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이 연구의 목적은 약소국이며 불량국가인 북한이 핵과 미사일이라는 수단을 바탕으로 미국에 대해 어떻게 억지와 강제라는 방법을 통해 균형, 또는 편승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는가를 설명함으로써 북한 핵정책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다. 이 연구는 탈냉전과 함께 출발한 북한의 핵정책이 2009년과 2018년을 분기점으로 그 이전(협상-확산)과 이후(확산-협상)는 다른 행태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의 핵정책이 군사적 억지와 외교적 강제를 병행하여 추구하면서,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는 북한의 생존전략으로서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본다.
이 연구는 북한의 핵정책이 확산과 협상이라는 이중적인 지속성을 가지며, 확산과 협상을 반복하는 변화의 속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두 개의 가설을 검증하였다. 첫째, (1991~2008년)‘북한은 실존적 억지를 기반으로 대미 강제를 시도했으나 편승에 실패했다.’ 그 결과 북한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협상보다는 확산을 우선하며, 핵억지력의 확대·강화를 통해 최소 억지를 추구했다. 2017년 말 국가핵무력 완성 이후 북한은 ‘공개적 핵확산을 중단’하고 협상으로 전환하였다. 둘째 , ‘(2018년 이후)북한은 최소억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대미 강제를 시도하며 협상을 통해 편승의 조건을 탐색한다.’
북한 핵정책이 나타내는 가장 명확한 제 1의 지속성은 확산이며 제 2의 지속성은 협상이다. 확산의 맥락은 1990년대 초반의 수 kg의 플루토늄 생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라늄 농축, 1~6차 핵실험, 대포동 1호로부터 화성 15형에 이르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하여 북한은 실존적 억지로 부터 최소 핵억지에 근접하는 핵억지의 수준을 달성했다. 협상의 맥락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으로부터 제네바합의, 9.19공동성명 및 2.29합의, 남북 정상회담(판문점 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과 북미 공동성명에 이르는 흐름이다. 핵억지 수준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통한 북한의 대미 강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2017년 이전의 모든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였고 북한은 핵무기를 손에 든 채로 편승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미 강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핵보유를 인정받은 채 편승의 대문을 들어서는 것이다. 대미 강제의 반복적인 실패는 북한의 핵정책이 확산과 협상을 반복하는 변화를 보이는 원인이 된다. 북한은 일방적으로 확산만 추구한 것도 아니며, 반대로 협상만을 지속해 온 것도 아니다. 1991년부터 2018년 까지 북한 핵정책의 경로는 ‘확산’과 ‘협상’이라는 상반된 지속성을 반복하는 ‘변화’로 나타나게 된다. 이는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확산(1989년 이후, 플루토늄 추출 능력 확보)→북미 양자협상(1994년, 제네바합의)→합의 파기/확산(2002~2005: 우라늄 농축 시인, 플루토늄 추가확보)-협상(6자회담: 2005.9.19.공동성명)→BDA제재/확산(1차 핵실험, 대포동 2호 발사)→제재해제/협상(6자회담 재개: 2007.2.13및 103합의)→협상 교착/확산(2008.12월, 검증합의 거부 및 6자회담 이탈. 2009년 플루토늄 추가확보, 광명성 2호발사, 2차 핵실험. 2010년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북미 양자협상(2012.2.29.합의)→합의 파기/확산(2013~2017년 ‘경제-핵무력 병진노선’ 추구: 핵실험 4회, 인공위성 궤도진입 2회, 북극성 1·2호, 화성 12·14·15호 시험발사 성공, 2017.11.29.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협상(비핵화 의사표명 및 공개적 핵확산 중단. 판문점선언, 6.12 북미공동성명, 평양선언)
부시 1기 행정부 이래 핵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은 미국의 ‘CVID에 의한 선 비핵화’와 북한의 '단계별 동시행동 원칙에 의한 선 관계정상화’의 대립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의 차이는 과거 합의가 파기 되었던 것에 대한 불신, 북미가 이행 해야 할 조치의 성격(등가성, 비대칭성, 불가역성)차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칙인 CVID는 현실적으로 북한의 적극적 협조가 없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북한의 자발적인 ‘공개적 핵확산 중단’과 정상 간의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방식’의 핵협상은 전통적인 동결-신고-검증-폐기의 단계를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북한은 자발적인 ‘선의의 조치’로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를 유도하는 ‘단계별 동시행동’ 원칙을 추구함으로써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제한된(부분적) 비핵화로 대미 강제의 궁극적 목적인 편승을 허용 받으려 할 것이다.
북한의 대안은 첫째, 완전한 비핵화에 의한 완전한 편승. 둘째, 제한적 비핵화에 의한 제한적 편승. 셋째, 확산으로의 복귀하여 대미강제를 지속하는 것 등 세 가지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비핵화의 세 가지 전제조건을 완전히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 원칙이나 교리가 아니라 현실에서 CVID 구현하는데 따르는 제약은 미국의 기술적 접근방법이 북한의 정치적 접근방법에 수렴되는 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로 양자의 한 쪽이 협상을 이탈하지 않는다면 결국 제네바합의와 유사하게 미국의 ‘CVID에 의한 선 비핵화’와 북한의 ‘단계별 동시행동에 의한 선 관계개선’의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CVID 개념에 의한 완전한 비핵화는 제한될 것이지만, 부분적 비핵화는 가능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이 연구의 이론적 함의는 북한 핵정책의 본질과 그 한계를 파악하는 데 작은 기여를 했다는 점에 있다. 첫째, 북한 핵정책에 있어서 협상과 확산이라는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지속성을 파악하였다. 둘째, 대미강제의 실패와 핵확산의 반복의 과정을 통해 북한의 핵억지 수준이 실존적 억지로부터 최소핵억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셋째, 협상과 확산이 반복되는 것은 더 강력한 핵억지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미강제를 시도하려는 북한 핵정책의 본질적 속성에 기인한다는 것을 규명하였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러한 반복은 북한 핵정책의 내재된 속성이다. 넷째, 북한에게 새로운 대미 강제와 핵협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발적인 핵확산 중단과 제한적 비핵화를 통해 핵능력을 보유한 채 편승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함의가 주는 정책적 시사점은 첫째,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이 의미하는 비핵화는 CVID와 다를 수 있다. 둘째, 완전한 비핵화의 전략적 결단이 있었다고 가정해도 CVID를 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셋째, 확산과 협상의 반복은 북한 핵정책에 내재되어 있는 속성이므로 2018년의 협상으로의 전환은 김 위원장이 언급한 비핵화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다시 확산으로 이행될 수 있다. 넷째, 기술적 접근과 정치적 접근의 타협에 따라서 완전한 비핵화가 지연되거나 부분적 비핵화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의 전략적 결정을 강화하고, 실행 의지를 높일 수 있는 관여는 더욱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하지만, 제재의 유지와 군사적 억지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국가들 간에는 서로의 의도를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역량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북한의 궁극적 의도가 ‘완전한 비핵화’라고 예단함으로써 정책에 위협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위협이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관여와 군사적 억지의 균형, 즉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비핵화의 전략적 결단과 실행을 촉진하고 확산으로의 복귀를 차단하는 것과 제재의 대오를 유지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할 때까지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억지를 달성하는 것은 외교와 군사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북한 핵정책의 지속성과 변화에 있어서 이 연구에서 다루지 않은 중국의 부상과 미중관계의 변화, 북중관계의 밀착과 같은 국제체제 수준의 변수와 김정은 체제 내부의 정책결정 과정과 같은 북한 국내정치적 변수는 추가적인 연구과제로 남아있다.
주제어: 북한 핵정책, 억지와 강제, 실존적 억지, 최소억지, 균형과 편승, 비핵화, 지속성과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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