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었지만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후 한반도 정세는 다시 차갑게 얼어붙어 현재까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하여 과거부터 관행적으로 사용하던 ‘남조선’ 표현 대신 ‘대한민국’, ‘괴뢰지역’ 단어로 대체 사용하며 기존의 민족관계마저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한반도의 위기 분위기가 계속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엄혹한 시기일수록 한반도 통일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20세기 후반 통일을 달성한 후 한 세대가 지나 온전한 하나의 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독일이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까지도 통일을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현 정세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반드시 도래할 통일의 비전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연구는 다차원적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여러 분야 중에서도 경찰통합 문제는 한반도 통일 국면에 있어 매우 높은 중요도를 가진다. 평화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가정하에 과도기의 혼란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북한 주민들을 직접 대면하여 실질적인 사회통합의 절차를 수행하는 국가조직 또한 군대가 아닌 경찰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갑작스럽게 통일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어 수많은 난민들이 서독으로 유입되고 관공서가 시민들에 의해 약탈되는 등 정치적 사회적으로 당시에는 상당한 혼란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서독의 경찰조직은 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했으며 동독 인민경찰 수뇌부와 접촉하여 신속히 조직을 통합, 사회안정화를 위한 역할을 십분 수행해 나갔다. 동서독의 정부기관 대다수가 제대로 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제 역할을 해낸 경찰조직은 통일과정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조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실질적인 통일 국면으로 접어들었을 때 가장 큰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되는 남북의 경찰조직의 통합문제에 대하여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 당위성도 바로 이 부분에 기인한다.
한반도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은 한국의 경찰청과 북한의 사회안전성이 있다. 두 기관은 그 명칭이나 소속관계 등에 있어서 여러 부침을 겪어왔으나 기본적으로 범죄수사와 경비교통 등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업무적 성격은 변함이 없었고 한국과 북한의 치안조직이 모두 중앙집권적인 국가경찰제를 채택하여 운영해왔다. 따라서 지금까지 남북한의 경찰조직 통합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국가경찰제도를 전제하고 경찰통합을 논해왔으나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해방 이후 줄곧 견지해온 국가경찰제도를 자치경찰제도로 전환하는 제도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자치경찰제도는 민주주의가 고도화된 선진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찰제도로서 중심에서 말단으로 이어지는 일사불란한 명령계통이 아닌 지역주민들의 의지가 치안활동에 반영되고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제 남북한의 경찰통합 문제를 논하는 데 있어 그 근본적인 틀이 되는 경찰체제가 한국에서는 자치경찰제도로 전환됨으로써 이제 국가경찰제도 대 국가경찰제도가 아닌 자치경찰제도 대 국가경찰제도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위에서 이전과는 크게 변화한 상황이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연구 전개 과정에서 독일통일 과정에서 이루어진 경찰통합의 전개에 집중하여 이를 토대로 한반도의 경찰통합 방안과 그 선결과제 등을 복합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독일은 한국이 지향하는 평화통일의 방식으로 통일에 성공하여 이전부터 남북통일 연구에 있어 주된 참고가 되는 국가였고 통일 직전 서독은 자치경찰제도를 동독은 국가경찰제도를 채택한 인민경찰을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 연구의 문제의식과도 부합하는 면이 크다. 동서독의 경찰조직의 성립배경과 특징, 통일 직전의 대내외적 상황 등을 분석하고 동시에 어떠한 과정을 거쳐 경찰통합을 전개해 나갔으며 기존 인민경찰 출신자의 재임용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 전반적인 부분을 살펴볼 것이다. 통일 국면에서 예상되는 치안수요를 분석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통합이 전개되어야 하는지 독일통일 당시의 경찰통합 추진과정에서 발견한 시사점을 적용하여 구체적인 한반도 경찰통합의 방향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남북한 경찰통합에 있어 본 연구에서는 시기적으로 ‘과도기’를 설정하였다. 통일된 국가는 물론 국민의 인권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제하는 바, 전체적인 모습은 한국의 제도가 북한에 이식되는 형태를 띠게 되겠지만 단순히 정치적, 법적 통일만으로 온전한 통일을 이루기에는 남북의 이질화가 상당히 심화된 상황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한쪽의 질서를 다른 한쪽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사회병리현상을 초래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통일 이후 일정기간 북한의 기존 법질서, 사회안전성 조직구조 등을 일부 존속시키는 과도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일리있는 관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한국에서 운영 중인 자치경찰제도 또한 통일 직후 북한에 곧바로 적용될 수 없다. 자치경찰제 운영의 기본적인 전제가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이 고도화되어 있고 발전한 지방자치제도를 전제로 하기에 아직 주민들의 민주주의제도에 대한 의식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 등의 발전이 전무하다시피 한 북한의 현실에 자치경찰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과도기에는 국가경찰제도를 통해 북한지역의 치안유지업무를 담당하게 하고 이후 대내외적 여건 마련에 따라 점진적으로 한반도 전체적인 자치경찰제도 도입을 검토해나가야 할 것이다.
경찰통합 자체는 미래의 일이지만 그것을 위한 준비는 현재부터 경주해 나아가야 한다. 먼저 경찰청 내 남북경찰통합 문제를 담당할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한편 남북관계의 개선 상황에 따라 남북 경찰조직 간 협력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은 현재도 추진이 가능하다. 동시에 통일 후 형법, 형사소송법 등 경찰법제의 통합을 어떠한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부분도 현시점에서 학계와 현장을 중심으로 진지하게 고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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