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미정책을 다룬 기존연구의 대부분은 국제체제, 남북관계 등과 같은 외부 환경적·구조적 요인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대외정책을 ‘국가의 본질로부터 나오는 대내정책의 연장’으로 규정하고 있고 북한 권력구조의 특성상 최고지도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임을 고려하면, 북한의 대외정책분석에 있어 외부환경적 요인 뿐 아니라 내부환경 요인, 더 나아가 최고지도자요인 또한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북한 대미정책 분석에 있어 국제체제, 남북관계 등 외부환경 요인 뿐 아니라, ‘김정일 후계체제 등장’, ‘6개년경제발전계획의 차질’이라는 내부정치·경제적 요인을 주요 변수로 설정하였고, 이에 더해 대내외환경 변화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이데올로기와 인식을 결정적 변수로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그 중요한 의의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역사적 접근방법과 외교정책 결정이론의 적용을 절충하는 연구방법을 채택하여 두 가지 연구목적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였다.
첫 번째 연구목적은 북한이 대미 ‘직접 대화’ 정책을 본격화한 1973년 시점을 주목하며, ‘어떻게’ 그러한 변화가 전개되었는지를 역사적 관점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다. 북한은 1971∼1972년 시기에는 중국의 데탕트 정책에 편승하여 ‘중국 중재’와 이를 연계한 남북대화를 통한 우회적인 대미접근을 구사하였으나, 1973년부터는 ‘평양에서 직접 워싱턴으로 향하는’ 독자적인 대미 직접 대화 정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미접근은 표면적으로는 강경한 대미기조를 견지하며 미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채널과 방법을 활용하여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시도하는 이중적 양상을 보였다. 특히 북한은 유엔총회에서의 ‘한반도 문제’ 논의를 ‘미국과의 대결’로 인식한 가운데 비동맹과의 공조를 통해 유엔을 무대로 한 ‘대미 대적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하는 한편, 다양한 백 채널(back channel)을 통해 미국에게 은밀히 접촉하여 ‘북미대화’를 시작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제29차와 제30차 유엔총회에서 미국은 북한에게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위한 타협안과 더 나아가 남북한 교차승인을 의미하는 ‘4자회담’ 개최를 제안하며 타협적 태도를 보였지만, 북한은 이를 단호히 거절한 채 ‘북미 당사자주의’와 ‘북미 직접 대화’ 만을 고집하며 외교공세를 지속하였다. 이처럼 타협안에 대한 상호협상은 배제한 채 ‘북미대화’ 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 만을 관철시키려 했던 북한의 일방적이고 경직된 태도는 북미협상에서의 실패를 노정한 것으로, 결국 제30차 유엔총회를 기점으로 한반도문제 논의가 중단되자 북한도 미국과의 외교적 접점을 상실한 채 대미외교의 동력을 잃게 되었다.
두 번째 연구목적은 ‘왜’ 북한이 북미 직접 대화 정책으로 전환하였으며, 이러한 대미접근이 ‘압박’과 ‘대화추구’를 병행하는 이중적 양상을 띄게 되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마이클 브레쳐(Michael Brecher)는 대내외적 환경변화 즉 운용적 환경요인이 곧바로 외교정책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환경변화가 최고지도자의 이데올로기와 대외관과 같은 심리적 환경 요인을 통해 투영됨으로써 최종적인 대외정책으로 산출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점에서 착안하여 본 연구에서는 운용적 환경요인으로 ‘진영외교의 이완’ 및 ‘비동맹외교의 강화’(국제환경 요인), ‘남북한의 외교·안보경쟁 심화’(양자관계 요인), ‘김정일 후계체제 등장’ 및 ‘6개년경제발전계획의 차질’(내부환경 요인)을 설정하였고, 심리적 환경요인으로는 주체사상에서 연유한 ‘자주와 반대국주의’, ‘친선과 비동맹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요인을 주목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북한의 대미정책 변화는 북한이 직면한 대내외 환경변화와, 이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산물이었음을 고찰하였다. 환언하면 1973∼1975년 시기 당면한 국제환경, 남북관계, 내부환경의 변화에 대해 김일성은 주체사상에서 연유한 이데올로기적 프리즘을 통해 인식 하였으며 이로 인해 형성된 대외관이 ‘북미 직접 대화’ 추진이라는 대미정책의 변화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김일성의 인식과 대외관은 ‘자주와 반대국주의’에서 기인한 반미적 사고와 ‘친선과 비동맹주의’에서 기인한 실용주의적 기조의 이중적 관점이 혼재하였다. 이념적으로는 자주성과 반제반미의 기치를 강조하고 대미 적대심을 고취하여 미국에 대한 압박공세를 강화하고자 하였으나, 진영 국가들로부터 체제보전을 약속받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충된 이념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북한은 결국 체제보전을 위한 자구책으로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념적으로는 반제반미의 사상적 기조를 강화하며 미국에 대한 적대성을 부각시켜 외교적 압박공세를 개진하는 한편, 정책적으로는 체제생존을 보장해 줄 핵심국가로서 미국의 위치를 재정립하고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는 이중전략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이는 기존 ‘중국 중재’에 의존한 대미접근을 구사했던 방식과는 대별되는 것으로, 이때부터 북한은 ‘평양에서 직접 워싱턴으로 향하는’ 독자적인 대미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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