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북한 주민의 법적 지위에 관한 논의는 정전 협정 이후 남북한의 관계에 따라 변화하였지만, 우리 법원은 북한은 반국가단체성과 통일의 동반자로서의 성격을 모두 갖추었다고 보고 북한의 이중적 지위를 인정하고,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어 나름의 기준이 정립된 듯 하다. 기존 우리 법원에서 판단한 남북한간 법적문제를 살펴보면, 대부분 남북한간 교류협력 관계에서 발생하여 남북한 합의서에 따라 판단하거나,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하는 사례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아닌 경우의 남북한간 형사문제에 대해 우리 법원이 판단한 사례는 없다.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역이고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우리 형법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분단 직후 북한 형법을 제정하여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고, 남북한의 형사법 체제가 매우 다르다는 점, 북한 주민은 우리 형법의 존재도 내용도 알 수 없음에도 우리 형법을 무조건 적용하는 것이 형법의 주요 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남북한의 차이를 최소화하고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최대한 준수하면서도, 남북한 주민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형사법 적용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통일 전 독일, 특히 서독에서는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다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등을 계기로 동서독 내부관계에서는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입장을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서독의 학설과 법원의 입장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기능적 국내 개념(der funktionelle Inlandsbegriff)’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국가의 법률이 적용 가능하고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지역만을 법의 적용 영역으로 본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이 개념은 이론적으로 동독을 서독의 형법 적용범위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되었으며, 동서독 기본조약이라는 법적 뒷받침이 생성된 후 다수설과 판례의 입장이 되었다. 이와 연계하여 동독인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는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하면서도 동독인도 ‘독일인’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에도 서독의 동독인의 보호 의무를 변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형법의 적용에 있어서 동독 지역을 제외하면서도, 동독인의 보호 의무를 유지하였다.
북한에 대한 우리 형법의 적용 범위에 관한 기존 논의와 남북한간 발생한 형법 문제 해결 원칙도 독일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형법의 적용 범위, 즉 대한민국 영역에 북한 지역이 포함된다는 의견과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뉘고 있다. 그러나 동서독의 경우와 같이 남북한도 분단 이후 70년의 세월이 지나 법체계나 그 내용에 있어서 동일성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기능적 국내 개념’과 같이 실질적으로 우리 법이 적용되고 기능할 수 있는 지역만을 형법의 적용 범위인 ‘대한민국 영역’이라고 한다면, 북한지역은 우리 형법의 적용 범위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 헌법 제3조 영토조항과 합치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법규정이 실제로 실현되어 규정된 효력을 현실적으로 발휘하는 것이 실효적이라는 점, 북한 지역을 실질적으로 우리 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는 형법상 현실적 영토개념으로 헌법의 규범적 영토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미 북한을 남북한 내부적 관계에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보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현재의 남북한 관계에서도 이러한 영토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북한 주민은 외국인과 같은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혈통주의에 기반한 국적법에 따라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나, 북한의 실질적 통제를 벗어나 우리 지역에서 거주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향유하고자 하는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북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주민의 범죄 행위는 우리 형법이 실질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상태로, 우리 법원이 북한 주민의 범죄 행위를 모두 판단해야 한다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상황과 북한 주민들은 우리 형법의 형성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우리 형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형법의 실질적 적용 범위에서 북한 지역을 제외하되, 특히 남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내국인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 형법 규정상 해석만으로는 제한되며 독일의 ‘대리형사 사법’과 같은 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남북한 교류협력 상황, 통일정책 추진 여하에 상관없이 북한 주민들은 열악하고 비인도적인 북한의 현실을 피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고 있다. 북한 주민 보호도 중요하지만, 북한 주민이 북한 지역에서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북한 주민이었던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 처벌 감정을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믿고 찾아온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망감과 적대감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도 북한 주민들과의 원활한 융합을 저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북한 주민들의 범죄 행위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이므로, 본 연구에서는 남북한 형사 분쟁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독일의 ‘기능적 국내 개념’의 적용을 통해 남북한 분단 상황에서 발생한 형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완책을 세워보고자 부족하나마 시도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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