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탈냉전기 위기 극복 차원에서 이뤄진 북한의 적 담론 변화를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외부에 대한 위협 인식은 내부결속을 높이는 수단 중 하나다. 이 연구는 북한이 대미 위협 인식을 강조함으로써 지배 권력의 정당성을 추구했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연구의 핵심 분석 자료인 외무성 담화문(성명)에는 북한의 대외 인식 등이 담겨있다. 연구에서는 분석 자료에 나타난 대미 위협 인식 관련 용어와 사회적 맥락, 개념 등을 살폈다.
분석 기간은 탈냉전이 시작된 1989년부터 2017년까지다. 세부적으로 담론 1기(1989-1998)와 2기(1998-2008), 3기(2009-2017)로 구분했다. 분석 기간에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비롯해 ‘선군’, ‘김정일 애국주의’ 등 다양한 지배 및 통치 담론을 생산했다. 지배 담론은 북한의 적 담론이 어떠한 개념으로 구성되었는지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분석 결과, 북한의 적 담론은 대내외적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체제 유지를 위해 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북한의 적 담론은 정치?사회적 분기점에서 군사적 위협을 시작으로 정치, 경제적 위협을 포괄하는 경향을 보였다. 담론을 전개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각각 자주, 선군, 국가 등의 개념이 활용되었다.
시기별 특징을 보면, 탈냉전 초기에 북한은 적의 위협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담론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군사적 위협을 주로 강조하였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과 김일성 사망 등 체제불안정이 가속화되면서 국가의 존망(存亡)이 걸린 안보 이슈를 극대화함으로써 내부결속을 유도했다. 미국 및 국제기구와 협상 국면에서는 ‘자주’, ‘평등’을 강조하며, 외부의 규범 침투를 방어하는 데 집중했다.
이후 북한은 선군체제의 위기 담론을 확산함으로써 지도자 리더십과 군사력 증대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때 정치?군사적 위협 인식이 비중 있게 나타났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해짐에 따라 북한은 인권문제 제기, 민주주의 강요, 비핵화 제안에 강한 거부적 정서를 보였다. 이를 ‘체제전복’으로 간주했으며, ‘선군’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끝으로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주권 침해를 위협 담론으로 생산했다. 이 시기에는 경제적 위협 인식이 추가 확산되었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대외적 환경은 우호적이지 못했다. 제재 범위와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이를 ‘인민생활 억압’, ‘주권 훼손’ 등으로 규정했다. 이때 적은 ‘사회주의 대(對) 자본주의’ 같이 진영 논리보다 국가 간 대결구도로 인식되었다.
북한은 대내외 환경의 변화 지점에서 적의 위협을 노골적으로, 때로는 오인 및 과장 해석하기도 했다. 이러한 적대적 담론은 지배 체제의 정당성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결국 적 담론의 변화는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북한의 결속 양식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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