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적 체제전환국들은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한다. 이런 체제전환국들에서의 ICT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과정에서는 기업가와 투자자의 적극적 역할을 전제로 하는 일반적인 ICT 스타트업 생태계와는 다소 상이한 발전 경향이 나타난다.
사회주의 체제 성립 이후 장기간 생산수단을 독점해온 정부는 체제전환 초기 민간에서의 ICT 스타트업 형성이라는 현상을 인지하게 되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체제전환국 정부는 생산수단의 실질적 사유화를 일부 인정하더라도 민간 ICT 기업가의 스타트업 설립을 용인하여 새로운 행위자의 등장을 받아들이고 이들에 대한 물적, 제도적 지원을 통해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비공식적 합작 구도를 택하거나, 아니면 민간 기업가가 설립한 스타트업의 활동에 대해 승인 없이 묵인하는 형태로 대응함으로써 ICT 인프라를 활용한 체제 내 생산성 증대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중국이 전자의 선택을 했다면, 쿠바는 후자에 가까운 선택을 취했다. 베트남은 중국과 비슷한 입장을 택했으나, 정부의 신속한 제도개선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초기조건상의 열위로 인해 중국보다 ICT 스타트업 생태계의 형성이 다소 지연되었다.
ICT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자본을 공급하는 행위자 역할을 하는 투자자는 ICT 스타트업들이 형성된 이후의 생태계 발전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생태계 형성기에 ICT 스타트업의 활동을 허용한 체제전환국 정부는 부족한 생산요소인 자본을 공급하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게 되나, 벤처금융에 대한 역량 부족으로 인해 내부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중국은 미국 실리콘밸리 등과의 교류 등을 통해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외국계 벤처캐피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ICT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베트남은 국제기구 및 인접국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외국계 투자자 그룹을 유치할 수 있었다.
체제전환국에서의 ICT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과 발전 경험은 북한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물론 ICT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노동과 자본 측면의 행위자인 민영 기업가와 투자자가 북한에 아직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 역시 2010년대 이후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등 기업에 대한 자율성을 확대하는 형태의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고, 점진적 체제전환국들과 유사하게 인적자원 면의 강점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중심 경제발전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본다면 북한에도 ICT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은 갖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돈주 등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ICT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의 열쇠는 공식적으로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북한 정부가 쥐고 있다. 중국 및 베트남에서와같이 북한 정부가 이후 잠재적 민간 기업가들과 사실상의(de facto) 민관합작을 취하며 정부 벤처캐피털과 같은 형태로 자본을 공급,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북한에서도 ICT 스타트업 생태계가 형성되어갈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북한이 가진 지정학적 장점을 고려했을 때, 미국에 필적할 정도로 성장한 중국의 ICT 스타트업 생태계는 국제기구 등을 통한 지원이 제한된 북한이 활용 가능한 또 하나의 외부 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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