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북한이탈주민이 한국 사회의 이주자로서 낯선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주어진 고등교육 기회를 활용하는 사회적 행위자로서 교육을 매개로 어떻게 구조와 상호작용하는지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형태발생론(morphogenetic approach) 관점에서 구조적 조건화 – 사회적 상호작용 – 구조적 정교화의 단계에 따라 북한이탈주민이 대학의 학위 취득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며 사회구조와 문화의 압력을 주체적으로 수용 혹은 거부하면서 구조를 재생산하거나 변화시키는지 분석하였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이 성찰을 통해 사회적 상황을 해석하고 대학교육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행위자성을 규명하였다. 더불어 북한이탈주민이 대학학위의 교육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에 대한 실재론적 지식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파악하였다. 이 연구는 16명의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한 경험적 자료를 활용하였다. 분석대상은 한국 사회 정착과정에서 고등교육을 수용하거나 저항하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하여 4년제 대학 졸업자, 4년제 대학 재학생 및 입학 준비생, 미진학자를 포함하였다. 인터뷰는 2022년 10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진행하였다. 분석과정은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에서 전제하는 층화된 존재론(실재 영역, 현실 영역, 경험 영역)을 바탕으로 사례연구방법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의 대학학위 취득 경험이 발현되는 구체적 사건과 그것을 발생시키는 원인의 추상적 구조와 메커니즘을 역행추론(retroduction)하여, 이들이 남북한의 사회 및 교육문화를 이해하는 방식과 고등교육을 선택하는 경험적 사건이 실재적으로 발현되는 메커니즘을 탐색하였다. 역행추론은 비판적 실재론의 추론방식으로 경험적 사건을 발생시키는 실재적 사건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 참여자들은 북한과 탈북과정에서 박탈당했던 교육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고, 한국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한 전략으로 대학교육을 선택한다. 북한 사회에서 경험한 계층화에 따른 교육 불평등과 탈북으로 인한 교육기회 단절은 연구 참여자들이 한국 사회 정착과정에서 객관적이고 구조적인 상황이었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학력주의는 또 다른 구조적 조건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구조적 조건하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사회구조의 영향력을 수용하거나 저항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은 북한을 떠나 기존의 사회관계들과 공간적으로 단절되고 새로운 사회구조와 제도, 문화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삶의 토대를 형성해야 했다. 이들에게 대학진학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제도적 지원은 학위 취득을 통한 지위 지향적 행위양식을 발현시키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에게 학위 취득을 통한 학력자본 형성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의미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맥락과 관심사를 성찰하며 자신의 삶을 지배할 수 있는 적극적 행위자성을 보여주었다. 둘째, 연구 참여자들은 구조적 상황에서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자신의 자원을 활용하고 기회를 선택하는 상황논리를 이끌어내는 개인적 성찰을 하였다. 이들은 대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권고에 따라 진로를 결정하는 의사소통 성찰을 하였으며,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사회적 위치를 만회하고자 인서울(in-seoul) 및 SKY 대학을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자율적 성찰을 하였다. 더불어 더 나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면서 대학교육을 선택하는 메타 성찰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실에 저항하고 현재의 삶에 머무르고자 하는 균열된 성찰도 나타났다. 이처럼 성찰은 행위자가 직면한 사회구조적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 연구 참여자들의 성찰은 이들이 위치 지어진 사회구조적 조건과 소유한 자본을 지배하는 사회적 궤적에 의존하여 의미 있는 방식으로 구조를 재생산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연구 참여자들이 고등교육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율 성찰과 메타 성찰 유형이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연구 참여자들이 예측 불가능한 한국 사회에 진입하면서 삶의 기회라는 상황논리를 작동시키는 행위자로서 적극적인 주체성을 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연구 참여자들의 대학진학은 기회비용을 감안한 합리적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학이 능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연구 참여자들에게도 인서울(in-seoul) 대학과 SKY 대학학위는 지위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학력주의에 대처하는 연구 참여자들의 대응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 참여자들의 개인적인 노력과 더불어 대학특례 입학전형과 정부의 등록금 지원제도 같이 한국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제도적 지원은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여러 제약 조건하에서도 이와 같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은 연구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사회구조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학의 학위 취득을 목표로 하는 행위자성은 학생참여자로서의 행위자성, 지식과 사고체계를 재구성하는 행위자성, 기회비용 지불을 선택하는 행위자성, 문화담지자로서의 행위자성, 정체성을 형성하는 행위자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행위자성은 연구 참여자들이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위 주체성이 발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넷째, 연구 참여자들은 대학 재학 중에 형성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고 이러한 경험들은 재학 중 또는 졸업 후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새로운 가치체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단지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새로운 역할기대를 형성해 나갔다. 이러한 영향으로 연구 참여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사회구조의 영향력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구조적 조건에 대한 상황인식과 판단하에서 자신들의 역량과 범위를 정하고 환경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공동 행위자성을 발현하였다. 특히 연구 참여자들의 공동 행위자성은 공동체 내에서의 계층적(hierarchical) 역할과 이타적으로 공동의 가치를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발현되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동아리 회장이라는 역할을 기반으로 다른 북한이탈주민을 돕기 위하여 연대(solidarity)라는 관계 규범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여 북한이탈대학생의 학업성취와 사회적응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적극적 보조성(subsidiarity)의 논리에 기반한 행위가 발휘되었다. 이처럼 리더십에 기반한 관계적 메타 성찰은 관계를 맺는 주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공동선(common good)을 추구하며 우리-사이(we-relation)라는 관계적 실재가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공동 행위자는 사회적 상호작용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과 역량 등을 행사하여 공동의 목표를 성취함으로써 구조를 재생산하거나 변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연구 참여자들에게 학위 취득은 한국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제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대학교육의 경험을 성찰하면서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공동체를 위한 헌신 같은 가치를 내면화하는 관계적 메타 성찰을 통해 헌신적 행위자성을 재창조하기도 하였다. 다섯째, 연구 참여자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법적 지위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이었다. 그럼에도 연구 참여자들은 대학 환경에서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을 받는 것보다 북한이탈주민으로 대상화되고 파편화된 환원적 존재로서 구조와 상호작용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인정의 부재를 경험하면서 학력이라는 자본을 활용하여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기인하는 차별에 대응하는 행위전략을 수행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환경적 맥락에서 이들의 행위 주체성과 별개로 구조에 배태되어 있는 편견과 차별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적 환경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연구 참여자들의 대학학위 취득은 존재론적으로 독립적인 개인으로서의 삶을 지향하는 것과 더불어 사회경제적 지위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과 직업은 사회이동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연구 참여자들은 학위를 취득하여 직업 선택의 기회를 넓히고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행위자성을 발현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은 취업 혹은 유학 등으로 국내에 머물고 있는 이주민과 달리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지위 획득은 사회적 안전망이며 주류 사회로 편입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은 한국에 함께 거주하는 가족과 북한에 거주하는 가족을 경제적으로 돌봐야하는 이중적 책임 윤리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지위 획득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궁극적으로 직업과 사회경제적 지위 획득은 연구 참여자들이 대학학위를 취득하는 경험적 사건이 실재적으로 발현되는 메커니즘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사회적 지위는 사회이동을 제약하는 계급 천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노동시장에 대한 자원과 기회에 대한 접근이 주류 사회 일원이라는 일정한 자격을 가진 대상자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연구 참여자들이 한국 사회의 취업과정에서 학력에 따른 구조적 불평등의 책임을 개인화하거나 구조적 불평등의 양극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종합해 볼 때, 북한이탈주민이 낯선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하여 고등교육을 선택하는 교육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탐색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이들의 고등교육 경험과 정착과정에서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북한이탈주민의 대학진학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주로 이들의 학업 실패에 초점을 맞춘 선행연구와 달리 그동안 국내에서 많이 연구되지 않았던 형태발생론 관점에서 북한이탈주민이 대학학위에 부여하는 의미를 탐색하여 적극적인 사회적 행위자의 관점에서 이들의 경험을 해석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