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내용 |
진보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다!
1946년 창간된 이래 현재도 출간되고 있는 월간지 〈세카이〉는 일본 최고의 정론지이자 진보적 지식인들의 공론장이다. 전전戰前 일본의 군국주의적 가치를 철저히 부인하고 자유, 민주, 양심, 인권을 중심 가치로 내세운 〈세카이〉는 전후戰後 일본의 정신사를 주도한 화려한 필진, 여론을 선도한 영향력, 그리고 이와나미 출판사라는 상징자본이 결합되어 한 시대의 지적(知的) 나침반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세카이〉가 한국 독자의 이목을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반도 문제에 대해 늘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점이다. 특히, 냉전 분위기가 지속되던 1970~1980년대에는 지속적으로 북한 김일성을 인터뷰하고 기획기사를 게재하는가 하면, 정기적으로 북한방문기를 싣는 등 다른 매체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과감한 시도를 계속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도 집요하리만치 예민한 관심을 표명해 왔다. 이러한 〈세카이〉의 좌경 성향과 반한·친북 정서는 독특한 이념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수많은 인적·물적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1차 대전 전승국으로서의 자존심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따라서 전후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전쟁의 원인과 폐해의 책임을 국가주의, 식민주의에 돌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고, 군부를 핵으로 한 우익세력에 비판의 화살을 돌린 것 역시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사실, 한국에 대한 일본지식인들의 은밀한 혐오감, 특히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전승국의 지위를 주장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반감 등은 반한친북의 선험적 인식론이 형성되는 기초가 되기에 충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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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증보판을 내면서
책을 내면서 프롤로그 1장 오만과 편견:〈세카이〉의 남·북한관, 1946~1989 1. 〈세카이〉와 남·북한 기사 2. 1940년대-긍정적 식민통치관 3. 1950년대-‘어두운 한국’ 4. 1960년대-반한친북反韓親北 5. 1970년대 -‘한국 타도’ 6. 1980년대-한국의 반체제 세력과 연대 7. 오만과 편견의 회로 2장 북한 방문기 1. 방문기의 의도 2. 「조선 평화의 여행」 3. ‘극락정토極樂淨土’ 4. ‘위대한 수령’ 김일성 5. 풍요와 자유 6. 허상의 지상낙원 3장 김일성 회견기 1. 김일성과 〈세카이〉 2. 미노베 료키치 회견기 3. 미도리카와 도루, 니시카와 쥰 회견기 4. 기도 마타이치, 우쓰노미야 도쿠마 회견기 5. 야스에 료스케 회견기 6. 〈세카이〉 : 북한의 대변지 4장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과 TK생 1. 〈세카이〉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2. ‘광인’과 ‘광인 국가’ 3. ‘부패 집단’과 ‘겨울공화국’ 4. 반공反共과 반일反日 5. 데마고기Demagogy 6.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 7. 「한국으로부터의 통신」과 이와나미신서岩波新書 5장 진실과 책임- 「조선 문제 보도에 관하여」 1. 사고社告 2.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태동 3. 북한의 일본인 납치 4. 〈세카이〉에 대한 비판과 입장 5.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6. ‘반한친북’ 논조 7. 〈세카이〉의 책임 6장 〈세카이〉 리뉴얼 1. 북한의 핵과 〈세카이〉 2. 파주 국제출판포럼 3. 〈세카이〉 리뉴얼 에필로그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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