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북한이 형성하는 대외정세 인식에 관한 담론을 살펴봄으로써 김정일・김정은 시기 외교정책의 특징을 비교․분석하는 것이다. 최고지도자가 전하는 대외적 메시지가 외교정책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유형화해보고 향후 대외정책의 양상을 전망하였다.
이러한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의 외교 사설인 「월간국제정세개관」을 ‘토픽 모델링’ 기법을 활용하여 분석하였다. 외교사설로 파악하기 어려운 북한 내부의 대외정세 인식과 외교행태에 대해서는 탈북 외교 엘리트 7인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탈북 외교관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서 내밀하게 형성되는 대외정세 인식을 파악하고 실제 외교 현장에서 행해지는 외교지침을 수집하였다.
두 차례에 걸친 교차연구를 실시하여 문헌 내용과 실제 외교 행태를 비교・분석하여 실증적 연구가 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북한 외교정책 연구의 방법론적 지평 확장을 시도하였다.
1차 분석으로 『로동신문』의 기사 「월간국제정세개관」은 김정일의 집권이 시작된 1994년 7월부터 마지막 기사가 보도된 2019년 9월까지 시기별로 대외정세 인식의 양상을 비교하였다. 분석 결과 김정일 시기의 기사 200건은 ‘한미일 군사 연합훈련’에 대한 비난 강도가 가장 높았다. 북한은 이러한 대외정세 인식에 기반하여 내적으로 끊임없이 반미의식을 고취하면서 향후 핵 개발의 명분을 쌓고 있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2012년부터 2019년 9월까지의 기사 74건에 대한 토픽 모델링 결과, 김정은 시기에는 자위적 군사력 강화를 필두로 핵 무력 고도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김정일 시기에는 이란 및 팔레스타인 문제를 거론하면서 간접적으로 핵 야망 드러낸 것에 비하면 가장 의미 있는 변화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탈북 외교엘리트 7인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교차연구를 진행한 2차 분석 결과 「월간국제정세개관」에 나타난 북한의 대외 인식은 최고지도자의 인식을 파악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현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일부에서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가장 큰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는 북한이 공식 외교무대에 나설 때 나타났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 혹은 다자간 정상회담과 같은 대외적 요인이 발생했을 때에도 「월간국제정세개관」은 정치적 일정과 관계없이 ‘반미’가 토픽 선정에 가장 주효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편, 회담 참가를 앞둔 외교관들에게 “반미의식을 투철하게 지니면서도 미국 외교관들을 현장에서 만나면 회담이 잘 되길 바라고 후속 조치도 강화하겠다고 이야기 하라.”는 내용의 교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후속 조치’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조항이었지만, 회담에서 비핵화를 조건으로 협상할 때도 현장의 북한 외교관들은 북한이 협상에서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데에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북한 외교에서 가장 큰 불일치한 점은 ‘핵 외교’에 관한 인식이다. 북한 외교의 변곡점마다 국내외 학계에서도 ‘비핵화’를 조건으로 내세운 북한의 대외정책에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있는 것인지 꾸준한 연구가 있었지만 실상은 북한의 핵보유 선언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때 해당 연구의 함의가 있다.
김정은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전후 당시 주요 외교 업무에서 외무성을 배제하고 있는 것 또한 파악하였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펴본 결과, 북한이 2019년부터 「월간국제정세개관」게재를 중단하였다는 것은 북한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기보다는 자위적 핵무력 강화에 무게를 실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책적 함의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북한이 자초한 외교적 고립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 냉전시대에 사회주의 연대의식을 형성하였던 국가들과의 교류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일성의 ‘쁠럭 불가담’을 형성하였던 이란・파키스탄 등의 중동국가들과 ‘대중동 외교’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 북한외교 연구 분야에서 부차적인 변수였던 북한의 ‘대중동 외교 분야’가 김정은 외교의 핵심 코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함의를 담고 있으며, 앞으로 북한의 중동정책을 중요한 상수로 봐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학위논문을 작성하면서 이미 발표된 저자의 학술 논문들이 활용되었다. 제4장 제1절과 제2절의 내용은 2023년 발간된 평화문제연구소의 『통일문제연구』 35권 1호에 게재된 본인의 논문 “김정일 및 김정은 집권 시기별 북한 대외 정세 인식 변화 분석: 노동신문 월간국제정세개관의 토픽모델링 분석을 중심으로”를 요약・정리하여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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