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문제의식(main theme)은 다음과 같다. 탈냉전기 북한은 왜 다양한 형태의 대미전략을 구사하는가? 즉, 어떤 때는 핵/미사일로 미국 및 주변국을 협박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대외개방/경제협력으로 미국 및 주변국과 화해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하며, 그리고 또 어떤 때는 미국만을 직접 상대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주변국으로 우회해 미국으로 접근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하는 등 지난 20년간 북한은 매우 다양하고 다차원적인 대미 외교전략을 구사해 왔으며, 지금도 그것은 변함없이 진행 중에 있다. 다시 말해 탈냉전기 북한이 이처럼 다양한 대미전략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한 이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떠한 조건과 상황에서 갈등/협력을 선택하며, 또 어떠한 조건과 상황에서 대미 직접접근/우회접근을 선택하는가? 라는 것이 본 논문의 주요 질문(main question)이며, 이를 밝혀 보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연구목적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위 질문에 보다 적실성 있는 해답을 찾기 위해 가설(hypothesis)을 설정하고, 그 가설을 다양한 지표(indicator)를 통해 측정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우선, 본 논문에서 제시한 가설은 “북한의 대미전략은 ‘체제위협의 정도’와 ‘미국의 대북 태도변화’에 따라 4가지 패턴으로 나타난다. 즉, ① 체제위협이 증대되고 미국의 태도가 온건하면 ‘대미 갈등적 직접접근’을 선택하고, ② 체제위협이 증대되고 미국의 태도가 강경하면 ‘대미 협력적 우회접근’을 선택하며, 또한 ③ 체제위협이 감소되고 미국의 태도가 온건하면 ‘대미 협력적 직접접근’을 선택하고, ④ 체제위협이 감소되고 미국의 태도가 강경하면 ‘대미 협력적 우회접근’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 그리고 조건과 상황이 동일하면 이 패턴은 언제든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위 가설을 보다 설득력 있게 논증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지표(indicator)와 측정항목(a measuring item)을 설정하여 검증하였다. 첫째, 체제위협의 높고 낮음을 평가하기 위해 ‘정치사회적 불안정․경제적 수준․외부적 위협’이란 지표를 설정하였고, 각 지표별 측정항목으로는 ① 정치사회적 불안정의 측정항목은 ‘권력승계 및 지도부의 교체로 인한 권력구조의 변화, 국가통제 기능의 약화, 사회적 계층 분화, 대량 탈북자 발생’ 등을 설정하였고, ② 경제적 수준의 측정항목은 ‘경제성장율, 식량수급실태, 공장 및 생산시설 가동, 대외무역 현황’ 등을 설정하였으며, ③ 외부적 위협의 측정항목은 ‘국제 및 동북아 질서의 변화, 관련국의 정치․경제적 압박, 동맹국의 공약 약화’ 등을 설정하였다. 이렇게 설정된 각 지표별 측정항목에 입각해, 체제위협이 높으면 갈등적 행동을 하고 체제위협이 낮으면 협력적 행동을 한다는 가설을 검증하고자 하였다.
둘째, 미국의 대북한 강경 태도와 온건 태도를 평가하기 위해 미국의 ‘대북인식․대북정책․북미관계’라는 지표를 설정하였고, 각 지표별 측정항목으로는 ① 미국의 대북인식과 정책의 측정항목은 ‘행정부별 국가기관 보고서에 나타난 북한에 대한 평가, 각종 담화문이나 관료들의 언론 브리핑의 수준(대통령, 장차관, 실무진) 및 종류(정치․군사․경제․인도주의), 구체적 대북조치’ 등을 설정하였고, ② 북미관계의 측정항목은 ‘북미간 만남 및 대화의 횟수, 대화의 수준 및 종류, 합의문의 도출 여부’ 등을 설정하였다. 이렇게 설정된 각 지표별 측정항목에 입각해, 미국의 대북 태도가 강경하면 주변국을 통한 우회접근을 하고 미국의 대북 태도가 온건하면 미국에게 바로 가는 직접접근 한다는 가설을 검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외교정책에는 패턴이 있고, 그 패턴은 반복되고 또 변화한다는 것이다. 즉, 탈냉전기 북한 외교정책은 대미관계정상화를 위한 4가지 전략(갈등적 직접접근, 갈등적 우회접근, 협력적 직접접근, 협력적 우회접근)이었고, 이 전략은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상황에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체제위협의 높고 vs 낮음이란 조건 및 상황과 미국의 대북 강경 vs 온건이라는 조건 및 상황이 동일하면 언제나 북한은 4가지 틀 속에서 변화된 대미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증명한 것이 클린턴 행정부 1기의 갈등적 직접접근과 부시 행정부 1기의 갈등적 직접접근이었다.
두 번째, 도출한 결론은 북한은 ‘북한식 합리주의’에 입각한 외교정책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즉, 기존 대부분의 북한관련 연구들은 북한을 ‘미친 행위자’(mad actor thesis)로 인식하고, 북한의 외교정책이나 수행전략을 ‘위기조성(crisis trigger)’ 내지 ‘벼랑끝’ (brinkmanship) 전략 등으로만 설명하는 경향이 컸다. 하지만 북한을 미친 행위자, 이해할 수 없는 집단, 비합리적 리더십 등으로 바라보고 접근할 경우 아무런 패턴도 발견할 수 없고, 그 어떠한 특징도 찾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북한에게는 나름의 외교정책 목표가 있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이 있으며, 전략을 완성하기 위한 나름의 전술도 보유하고 있었다. 지난 20년간 북한은 “체제생존 및 정권유지․강화, 경제난 해결, 외교적 고립 탈피”라는 외교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일관된 대미관계정상화를 위한 외교전략을 수행해왔다. 따라서 북한의 외교는 비록 ‘북한식 합리주의’라고 정의될지는 몰라도, 이는 매우 정상적인 외교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도출된 결론은 탈냉전기 북한 외교정책은 대미관계정상화를 이룩하기 위한 외교전략인데, 여기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는 것이다. 즉 체제유지와 대외개방의 딜레마’, ‘체제유지와 대미관계정상화의 딜레마’, ‘체제유지와 핵무기의 딜레마’가 그것이다. 북한 역시도 회생 불가능한 상태의 경제를 회복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북한에게 필요한 대안은 제한적 대외개방과 한정적 개혁정책이 아닌, 전면적 개방과 과감한 개혁을 통한 외부 자본 및 기술, 그리고 투자의 유치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탈냉전 직후 동구공산권 및 구소련의 전면적 대외개방이 정치개혁을 추동하고, 이것이 다시 걷잡을 수 없는 체제붕괴로 이어진 사례를 목격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섣불리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도, 그렇다고 침체의 늪에서 허덕일 수만도 없는 ‘체제유지와 대외개방의 딜레마’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대미관계정상화를 안전하게 이룩하기 위해 핵을 가졌으나, 오히려 이 핵이 대미관계정상화를 막고 있는 형국이다. 즉, 핵을 가진 상태에서의 대미관계정상화는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이루게 되면 궁극적으로 체제와 정권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미관계정상화 과정에서 북한이 처해 있는 딜레마이다.
네 번째 도출한 결론은 내가 정리한 탈냉전기 북한 대미전략의 4가지 패턴이라는 것은 어떠한 임계점이라는 것이 없다. 북한의 협력적 행동과 갈등적 행동, 그리고 대미 직접접근과 대미 우회접근 모두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시기에는 대미 갈등적 직접접근의 성향이 강하고 어떤 시기에는 대미 갈등적 우회접근의 성향이 강하며, 또 어떤 시기에는 대미 협력적 직접접근의 성향이 강하고 어떤 시기에는 대미 협력적 우회접근의 성향이 강할 뿐이지 반드시 그렇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협력을 하면서도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대미 직접접근을 하면서도 주변국을 100% 배제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즉, 그러한 경향성이 강할 뿐 협력과 갈등의 어떠한 분명한 임계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교정책을 분석해야 하고,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하는 현실적 상황을 감안할 때 이러한 북한의 대미전략 패턴을 도식화해서 분석한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에서 도출된 4가지의 패턴은 북한 외교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북한 외교정책 연구의 이론화ㆍ과학화에 일조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탈냉전기 북한의 대미전략 패턴과 그 결정요인에 대한 본 논문은 북한의 외교정책 전반은 물론이고, 대남‧대일‧대중·대러정책 및 대주변국․대국제사회에 대한 결정과정 등도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유용한 툴(tool)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더불어, 정책적으로 본 논문에서 제시한 대미전략의 4가지 패턴은 북한의 행위(behavior)를 짐작하게 해 예측 가능한 대북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북한의 군사도발로 인한 대결 상황에도, 그리고 동시에 협력으로 인한 대화 상황에도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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