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조선로동당 규약과 북한 헌법의 관계를 사회주의 당이론과 법이론에 비추어 법적·규범론적 관점에서 규명하려는 시도이다. 이 관계의 해석은 현상의 영역이 아닌 당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 양자를 위계의 관계, 즉 상하 규범의 관계로 볼 수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기존 연구는 조선로동당의 국가 및 사회에 대한 영도원칙을 근거로, 당 규약이 헌법보다 상위 규범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당 영도원칙은 맑스-레닌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혁명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구축된 것으로 헌법 명문화와 관계없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체제의 기본원리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념적으로 공산주의가 실현될 때까지 혁명의 과정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도 당이 혁명계급의 전위로서 이러한 혁명 수행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 당 영도 그리고 당-국가체제의 핵심이다.
하지만 당 영도는 정치적 영도이며 당이 국가의 기능을 대행하는 것은 아니다. 당은 혁명의 도구로서 국가를 조직하고, 국가가 국가 관리의 도구로서 사회주의 법을 제정하도록 영도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법은 당의 혁명사상, 노선과 정책의 반영물이며, 국가 전반에 보편적 구속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당 정책과 다르다. 사회주의 국가 초기 단계에서의 격렬한 논쟁의 결과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법의 유용성은 계속 강조되고 있다.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은 일부 최고지도자의 권력 남용에 대한 반성을 통해 법 준수를 강조하고 있으며, 당이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할 것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당의 헌법준수의무 역시 사회주의 당·국가·법이론에 비춰볼 때 헌법 반영 여부와 관계 없이 인정되는 원리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선로동당은 수령 중심의 당이라는 특수성에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정당이라는 보편성이 강하고, 북한의 법체계 역시 사회주의 법원리를 공유한다. 북한에서 법은 당 노선 및 정책의 반영물이며, 법을 준수하는 것은 당의 노선 및 정책을 준수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헌법의 제정과 개정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에 따르면 북한 헌법은 최고지도자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다.
한편 조선로동당 규약은 크게 당 강령과 당의 조직·운영원리를 규정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조선로동당 규약과 북한 헌법의 관계는, 성격을 달리하는 이 두 부분을 분리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당이론과 당 영도원칙에 의하면, 당이 강령적 사항을 정한 후에 이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당 강령은 헌법에 대해 선결적(先決的)이다. 그러나 1980년 이후 30년 간 당 규약을 개정하지 못하면서 묵시적인 당 강령의 변화를 헌법에 먼저 반영한 후 이에 부합하도록 당 규약을 개정해 왔다. 그러므로 당 규약과 헌법의 개정 시점을 감안해서 당 규약 뿐만 아니라 헌법 규정도 같이 살펴야지 당 규약의 대 헌법 우위성이라는 일률적인 잣대를 사용할 수 없다. 또한 당 강령의 선결성이 헌법에 대한 규범적 우위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당 강령에 맞게 헌법을 제·개정해야 한다는 것은 정치적 의미에서의 우위를 의미하는 것 뿐이다.
당의 조직·운영원리는 그 적용 대상이 헌법사항과 달라서 원칙적으로 헌법과 저촉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즉 헌법과의 위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 조직 및 당원에게만 적용될 뿐이므로 헌법과 서로 별개의 관계이다.
당 규약이 정한 당 기구의 권한과 헌법이 부여한 국가기관의 권한은 당 영도원칙의 성격을 고려해서 비교해야 한다. 당 기구의 권한 중 국가 활동과 관련된 것은 이 분야에 대한 당의 지도권한을 규정한 것이지 국가 활동에 대한 직접적 권력행사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당의 행정대행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당은 그 정책의 구현인 법에 기속되는 것이 논리적이며 새로운 정책과 법이 상충하는 경우라면 법을 개정하는 것이 사회주의 특유의 ‘당 정책-법의 관계’에 부합한다.
결론적으로 북한에서 당 영도원칙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원칙이나 이 때문에 당 조직과 당원을 규율하는 당 규약이 국가전반적 효력을 가지는 헌법보다 규범론적으로 상위 규범인 것은 아니다. 당 조직 및 당원으로서 준수해야 할 사항은 당 규약에, 국가기관이나 공민으로서 지켜야 할 사항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충돌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당은 국가의 입법을 영도해서 이러한 충돌을 제거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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