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북한이탈주민은 탈북과 동시에 가족이산에서 비롯되는 상실의 맥락을 살아간다(김경아, 장혜인, 2020 김대웅, 이순형, 2017). 이는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 개인 및 가족의 적응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 배경으로 상실에 해당하면서도 외상으로 고려된다(조영아, 전우택, 2005 조하나, 최연실, 2013). 북한이탈주민의 가족이산은 분단체제 하에서의 맥락적 특이성을 반영하는데, 즉, 북한에 가족이 생존해있어도 직접 대면할 수 없고 즉각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어려우며 가족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닌다(김경아 외, 2019 정정애 외, 2013 조영아, 2012). 이러한 상실의 맥락은 사별 상실과 다르게, 대상의 물리적 부재로 인한 고통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명확함이 특징적이다. 선행연구에서는 가족이산과 같은 맥락을 ‘모호한 상실(ambiguous loss Boss, 1999)’의 틀로 설명한다.
모호한 상실은 상실에 관한 명확한 정보가 결여되어 있어 대상의 존재함과 부재함이 불명확한 맥락을 의미한다(Boss, 1999 2004). 이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가족이산 맥락은 ‘물리적인 모호한 상실(physical ambiguous loss physical absence with psychological presence)에 해당한다(김경아, 장혜인, 2020 김경아 외, 2019). 그러나, 재북가족에 대한 모호한 상실감이 북한이탈주민 개인 및 가족의 적응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에 주목한 연구는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드물다. 또한, 모호한 상실감이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어떠한 요소들이 관여하는지 그 기제를 밝힌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보편적으로 모호한 상실은 우울을 비롯하여 개인의 심리적 어려움을 예측하는 선행요인으로 고려되지만(Boss & Couden, 2002 Kreutzer et al., 2016), 적응의 과정을 통해 이전의 삶보다 더 깊이있는 가치와 목표를 지향해가는 개인의 성장 또한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된다(Dekel, 2007 Testoni et al., 2020 Wilson & Cook, 2018). 이에 더하여, 모호한 상실은 개인 내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개인차원을 넘어서서 양육환경을 통해 가족 내 자녀의 적응에 관여할 가능성도 제안되어 왔다(Dekel & Goldblatt, 2008 Sangalang et al., 2017 Sangalang & Vang, 2017 Qin, 2009). 선행연구를 토대로, 본 연구는 북한이탈주민의 모호한 상실감이 개인 및 가족 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 이와 관련되는 주요 기제를 구체화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모호한 상실 조건(가족 구성원이 북한에 남아있고 이들의 생사를 명확히 알지 못하거나 생존해있어도 만날 수 없는 상황)에 부합하는 북한이탈여성 가운데 현재 남한에서 미성년 자녀를 양육 중인 어머니 100명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연구를 시행하였다.
구체적으로, 연구 1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모호한 상실감을 정의하고 측정할 수 있는 신뢰롭고 타당한 척도를 제안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기존에 개발된 경계모호성척도(Boundary Ambiguity Scale BAS)의 첫 번째 버전(MIA)을 활용하여 사전조사 및 본조사를 시행하였으며, 북한이탈주민의 모호한 상실감을 측정할 수 있는 경계모호성 척도(Boundary Ambiguity Scale for North Korean defectors 이하 BAS-NK)의 요인구조 및 신뢰도와 타당도를 파악하였다. 이는 북한이탈주민의 모호한 상실감을 측정할 수 있는 타당화된 도구가 부재하고 해외 원척도의 요인구조가 불명확한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탐색적 요인분석 결과, BAS-NK는 최종적으로 15문항의 2요인 구조로 탐색되었으며 2개의 하위요인은 ‘상실에 대한 지각된 모호함(ambiguity-laden items 이하 요인1)’과 ‘상실대상에 대한 정서적/관계적 몰두(distress-laden items 이하 요인2)’ 로 개념화하였다. 연구 1의 결과를 토대로, 모호한 상실 맥락에서 지각된 경계모호성의 총합을 ‘모호한 상실감’으로 정의하였다.
연구 2는 BAS-NK로 측정한 북한이탈여성의 모호한 상실감이 개인의 적응 및 부적응에 미치는 영향과 그 기제를 밝히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이를 위해, 모호한 상실감이 회피와 침습적 반추를 통해 우울을 예측하는 부적응적 회피기제를 가정하였고 이 관계가 모호함 감내력에 의해 차별적인 결과를 보이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본 연구는 모호한 상실감의 심리적 어려움을 완화할 수 있는 적응적 기제가 구현된다면 긍정적인 적응의 결과도 예측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이에 연구 2의 부적응적 회피기제와 함께, 모호한 상실감이 지속유대 및 의도적 반추를 통해 우울을 완화하고 상실후성장에 이르는 적응적 접근기제를 가정하였다. 연구 2의 결과, 북한이탈여성의 모호한 상실감이 회피 및 침습적 반추를 순차적으로 매개하여 우울을 예측하는 부적응적 회피기제가 가설과 일관되게 확인되었다. 이때 모호함 감내력이 낮을수록 모호한 상실감이 우울로 향하는 순차매개효과가 더 높게 나타나, 모호함 감내력에 의한 조절된 매개효과도 유의하였다. 이와 더불어, 적응적 접근기제에서 북한이탈여성의 모호한 상실감이 지속유대를 매개할 때 우울을 감소시키지는 않았지만 상실후성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지속유대가 모호한 상실 맥락에서 적응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한 본 연구의 기본 가정과 일관되는 결과이다. 나아가, 모호한 상실감은 지속유대 및 의도적 반추를 순차적으로 매개함으로써 우울을 감소시키고 상실후성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나 적응적 접근기제의 순차매개가설이 지지되었다.
다음으로, 연구 3의 목적은 북한이탈어머니 개인의 모호한 상실감이 가족차원으로 확산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BAS-NK로 측정한 모호한 상실감이 어머니 우울과 부정적 양육행동을 통해 자녀의 문제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기제를 상정하였다. 연구 결과, 북한이탈어머니의 모호한 상실감이 어머니 우울 및 부정적 양육행동을 통해 자녀의 적응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순차매개가설이 유의한 것으로 지지되었다. 이때 어머니의 모호한 상실감이 우울을 매개로 자녀의 문제행동을 예측하는 개별매개효과 또한 유의하였으나, 모호한 상실감이 부정적 양육행동을 매개로 자녀의 문제행동을 예측하는 개별매개효과는 유의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연구 3에서는 북한이탈어머니의 모호한 상실감이 우울 뿐 아니라 상실후성장으로 나아갈 때 이러한 어머니의 성장이 자녀의 문제행동을 완화하는지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어머니의 모호한 상실감이 자녀의 문제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에서 어머니 상실후성장의 개별매개효과와 상실후성장 및 부정적 양육행동의 순차매개효과는 유의한 결과를 나타내지 않았다.
종합하면, 본 연구는 북한이탈주민의 가족이산을 모호한 상실의 틀로 조망할 것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모호한 상실감이 북한이탈여성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가족 내 자녀에게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험적으로 확인하였다. 개인 내 차원으로 모호한 상실감의 부적응적 기제와 적응적 기제를 함께 제시하여, 모호한 상실의 맥락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완화하는 것 뿐 아니라 개인의 성장을 일구어가는 적응의 방향도 가능함을 시사하였다. 또한, 양육자의 모호한 상실감이 양육환경을 통해 자녀의 적응 문제로 확산될 수 있음을 탐색함으로써, 북한이탈주민의 가족이산이 자녀 세대로까지 후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맥락임을 강조한 의의가 있다. 본 연구에서 제시하는 각 기제의 핵심적인 요소는 개입의 표적으로서 향후 북한이탈주민 개인 및 가족을 위한 심리사회적 지원의 방향을 제공한다. 끝으로 본 연구의 시사점과 제한점 및 장래 연구 방향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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