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북한이 상업은행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금융제도를 도입하면서 기대한 정책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추정해보고, 정책목적이 실제로 달성되기 위한 조건을 검토해 보는 것이다. 더불어 북한의 금융주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사금융을 포함할 경우의 주어진 제도와 정책목적 하에서 최선 및 최악의 금융 경로를 살펴볼 것이다.
김정일 시대 북한의 금융제도는 이원적 은행체계의 도입을 위한 법제정 등 외형상의 변화를 시도했으나, 고전적 사회주의 금융과 차이가 크지 않았다. 다만, 북한의 정책설계자들에게 이제 시장은 배척할 대상이 아니며 시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미세조정(fine tuning)이 필요하다는 경험을 남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015년 김정은은 북한의 금융변화를 ‘경제관리 개선을 위한 기본고리’라고 칭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방·재정·기업·금융 그리고 사금융을 경제·금융주체로 받아들이며 상업은행을 통한 금융중개기능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2015년 12월 개최된 ‘전국 재정은행일군대회’에서는 지방정권 기관이 시장을 이용하여 계획을 초과달성하는 내용이 모범사례로 전파될 만큼 북한에서 시장은 배척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용할 대상임이 분명해 졌다. 북한의 상업은행 도입에는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한 정책설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상업은행은 사금융(돈주) 자금을 중개함으로써 사금융을 제도권으로 흡수하는 금융중개기능을 위해 도입된 것이다. 다만, 북한 내부의 논쟁을 볼 때, 북한의 상업은행은 ‘단기 자금을 장기로 운용하는 능력’은 미숙한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북한 상업은행은 과거 예산제 자금을 공급하던 데에서 벗어나, 해당 지역에서 ‘계획 외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이는 일종의 파생통화인 무현금대부를 공급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큰 틀에서 김정은 시대 북한의 금융제도 설계의 핵심은 금융주체간 ‘이익유인’과 ‘역이익(손해)유인’의 성공적인 길항작용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금융기관 채산제’로 대표되는 이익유인구조를 제도권 금융에 도입하였고, 과거와는 달리 시장을 폭넓게 이용하되 금융주체의 시장참가를 제한하는 방식의 역이익(손해)유인구조를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정책설계자들은 ‘금융주체간 이익과 역이익(손해)의 길항작용’ 통해 소위 ‘경제관리를 위한 기본고리’인 금융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금융주체들은 단순히 ‘기대수익’이 아니라 ‘위험 대비 기대수익’을 고려하여 최선 금융경로를 선택하므로, 정책설계자의 기대와는 다른 비관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위험 대비 기대수익 관점에서 상업은행은 ‘운영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금융(돈주) 자금을 은행계좌를 통해 기업에 연결해주고 관리하는 일종의 신탁경로를 가장 선호하고, 사금융(돈주)은 기업에 직접투자한 후 생산품을 대가로 받는 불법경로를 가장 선호할 수 있다. 이 때, 최악의 시나리오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사금융(돈주) 자금의 일부를 합법적인 상업은행의 신탁경로로 운영하되, 실질적인 자금은 불법경로를 활용하는 것이 용인되는 경우이다. 이는 북한 당국의 정책설계에도 불구하고, 개별 금융주체가 선택하는 최선경로가 달라짐에 따라 의도치 않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이다.
한편, 보론을 통해 북한 상업은행의 무현금대부의 공급을 결정하는 상시지불준비율의 설정방법과 무현금대부의 이자율과 (암)시장이자율의 관계 살펴보았다. 이론적인 관점에서는 제도권 금융의 현금 및 무현금 이자율은 (암)시장이자율에 연동되며, 그 연동의 수준은 북한 상업은행이 스스로 설정한 상시지불준비율에 따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북한의 상업은행 도입과 관련한 제도변화를 살피면서, 북한이 사금융(돈주)을 금융주체로 인정했다는 점과 금융중개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초보적 수준의 경쟁개념이 도입되었으며, 금융주체들은 기대수익이 아니라 위험 대비 기대수익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당국이 의도한 정책설계와는 전혀 다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등 금융주체·경쟁·수익·위험·선택이라는 경제적 요건을 고려하여 북한 금융을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점이 있다.
다만, 본 연구는 대부분 공간문헌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추론한 것으로 북한 상업은행이 현실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설명한 글이 아니므로 최근 북한 금융변화에 대해 구체적 평가를 내리기 곤란하다는 한계도 명확하다.
향후 연구에서는 탈북자 면접, 최신의 동향 자료 등을 폭넓게 활용하여 북한 금융의 실제 변화를 추적하고, 북한 금융에서 ‘지방·재정·기업·금융·사금융(돈주)’ 간의 연결고리를 보다 입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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