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북한 종교정책의 변화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북한종교정책의 변화가 주체사상 형성의 키워드로 작용한 인간중심철학의 등장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음을 논증하고, 이를 전후로 하여 북한 사회에 있어 종교에 대한 인식과 정책상의 변화가 뚜렷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밝히고자 했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내재적, 실증적 접근을 통해 북한종교정책의 변화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고, 북한 사회 내 현상적 변화와의 관련성 해명을 북한체제의 작동원리로 인지되고 있는 주체사상의 변화과정과 대비시켜 양자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 북한의 종교정책 변화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도모하고자 했다.
이에 입각하여 본 논문은 6·25 한국전쟁 이후 북한종교정책의 가시적인 변화가 태동되기 시작하는 1972년을 분기점으로 삼아 인간중심철학의 대두 이전과 이후를 구분, 결국 북한의 종교정책이 1972년 이후부터 인간중심철학으로 대변되는 인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할 수 있게 됨으로써 북한사회에서 종교단체가 공식적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실용주의적 정책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음을 입증했다. 실제로 인간중심철학의 대두 이전 시기인 1972년까지는 북한의 종교정책이 철저하게 마르크스-레닌주의적인 인식에 기초하여 전개되었으나, 인간중심철학 대두 이후인 1972년 후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특징을 이루는 계급론적 요소가 희석되면서 적극적인 형태의 통일전선적 접근이 이루어져 북한종교단체의 등장과 대외적인 활동이 이루어졌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남북종교교류 협력의 새 토대 구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60년대 이후 급격한 대내외 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김일성이 내세운 주체사상의 반사대주의 자주노선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후 주체사상은 단순한 정책적 지표의 차원을 넘어 철학적 사상체계로 체계화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황장엽이다. 황장엽은 그 자신의 독특한 체험과 사유과정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 계급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시도하여 그 동안 계급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인간 자체를 중심으로 역사를 보고자 하는 인식의 전환을 도모, ‘인간중심철학’을 내놓는다. 그의 인간중심철학은 계급주의적 관점을 탈피하면서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체로 세우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인본주의적 사회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러나 황장엽의 인간중심철학은 주체사상의 주류가 될 수 없었다. 황장엽이 주체사상의 이론적 틀과 내용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통치 차원의 체제이데올로기로 관리해 나간 것은 김정일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황장엽이 주체사상의 실질적인 내용을 계급투쟁론을 배제한 인민대중중심주의와 인본주의적 인간철학으로 경도되는 것을 경계했으며, 이러한 입장을 수령중심주의로 정식화했다. 이에 따라 김정일과 북한의 사상이론가들은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동의를 하면서도 인민대중의 독자적 지위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인민대중은 수령의 영도에 따를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결국 황장엽의 인민대중중심주의는 사상 이념적 방향제시에 그치고, 정책적 차원의 직접적인 변화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변화의 배경을 이루는 인본주의에 대한 해석학적 원리로 작용하여 주체사상에 입각한 북한종교정책 변화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북한은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해외에서부터 종교인들과의 접촉을 시도하여 실제로 80년대 이후에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게 되었고, 특히 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이에 적용되었던 이념적 제약도 상당히 완화되어 그 폭을 넓혀 나갔다. 주체사상을 매개로 한 인본주의적 요소의 도입이 종교에 대한 이해와 관련하여 직접적인 언급으로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1981년의 제1차 통일대화에서부터였다. 북한 종교인들은 주체사상이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사랑의 이념’이라는 인본주의적 해석을 앞세우며 북한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북한 종교인들이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근거로서 북의 공산주의자들과 남의 기독교인 사이에 공통적 이념적 기초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사회주의와 기독교, 주체사상과 기독교가 철학적 기초와 세계관에서 그리고 구원을 얻는 방법론상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사람 중심의 주체사상이 인간사랑의 기독교 이념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점, 공산주의자들과 기독교인들이 사상과 신앙에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서로 단결 협조하여 나갈 수 있는 이념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등을 부각시켰다.
결론적으로 80년대 이후 북한 종교정책 변화에 있어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기독교를 비롯한 북한 내 종교단체들에 대한 ‘공적’ 지위 부여가 뚜렷해졌고,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활동의 ‘공식성’이 제고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상부구조인 종교단체에 그 내용과 형식성을 부여하는 본격적인 종교 활동의 부활, 즉 종교의식의 거행과 종교건물 건립을 합법화하는 헌법 조항의 채택 등 북한사회 내에서의 합법적 지위 획득은 북한의 종교가 그 이전과 달리 실체적 의미를 지니게 되고, 이에 따른 대내외적 역할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음을 말해 준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90년대 말부터 남북종교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정치사회적 의미를 제고시켜 나가면서 남북간 민간교류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시대적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어, 앞으로 남북한 양측 모두에서 종교가 민족사회의 통합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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