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본 연구는 이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북한은 1960년대 이후 핵확산 의지(Willingness)를 갖기 시작했다. 그후, 1990년대 이후 자신들의 ‘상대적 힘’과 지정학적 장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핵확산의 기회(Opportunity)를 살려 ‘고강도 헤징’으로 준비했다. 이후 2006년 핵실험에 성공한후 2009년~2012년‘전력질주’1단계, 2013년~2017년 ‘전력질주’2단계를 거쳐 핵무력을 완성했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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