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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문건 속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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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션즈화
출판연도 2024년 07월 15일
출판사 피엔에이월드
쪽수 832
키워드 #션즈화   # 한국전쟁   # 해방전후사   # 근현대사   # 기밀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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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소개 대체 이미지 중국 상해 화동사범대학 역사학과 종신교수이며, 국제냉전사와 한국전쟁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이다. 주요 연구업적으로는 『최후의 천조: 모택동 김일성과 중조관계(最後的天朝: 毛澤東, 金日成與中朝關系(1945-1976)』(中文大學出版社, 2017), 『모택동, 스탈린과 조선전쟁(毛澤東, 斯大林與朝鮮戰爭)』(廣東人民出版社, 2013), 『After Leaning to One Side: China and Its Allies in the Cold War』(Stanford University Press, 2011), 『A Misunderstood Friendship: Mao Zedong, Kim Il-sung, and Sino-North Korean Relations, 1949-1976』(Columbia University Press, 2018)을 비롯한 약 20여 권의 저서가 있으며, Diplomatic History, Cold War History를 비롯한 영어권 및 한국, 일본, 러시아의 주요 학술저널에 약 100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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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내용
개전전야와 전쟁발발에서부터 정전조인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 기간 동안 김일성-모택동-스탈린 간 주고받은 ‘공개·미공개’ 암호전보와 극비서한 등 총504건을 날짜별 시간 순으로 짚는 모음집이 국내 처음으로 나왔다.

‘항미원조’로 출병을 결단, 압록강을 건너는 모택동과 김일성의 남침을 용인한 스탈린의 의중을 무엇이었을까.
한국전쟁 당시 이 세 명의 정책결정자들 간에 오고간 기밀문건들을 통해 국내에 그동안 간헐적 공개에 그쳤던 중국과 소련의 한국전쟁 관련 정책결정 과정과 내막을 사안별 집중적으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도대체 왜, 한국전쟁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걸까?
소련 기록보관소와 중국 문헌 속에서 찾아낸 문건 대상 한국전쟁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션즈화 교수의 편저, 북경대 김동길 교수와 중앙대 이강범 교수의 번역 등 수 년 간 노력의 결과물인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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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대신한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결정’
편저자 서문
역자 서문①
역자 서문②

Ch.Ⅰ 개전 전야의 3국(북-중-소)
(1949. 5. 15 ~ 1950. 6. 20)
#001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김일성의 북평회담 상황통보 (1949년 5월 15일)
#002 코발료프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모택동이 김일과의 회담상황 통보 (1949년 5월 18일)
#003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 보내는 전보:
조선평화통일계획에 관하여 (1949년 6월 5일)
#004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 보내는 전보:(극비)
남측의 북측 진격에 관한 정보 (1949년 7월 13일)
#005 비신스키가 슈티코프에 보내는 전보:
38선 형세에 관한 긴급통보 요구 (1949년 8월 3일)
#006 툰킨이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김일성, 옹진반도 탈취 준비 (1949년 9월 3일)
#007 비신스키가 툰킨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남북 쌍방의 군사력을 조속히 파악할 것 (1949년 9월 11일)
#008 툰킨이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김일성의 남조선 진격에 관한 구상 (1949년 9월 14일)
《중략》
#032 스탈린이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
남조선 공격문제는 엄격히 비밀로 (1950년 2월 2일)
#033 비신스키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보고:
주은래와의 회담 상황 (1950년 2월 3일)
#034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 3개 보병사단 신설 요청 (1950년 2월 7일)
#035 비신스키가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김일성이 제기한 각 항의 요구에 동의함 (1950년 2월 9일)
#036 비신스키가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이 소련차관을 앞당겨 사용하는데 동의함 (1950년 3월 12일)
#037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은 필요한
군수장비를 최대한 빨리 운송해주기를 희망함 (1950년 3월 16일)
#038 스탈린이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
인민군에 필요한 장비제공에 동의함 (1950년 3월 18일)
#039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 스탈린과 회담을 희망함 (1950년 3월 21일)
#040 김일성이 소련에 도움을 요청한 문제 목록
(1950년 3월 23일)
#041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의 소련방문 일정안배 (1950년 3월 24일)
#042 스탈린과 김일성,박헌영의 회담기록
(1950년 4월 10일)
#043 이그나티예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모택동이 이주연을 회견한 상황 (1950년 4월 10일)
#044 주은래가 불가닌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에 주문한 군사용품 발송 재촉 (1950년 4월 13일)
#045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공군장비 및 자재구매에 관하여 (1950년 4월 13일)
#046 중앙에서 이부춘 등에게 보내는 전보:
군수품 주문 등 문제에 관하여 (1950년 4월 14일)
#047 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의 소련방문 고지 (1950년 5월 3일)
#048 주은래가 왕가상에게 보내는 전보:
군수품 주문과 공군고문 초빙 (1950년 5월 6일)
#049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 중국방문 계획을 말함 (1950년 5월 12일)
#050 주은래가 불가닌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 측에 주문한 군수품 발송 재촉 (1950년 5월 13일)
《중략》

Ch.Ⅱ 남침과 미군 참전, 그리고 중국 지원군 파병
(1950. 6. 26 ~ 1950. 12. 31)
#060 슈티코프가 그로미코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외무성에 전달한 통보 (1950년 6월 26일)
#061 트리그브 리가 소련 외교부에 보내는 전보:
안보리결의 통보 (1950년 6월 26일)
#062 슈티코프가 자하로프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인민군의 순조로운 진격 (1950년 6월 26일)
#063 모택동, 중앙인민정부 제8차 회의에서 연설:
전쟁준비 (1950년 6월 28일)
#064 스탈린이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은 반드시 단호하게 계속 공격해야 (1950년 7월 1일)
#065 슈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미국 간섭 후 조선의 정치정서 (1950년 7월 1일)
#066 소련군 총참모 작전관리총국의 보고:
조선인민군 손실상황 (1950년 7월 3일)
#067 스탈린이 로신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은 중국군대에 공중엄호를 제공할 예정 (1950년 7월 5일)
#068 스탈린이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에 무기제공 등 문제에 관하여 (1950년 7월 6일)
#069 슈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지도자와 군대상황 (1950년 7월 7일)
#070 슈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 전선에 소련고문 파견요청 (1950년 7월 8일)
《중략》
#203 주은래가 모택동에게 보내는 서한:
서울 진격 연기를 건의함 (1950년 12월 9일)
#204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내는 전보:
지원군은 반드시 38선을 넘어 싸워야 함 (1950년 12월 13일)
#205 주은래가 오수권 등에게 보내는 전보:
정전담판에 대한 중국의 태도 (1950년 12월 13일)
#206 라주바예프가 바실레프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은 중국에 불만임 (1950년 12월 13일)
#207 소련공산당중앙정치국 결의:(극비)
정전문제에 관한 지시 (1950년 12월 14일)
#208 주은래가 오수권 등에게 보내는 전보:
유엔에서 정전문제의 원칙 (1950년 12월 16일)
#209 팽덕회가 중앙군사위원회에 보내는 전보:
조선전쟁은 여전히 상당히 장기적임 (1950년 12월 19일)
#210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전쟁은 반드시 장기계획을 세워야 (1950년 12월 21일)
#211 유엔총회의 정전문제 결의99) 통과에 관한
중국성명에 대한 모택동의 수정 (1950년 12월 22일)
#212 모택동이 팽덕회 등에게 보내는 전보: 제3차 전역 후
전군 후방철수 및 휴식과 정비 (1950년 12월 26일
#213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내는 전보:
전군휴식과 정비 후 춘계공세 준비 (1950년 12월 29일)
#214 라주바예프가 모스크바에 보내는 전보:
조선은 중국의 작전계획에 불만 (1950년 12월 30일)
#215 라주바예프가 바실레프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 38선 넘는 공격을 말함 (1950년 12월 31일)

Ch.Ⅲ 한·미군 북진, 전투 속 정전회담
(1951. 1. 2 ~ 1951. 12. 28)
#216 주은래가 모택동과 강청에게 보내는 편지:
모안영의 희생보고 (1951년 1월 2일)
#217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제3차 전역의 진전 상황 (1951년 1월 4일)
#218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서울 점령 후의 작전계획 (1951년 1월 7일)
#219 중국정부가 소련정부에게 보내는 비망록:
정전협상에 관한 문제 (1951년 1월 11일)
#220 스탈린이 주은래에게 보내는 전보:
정전에 관한 중국정부 제안에 동의 (1951년 1월 13일)
#221 유엔 사무총장 트리그브 리(Trygve Lie)가 주은래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정전에 관한 유엔 방안 (1951년 1월 13일)
《중략》
#319 그로미코가 라주바예프에게 보내는 전보(초안):
조선의 정전호소에 관한 문제 (1951년 11월 20일)
#320 모택동이 이극농에게 보내는 전보: 우리가 적들보다
더 급하다는 내색을 하지 말 것 (1951년 11월 20일)
#321 모택동의 친필 소견:
성탄절 이전에 정전가능성이 극히 높다 (1951년 11월 20일)
#322 그로미코가 라주바예프에게 보내는 전보:
미군에게 38선 철수요구 문제 (1951년 11월 21일)
#323 모택동이 이극농 등에게 보내는 전보:
정전협상 7개항 원칙의 수정 (1951년 12월 13일)
#324 모택동이 이극농 등에게 보내는 전보:
포로송환에 관한 협상대책 (1951년 12월 23일)
#325 그로미코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보고서:
정전협상 성명발표에 관하여 (1951년 12월 25일)
#326 모택동이 이극농 등에게 보내는 전보:
다시 비교적 긴 시간 지연에 준비할 필요 (1951년 12월 28일)

Ch.Ⅳ 공방 속 정전회담 ‘교착’과 세균전 폭로?
(1952. 1. 2 ~ 1952. 12. 30)
《중략》
#335 섭영진 보고에 대한 모택동의 친필 소견:
적군의 세균곤충 투하에 주의 (1952년 2월 19일)
#336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전장에서 미국이 세균무기 사용 (1952년2월 21일)
#337 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내는 전보:
미국세균전에 대해 반드시 대응해야 한다 (1952년 2월 23일)
#338 주은래가 모택동에게 보내는 서신:
세균전 방어개요에 관한 의견 (1952년 2월 23일)
#339 모택동이 이극농등에게 보내는 전보:
자원송환 문제를 우선 해결할 것 (1952년 3월 1일)
#340 그로미코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보고:
김일성의 타스통신사 기자회견 공표 (1952년 3월 5일)
#341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의:
김일성의 기자문답 발표에 관하여 (1952년 3월 7일)
#342 주은래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에 세균전문가 파견요청 (1952년 3월 7일)
#343 그로미코가 로신에게 보내는 전보: 미군에게
군사행동을 취하는 문제에 관하여 (1952년 3월 8일)
#344 주은래가 이극농에게 보내는 전보:
적의 세균전 진행을 폭로할 것 (1952년 3월 9일)
#345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국부적 전투진행 문제에 관한 해석 (1952년 3월 10일)
#346 주은래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에 유행병 예방약품 제공을 요청함 (1952년 3월 10일)
#347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에 공군 1개 사단 증파를 요청 (1952년 3월 11일)
#348 스탈린이 주은래에게 보내는 전보:
중국에 소련전문가와 백신 제공 (1952년 3월 14일)
《중략》

Ch.Ⅴ ‘포로’쟁점 일단락, 마침내 ‘정전’조인
(1953. 1. 17 ~ 1970. 10. 10)
#385 바실레프스키 등이 스탈린에게 제출한 보고:
지원군으로부터 군사고문 소환문제 (1953년 1월 17일)
#386 중국평화보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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