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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동독, 베트남, 북한의 체제변동 비교연구 : '국가-사회'관계의 동학을 중심으로

A Comparative Study of Socialist Transition in East Germany, Vietnam and North Korea since 1970s: By Focusing on the Dynamics of ‘State-Society’ relation.

상세내역
저자 노현종
학위 박사
소속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전공 사회학과
발행연도 2021년
쪽수 428
지도교수 박명규
키워드 #노현종   #북한   # 동독   #베트남   #체제전환   #체제개혁   #비교역사분석   #사회주의   #North Korea   #East Germany   #Vietnam   #socialist transition   #comparative historical analysis   #soc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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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역
초록
본 연구는 동독, 베트남, 북한의 체제변동을 비교 분석하였다. 이 세 국가는 사회과학자, 정치인, 언론인들에 의해 ‘동일한 유형’의 정치체제로 간주되어 왔다. 실제로 세 국가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삼았으며 실제 경제제도 역시 매우 유사하였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던 세 국가는 각자 다른 경로를 걷게 되었다.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는 시민혁명으로 말미암아 붕괴하였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일당독재 정치체제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그 사회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율성과 독자성을 누리고 있다. 반면 북한은 여러 가지 난관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세습을 통해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재체제를 장기간 지속하고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독재정권의 사상적 바탕을 제공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3대 세습이라는 초유의 독재체제로 변한 것은 북한의 정치와 사회의 특수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 세 사회주의 국가들을 비교하여 각국의 체제변동에 영향을 준 요인들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세 국가의‘국가-사회’관계의 동학이 각국의 경로에 영향을 주었다는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역사적으로 입증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거대한 국가조직을 지칭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핵심적인 기능과 역량을 세분화하여 계획경제를 통해 주민의 통제를 실시하는‘물리적 통제능력’, 실질적인 재화를 제공하는‘자원제공능력’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의 비전과 집단주의 원칙을 정당화할 수 있는‘상징적 동원능력’차원에서 고찰하였다. 반면 ‘사회’는 당과 국가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 신념, 가치 등을 유지하고 있는 모든 자발적인 영역으로 개념화하였다. 그리고 양자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외 관계적 요인을 분석하였다. 연구방법으로는 실제 발생하였던 역사적 사건을 탐구하며, 이를 발생시킨 여러 요인을‘비교’분석하고 인과관계를 추론하는‘비교역사분석’방법을 채택하였다.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2차 문헌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수집한 다양한 1차 자료를 검토하여 활용하였다.
동독에서는 1971년 호네커 서기장 취임과 동시에 새로운 경제정책이 실시되었다. 기존의 분권화적인 ‘신경제정책’이 중단되고 재국유화가 추진되어 중앙계획경제와 ‘물리적 통제능력’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경제통합정책’을 실시하여 그동안 도외시 되었던 복지를 확충하였다. 이 시기에 확립된 정책의 골격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는 시점까지 유지되었다.
1970년대 전-지구적인 데탕트 상황이 전개된 가운데 동독은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쳤다.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을 통해 서독의 경제 지원 및 서구권 수출 시장의 접근권을 얻을 수 있었다. 향상된 ‘자원제공능력’덕분에 사회주의권에서 가장 풍요로운 국가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으며 주민들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독은 경제적 지원에 대한 대가로‘상징적 동원능력’의 감퇴를 용인해야만 했다. 문화정책과 종교정책이 완화되어 동독의 예술가들은 일정 수준의‘표현의 자유’누릴 수 있었다. 또한 교회는 서독의 지원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힘을 비축하여 다양한 환경운동과 사회운동의 모체가 되었다. 예술가, 종교인 그리고 주민들은 동독의 경직된 사회주의 체제와는 다른 사회적 질서를 상상하면서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침식시켰다. 당시 동독 지도부도 서독과의 관계개선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상, 급진적인 변화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였다. 하지만 사회영역은 계속하여 성장하고 있었고 소련의 고르바초프의 집권과 맞물려 더욱 고조되었다. 축적된 불만이 폭발하여 급기야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위가 사회주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통일로의 체제전환을 유도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통일된 베트남은 스탈린식 사회주의 체제를 청사진으로 삼았다. 하지만 베트남은 사회주의 중앙계획경제를 위해 필수적인 근대적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주민의 대다수는 농업 합작사에 속해 있었지만, 이 제도는 주민들을 사회주의 방식으로 통제하지 못했으며 생산성도 매우 낮았다. 실제로 국영기업에 종사하는 인원수도 매우 적었다.
통일 이후 당 지도부는 남과 북의 경제제도 차이를 우려하여 급진적인 국유화 정책을 실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이 베트남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보이자 ‘해외투자법’을 제정하여 잠시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베트남은 이데올로기에 경도되기 보다는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고민하였다. 그러나 전쟁배상금 문제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협상이 결렬되면서 소련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방침으로 선회하였다. 따라서 1978년 3월 남부의 급진적인 국유화 조치를 통해 사회주의 건설을 본격화하였다. 즉 시장이 아닌 사회주의적인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미 1975년 협동농장의 무리한 확장으로 인해 농업생산성이 하락한 상황에서 국유화로 인해 상공업 부문의 생산까지 급감하여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였다. 이는 소련의 원조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게다가 1978년부터 기근이 발생하였으므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경제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80년대 초반부터 분권화 정책이 실시되어 농민들과 기업들의 자율성은 확대되고 있었다. 당시 분권화 정책을 이끌었던 개혁파들의 입지는 고르바초프의 집권과 완고한 지도자 레 주언 서기장의 사망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이 덕분에 1986년 제 6차 당 대회를 통해 ‘도이머이 정책’이 실시될 수 있었다.
더구나 베트남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사조가 허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 베트남 작가들과 개혁적인 관료들의 조심스러운 의견 개진이 이루어졌으며, 소련과의 관계가 강화되면서 상당히 자유롭고 개인주의에 기초한 영화와 소설의 창작이 가능하였다. 반면 베트남에서 사회영역의 반발은 강력하지 않았다. 남부에 위치한 가톨릭, 불교, 까오다이교, 호아하오 불교 등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국가와 대립하였지만 예술가와 종교인들은 요구는 제한적이었으며 자유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를 강조하여 전-사회적인 연대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사회의 반발이 심각하지 않았고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베트남 지도부는‘자원제공능력’을 향상하여 새롭게 정당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했다.
한편 1970년대 북한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매우 강력한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였다. ‘주체사상’을 통한 유일체계가 완성되었으며 후계자 김정일이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북한 경제는 중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의 신생 사회주의 국가들이 초기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룩하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스탈린 방식을 통해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다. 당시 계획경제의 문제점이 노출되었지만‘사상동원’을 통해 가까스로 성장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개입과 영향력이 축소되는 조짐을 틈타서 공세적인 대남정책을 펼쳐 민족관계의 주도권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적 침체를 맞아 위기를 발현시킨 모순들이 서서히 축적된 시기였다. 1984년 합영법을 통해 새로운 경제정책을 도입하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며 1970년대의 골격이 1990년대 초반까지도 지속되었다.
1989년대 말부터 동구권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시점에서 북한은 ‘조선민족제일주의’와‘우리식 사회주의’를 제시하면서 ‘상징적 동원능력’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동시에 개혁의 논의를 물리치고 계획경제를 고수하여‘물리적 통제능력’을 지속시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석유와 원자재의 수입 차질로 인해 계획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자원제공능력’역시 하락하였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농업, 무역, 경공업을 강조하는 ‘3대 제일주의’를 표방하였지만 실질적인 제도개혁은 실시하지 않았다. 또한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새로운 경제적 돌파구를 마련해보려 하였지만 이 역시 북핵 문제와 김일성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하여 실현되지 못했다.
‘고난의 행군’이 본격화 되면서 북한의 계획경제는 사실상 작동을 멈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수용하는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김정일은 군부의 이권을 보장하고 군인을 우대하는 ‘선군정치’를 통해 가까스로 ‘물리적 통제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자원제공능력’은 고갈되었으며 사실상 국민들은 방치되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기업들과 주민들은 시장 활동을 통해 생계와 경영을 이어나갔다. 당시 많은 주민들이 체제에 대한 불만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존하는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항 담론을 찾지 못했다. 또한 북한의 철저한 감시체제로 인해 대규모 사회운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국가의 우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가까스로 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 역시 통제력의 약화, 계획경제의 이완, 비사회주의적인 문화의 등장을 용인해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세 국가의 상이한‘국가-사회’관계의 동학이 각국의 경로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조명하였다.
목차
"Ⅰ. 서론
1. 문제 제기 및 연구목적
2. 선행연구검토 4
1) 체제전환에 관한 연구 4
2) 체제개혁에 관한 연구 7
3) 체제고수와 체제변동 9
3 이론적 논의연구범위분석틀 10
1)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국가-사회'관계의 동학 11
2) 연구범위 및 사회주의 체제 유형의 세분화 19
3) 연구의 분석단위와 분석틀 25
4. 연구방법론 29
1) 비교역사분석 (Comparative Historical Analysis) 30
2) 왜 비교역사분석인가 :'역사적 제도주의'와의 차이점 32
3) 분석자료 34
Ⅱ. 동독: 체제전환의 경로 36
제1절 1970년대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성격과 정책 방향 38
1. 새로운 정치지도부의 형성과 경제정책의 수정 움직임 38
1) 울브리히트의 축출 38
2) 사회경제 통합정책과 재집중화 41
2. 데탕트의 영향과 동방정책의 호응 49
1) 데탕트와 동방정책 49
2) 동독의 동방정책 수용과 통제의 완화 53

제2절 사회 영역의 성장과 갈등 57
1. 동독에서 보장되었던 다양한 주민의 권리 58
1) 사회주의 체제의 법과 인권 58
2) 성 평등과 섹슈얼리티 64
3) 합리적 소비자와 사회주의 체제의 갈등 71
2. 교회와 사회주의의 갈등과 대립 82
1) 기독교 박해 82
2) 타협과 공존 86
3) 사회주의 체제의 침식과 사회운동의 모체로서의 교회 90
3.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약화 94
1) 문학과 미술 94
2) 영화 및 음악 103
제3절 시민사회의 봉기와 통일로의 전환 117
1. 사회주의 체제의 위기 117
1) 경제적 위기와 전망의 부재 117
2) 고르바초프의 상징적인 효과 120
3) 전국적 시위와 탈스탈린적 사회주의의 종말 124
2. 사회주의 체제 개혁시도와 민족의 부흥 130
1) 한스 모드로의 개혁시도 131
2) 시민운동진영의 주도권 상실 139
3) 민족의 부흥과 독일의 통일 145

Ⅲ. 베트남: 체제개혁의 경로 161

제1절 1970년대 베트남 사회주의 체제의 성격과 정책 방향 163
1. 북부에서의 미완의 사회주의 건설과 통일 이후 베트남의 사회경제적 상황 164
1) 북부에서 중단되었던 사회주의 건설 164
2) 통일 베트남의 사회경제적 상황 170
2. 스탈린체제의 전국적 수립시도 172
1) 1975년 제4차 당 대회와 전국적 사회주의 건설 172
2) 협동농장의 확대와 신설 176
3) 대외관계가 사회주의 체제 건설에 끼친 영향 182
4) 남부에서의 무리한 기업 국유화 시도 186

제2절 사회주의 개혁시도와 한계 192
1. 지도부의 부분적 정책 수정과 한계 192
1) 지도부의 정책 수정 움직임 192
2) 생산물 계약제의 도입과 한계 196
3) 기업의 부분적 자율화의 승인 202
2. 완화된 사회문화정책 209
1)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변모 210
2) 통일 이후 종교정책과 갈등 224

제3절 도이머이 개혁과 적응 229
1. 제6차 당 대회와 도이머이 229
1) 경제상황의 악화 229
2) 제6차 당 대회: 도이머이와 내부혁신 231
2. 제6차 당 대회 이후의 정책변화 235
1) 사회주의 개혁의 본격화 236
2) 대외관계의 변화: CMEA와의 협력좌절과 개방의 다각화 250
3) 호치민 사상의 재해석과 사회주의로부터의 사실상 이탈 257

Ⅳ. 북한: 체제고수의 경로 265
제1절 1970-80년대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격과 방향 267
1. 1970-1980년대 계획경제의 유지와 부분적 변화 268
1) 1970년대 외자도입과 대중동원의 재등장 268
2) 1980년대 경제제도의 부분적 변화와 침체의 본격화 277
2. 김일성 유일사상체계와 초-스탈린체제의 완성 285
1) 주체사상의 확립과 정통적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의 이탈 285
2) 주체예술과 주술적 프로파간다를 통한 초-스탈린화 288
3) 1970-1980년대 북한의 제한적인 사회주의적 근대성 304
3. '남조선 혁명론'에 기반한 대외전략과 그 한계 311
1) 1970년대 북한의 대화 공세 312
2) 1980년대 무원칙적인 대외전략 318

제2절 탈냉전시기 북한의 대응 327
1. 개방의 모색과 계획경제 유지의 동시 추진 327
1) 위기의 인식과 남북관계개선의 움직임 328
2) 체제 고수와 경제발전노선의 부분적 변화 336
2. 사상통제를 통한 외부영향 차단 343
1)'우리식 사회주의'와 '조선민족제일주의'의 등장 343
2) 수령형상문학과 주체예술의 고수 348

제3절 위기의 전사회화와 돌파전략 353
1. 통치구조의 변화 354
1) 김일성의 사망과 유훈통치 354
2) 선군정치를 통한 새로운 지배연합의 구축 358
2. 계획경제의 와해와 시장의 태동 366
1) 경제상황의 악화와 국영부문의 변화 366
2) 자생적 시장의 태동: 이탈자의 시장 368
3) 국가기관의 시장화 372
3. 고난의 행군의 후유증과 민간신앙의 활성화 375
1) 고난의 행군시기 사회에 만연된 죽음 376
2) 민간신앙의 재활성화 378

Ⅴ. 결론 386
1. 비교의 내용과 결과 387
2. 비교를 통한 이해의 확장 394
참고문헌 398
Abstract 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