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북한의 도시경관 조성과 경관통치의 변화양상에 대해 살펴보고 그것이 어떠한 함의를 갖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특히 김정일과 김정은 시기 북한의 도시경관 생산 담론, 평양시 가로가 담고 있는 미학과 그것의 생산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통해 북한 경관통치의 내용과 변화양상을 파악하고 그것의 함의를 얻고자 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경관통치는 비단 북한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그 점에 유의하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등 다양한 통치합리성에 기반한 경관통치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경관의 미학적 특징과 경관 생산 방식에 대한 분석의 준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 1991년에 경관 생산 담론이 정초되었고 김정은 시기에는 담론의 내용이 변화되었다. 이른바 김정일의 ‘주체건축론’은 통치의 위기 상황에서 김정일이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을 토대로 건축의 사상적, 형태적 미학의 원칙들을 체계화했다. 반면 김정은 시기에는 집권 초반인 2013년 문명과 과학, 인민을 중시하는 실용적 경관 생산 담론을 발표했다. 다만 2019년 북미회담 실패로 대외적 폐쇄정책을 취한 이후에는 주체건축론과의 절충적인 담론의 내용도 드러났다.
또한 김정은 시기의 경관 생산 담론은 사실에 기반한 진술적 서술과 자기비판적 서술을 보인다는 점에서 김정일 시기와 차이가 있다. 비교적 현실성 있는 경관 생산 담론을 펴고자 하는 김정은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담론 차원의 변화는 평양시의 대표적인 거리 생산(경관통치술)에도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하지만 김정은 시기에는 김정일 시기에 비해 정책과 시장경제의 요인이 평양시 거리 건설의 미학과 이미지 생산을 결정짓는 데 비교적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정일 시기에는 체제 위기의 상황(동구 사회주의권 위기와 체제경쟁에서의 열세 등)에서 ‘우리식’의 극복을 선택했다. 김일성 시기와 같이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담론이 나타났고 이것이 정치수사적 미학의 수용으로 이어졌다. 평양시에서 최대규모로 건설된 광복거리와 통일거리는 주체건축론의 미학적 요소들(웅장함, 다양성 등)을 충실히 재현했다.
반면 김정은 시기에는 해당 시기 당의 정책적 요구에 조응하는 평양시 거리의 이미지와 미학이 구현되었다. 김정일 시기와 마찬가지로 평양시 주택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당의 과학 중시 정책을 표상하는 경관이 미래과학자거리에서 구현되었다. 려명거리에는 2016년 ‘5개년 경제발전전략’의 과업에 따라 에너지 절약형 ‘녹색건축’이 도입되었고 첨단 ‘녹색건축’의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건축의 정책지향적 성격은 거리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래과학자거리는 인근의 시설들(과학기술전당, 김책공업종합대학 등)과 클러스터를 형성할 잠재력도 존재한다.
김정일 시기와 김정은 시기 모두 모더니즘 건축의 산물인 아파트를 중심으로 경관미학이 구현되었다. 따라서 모더니즘 건축의 특성(볼륨과 추상성 등)이 미학적 요소의 기본이 되었지만, 김정은 시기의 사례들은 각 거리가 갖는 미학적 특징이 비교적 다양하다. 서구 모더니즘 이후의 건축이 지역적 다양성을 띠듯이 미래과학자거리(과학기술 상징), 려명거리(첨단 녹색건축 상징)가 서로 다른 정체성을 보인다. 특히 최근 준공된 경루동과 송화거리, 화성지구의 사례들은 더욱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시기에 이루어진 다양한 경관 생산을 통해 볼 때 향후 평양시가 북한식 포스트모던 경관의 원형이 될 가능성도 보여준다.
그리고 경관 이미지 생산 방식에서도 김정은 시기에는 비교적 혁신적인 방법이 활용되었다. 혁신적 방법들은 『조선건축』을 통해 이론화되었고 실제 거리 생산에서도 상당 부분 적용되었다. 우선 경관을 조망하고 기획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미래과학자거리 현지지도에서 김정은은 전용기를 타고 평양 도심과 대동강, 쑥섬 등을 조감하고 경관을 기획했다. 그와 같이 상공 혹은 원경(遠景)에서 전체적인 지역을 조감하고 파노라믹 경관을 구상하는 것이 모범사례가 되었다.
특히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한 스카이라인 형성과 밀집 배치, 야경과 색상의 조합 등을 활용한 경관 이미지 생산 방식의 변화가 주목할만하다. 원경에서 바라보는 경관 이미지를 고려해 초고층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한 현대적인 스카이라인을 의도했다. 그리고 고층 건축물이 거리를 따라 연속적으로 밀집 배치되어 스카이라인을 형성했다. 또한 김정은 시기의 파사드에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특정한 색상의 조합이 적용되었고, 평양시 거리의 야경이 특히 강조되었다. 새로운 이미지 생산 방식의 결과로서 평양시 경관은 뉴욕, 상하이, 서울, 광저우 등 자본주의 혹은 발전주의 메트로폴리스의 미학과 유사성이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국가가 평양시의 거리에 대한 언론보도를 통해 인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차원(광의의 통치성)에서는 부분적인 차이가 나타났다. 김정일, 김정은 시기 모두 도시경관을 통한 국가 통치의 합리화와 인민의 품행을 인도하려는 의도가 드러났다. 하지만 김정일 시기에는 노동력 동원과 속도전 고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김정은 시기에는 비교적 경관에 걸맞은 사회주의 문명국가 인민의 정체성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려명거리의 경우 북미협상 국면에서 국내외 선전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렇듯 김정은 시기의 경관통치는 김정일 시기에 비해 혁신적, 실용적인 담론과 경관 형성의 미학과 방법들이 활용되었다. 두 시기 모두 통치의 문제(후계 문제와 권력승계, 통치의 위기 등)가 경관통치에 영향을 미쳤으며 주체사상과 주체건축론의 철학적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건설부문일군대강습 서한’의 내용적/서술적 변화와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등이 보여주는 혁신적/실용적 미학과 이미지 생산 방식은 김정은 시기의 경관통치를 새로운 과정 혹은 단계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본 연구의 학술적 기여는 첫 번째로 최근 평양시에 건설된 가로들이 현대적인 이미지로 구현된 구체적인 방식과 그것의 함의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건설된 평양시의 현대적인 경관은 김정은 체제가 보여주는 새로운 유토피아적 기획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평양시의 현대적인 도시경관이 가져오는 파급 효과에는 국가 이미지 제고와 모방적인 경관의 조성 등 긍정적, 부정적 개연성 모두가 존재한다.
두 번째 학술적 기여는 푸코의 통치성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사회주의 국가의 경관통치를 분석했다는 데 있다. 이는 북한 도시의 경관 연구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 번째로 북한 경관통치의 변화를 통해 북한 체제 변화와 도시성 변화의 징후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김정은 시기에서도 주체사상은 건재하지만 평양시 경관의 생산에서 유연성이 발휘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평양시 경관의 변화에는 자본주의 도시의 폐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할 위험도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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