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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8000만 웹진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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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통일과나눔 ‘웹진’은 ‘아카이브8000만’에서 제공하는 북한·통일 관련 정보와 탈북민의 한국 생활기 등 손에 잡히는 정보를 독자의 핸드폰까지 배달하는 ‘택배형 매거진’입니다.

[커버스토리]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인터뷰

“북러 동맹조약은 서로가 급해서 한 정략결혼,

동북아 정세 영향 크지 않아

“트럼프 2기 출범 시 주한미군 방위비, 대미 무역흑자 조정 요구에 대비해야”

김정은 북한 총비서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 양국 간 군사동맹조약을 28년 만에 부활시켰다. 이 조약에는 북한이 타국의 침략을 받는 경우 러시아가 자동으로 개입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었다. 한편으로 리일규 駐쿠바 북한대사관 참사 일가족이 지난해 말 탈출하여 한국으로 귀순하는 등 북한 엘리트의 동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급변하는 2024년 국제정세와 북한 동향을 진단하기 위해 (재)통일과나눔 아카이브팀이 지난 7월 22일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을 만났다. 윤 이사장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마친 뒤 해군사관학교 교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평화의 시대로 예상되었던 탈냉전기가 다시 전쟁과 혼돈의 시대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질서가 후퇴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신냉전이란 말도 나옵니다. 2024년 현재를 어떤 시대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2024년은 국제정치사의 변곡점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라고 생각합니다. 2차대전 이후 국제정치를 주도해 온 미국의 리더십과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유지될 것인지 아닌지 향방이 결정될 역사적 분기점이 11월 5일 미국 대선이라고 봅니다. 1991~2008년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도전받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1972년 미국의 대중국 포용정책 이후 등소평의 도광양회 전략을 따르면서 미국과의 협력하에 급속 경제 성장을 달성해 왔지만,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목도한 뒤 미국에 도전하는 외교로 전환했습니다. 2013년 시진핑 주석 등장 이후 중국은 중국몽, 일대일로, 권위주의 모델을 내세우며 미국과의 경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까지는 대중 포용정책을 견지하면서 중국의 협력을 유도하려 노력했지만, 2017년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는 포용정책을 버리고 대결 및 압박 정책으로 대전환했습니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대중 대결 정책을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보다 체계적으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고 반중국, 반이민, 반세계화 전략으로 나서면서 고립주의 방향으로 나갔다면, 바이든 정부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 강화하겠다는 전략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전면적으로 도전한 사례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동맹 등 수십 개 민주주의 국가들을 단합시키는 지도력을 보이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시행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이란,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결 구도가 등장한 것입니다.”

 

미중 대결 구도에서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 안 통해

 

▶동아시아에서는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하면서 한미일 3국과 북중러 3국의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는 양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는 개선했지만, 중국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우리 외교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미중이 협력 아닌 대결 구도로 진입하면서 안보와 경제가 하나로 묶여서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서 갈수록 안보·경제 두 영역 모두에서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변화한 국제정치 구도는 기존의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의 가능성을 상당히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발전에 중요한 국제환경을 제공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대남 위협을 고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국제정세에서 한국은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1차적으로 중시할 수밖에 없고, 그 다음 중국과의 관계는 호혜, 상호존중의 원칙에 따라 순탄하게 관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북중러 3각 관계는 외양으로는 강한 연대처럼 보이나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이는 중국과 북러 간의 대외전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아직도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지도자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한국 등 미국의 동맹국들을 자국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동시에 한반도의 안정도 원합니다. 반면 북러는 국제적 규범을 대놓고 무시하고, 한반도 안정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은 북중러를 한 묶음으로 보는 것을 비판해 왔습니다. 또 중국은 북러가 너무 모험적으로 나감으로써 국제정세가 심히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스웨덴 싱크탱크 SIPRI(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는 지난 6월 북한이 핵탄두 50기, 조립 가능한 핵물질 90기 분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한 비핵화’는 완전히 물 건너간 목표일까요? 아니면 ‘핵 동결’이나 ‘핵 감축’ 같은 방식으로 협상이 재개될 수 있을까요?

“북한은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 군축 협상을 요구하고 나올 것입니다. 트럼프 2기가 출범하는 경우 미북 협상 재개 가능성이 상당히 있습니다.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 동결, 감축 등의 대가로 대북 경제제재 해제뿐 아니라 (하노이 협상 당시 부분 비핵화에 실질적인 전면 제재 해제를 요구해서 실패), 한미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이 상당히 있습니다. 그런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얼마나 한국의 안보 보장 필요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반영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끝나면,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의 가치는 하락할 것


▶북한과 러시아가 지난 6월 사실상의 군사동맹 조약인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은 한반도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또 이 조약의 성격과 관련하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부족한 무기와 탄약을 보충하기 위해 북한과 다급하게 치른 ‘일시적 정략결혼’이란 시각이 있는가 하면, 중국-북한 등과 독자적 국제질서를 구축하려는 장기적 포석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만일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 예를 들어 핵미사일, 잠수함, 위성 기술 등을 제공하여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면, 한국 안보를 크게 위협하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핵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이나 다탄두 발사 기술, 잠수함 기술 등을 제공한다면, 이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에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러시아가 그러한 기술을 북에 넘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러시아는 잠수함 관련 기술을 중국에도 이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조약은 양국이 기본적으로 편의상, 서로 급해서 협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급한 상황이 해소되면,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의 가치나 협력 필요성은 하락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러시아의 경제적 어려움 등을 고려할 때 적극적인 북러 전략적 협력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북러조약 부활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안보 차원에서 중-러-북-이란 사이의 수평적인 협력은 가능하겠지만, 경제 차원에서는 중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에 다른 3국이 의존하는 수직적 관계가 지속될 것입니다.”


▶북러조약은 1961년 체결되었다가 1996년 폐기된 조소(朝蘇)우호협력조약의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을 부활시켰습니다. 이로써 러시아가 한반도 분쟁에 직접 개입할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있는 한편, ‘한국이 북한을 침략하지 않는 한 러시아의 개입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자동개입’ 조항은 언제 작동하게 될까요?

“조약 4조는 ‘외국의 무력 침공뿐만 아니라 유엔헌장, 양국 법에 준하여’라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이는 러시아 입장에서 원치 않은 북한발 전쟁에 연루되는 것을 피해 갈 단서 조항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기계적인 자동 개입 조항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분쟁이 일어났을 당시의 국제정치 상황이 어떠한지가 가장 큰 변수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즉 미러, 중러, 한러관계가 당시에 어떤 상태에 있느냐가 개입 여부를 결정할 중요 변수로 작동할 것입니다.”

▶한국의 대러시아 외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러시아는 북러정상회담을 전후하여 꾸준히 한국 정부를 향해 양국관계를 중시한다는 시그널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북러조약을 별것 아닌 것으로 보는 것도 위험하지만, 과잉 반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무기지원 같은 대러 강경조치는 러시아의 대북 군사기술 제공의 확정적 증거가 나타난 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쟁 이후 한러관계의 개선과 협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국 관계를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북러조약으로 北中관계 미묘해졌지만, 중국의 경제 영향력 못 벗어나

 

▶북러 동맹조약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김정은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북중관계에 균열이 생긴 걸까요?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미묘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은 최근 중국대사관에서 열린 중조친선우호조약 63주년 기념식에 대표로 김일성대 총장을 보냈는데 이는 작년보다 훨씬 낮은 직급의 대표를 파견한 것입니다. 중국에 일종의 메시지를 보내려 한 셈입니다. 단기적으로 러시아가 북한에 상당한 현금과 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중국이 북한에 제공하는 경제지원을 북한은 절대로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국으로부터의 에너지 식량 지원과 무역이 없으면 북한 경제가 지탱하기 힘든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리일규 참사가 작년 말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귀순하는 등 북한 고위급 외교관들의 탈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북한 엘리트 집단의 동요가 북한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북한 엘리트 집단은 북한 사회 및 체제의 안정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최고 권력자와 함께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과도 합치하기에 충성을 다합니다. 그런데 최근 1년 내에 6~7건의 고위 엘리트의 탈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엘리트 계층 대다수의 이반이나 이탈 징후인지는 의문입니다. 만일 엘리트 계층에서 실제로 다수가 이탈하고 흔들린다면 체제 안정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보아야겠지요.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이 체제 불안정성을 증가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주민들의 불만 고조와 체제 불안정 문제를 북한 당국이 외부에 대한 도발로 해소하려 할 경우입니다. 그 때문에 최근 전단 살포 → 대남 오물 풍선 →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이어지는 남북간 긴장 고조의 사이클이 통제 불능 상태로 나가지 않도록 우리 정부의 신중하고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지지여론이 높아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 11일 바이든 대통령과 “미 핵자산의 한반도 상시배치”에 합의하였지요.

“한국이 핵 개발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이 심각하게 약화하는 상황, 예를 들어 트럼프 2기가 등장해서 일방적으로 주한미군 감축, 철수, 방어공약 약화 발언 등의 상황이 온다면 핵개발 옵션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지금의 확장억제 강화에 주력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일본처럼 플루토늄 재처리, 우라늄 농축 권한을 받아 내는 등 핵개발 잠재능력 강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시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핵 개발을 한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한미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제사회의 대 한국 경제제재로부터 벗어나고, 중국 및 북한 대응에서도 미국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은 한국의 핵개발이 아시아 주변국들이 연쇄적으로 핵무장을 하는 것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우리의 핵무장 시도를 막으려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트럼프 2기에 대비, 공화당 캠프 인사들과 인적 네트워크 강화해야

 

▶만약 올 연말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국제정세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한국은 트럼프 2기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만일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고립주의 외교노선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미국과 민주주의 동맹국 간의 유대 약화, 권위주의 진영의 세력 강화, 미국의 리더십과 자유주의 국제질서(영토주권, 다자주의, 인권, 자유무역 및 국제규범 존중)의 약화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지면, 즉 강대국이 무력으로 타국의 영토를 침공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이 2차대전 후 독립한 약소국들일 것입니다. 한국도 군사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는 분단국가로서 큰 어려움이 우려됩니다.

한미관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트럼프 2기는 이념이나 가치가 아닌 미국의 경제적 이익이라는데 주안을 두면서 대단히 거래적(transactional)인 관계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과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축소를 압박하고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 기능을 조정하려 할 가능성이 높고, 주한미군을 대북한 용도를 넘어서서 중국과의 대결 전략의 큰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입니다. 또 트럼프는 김정은에 아직도 호감을 갖고 있어 북미협상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우리의 입장을 어느 정도 감안하여 반영하려 할지가 대단히 중요해질 것입니다. 트럼프는 개인적 관계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뉴욕에 찾아갔었지요. 우리도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트럼프 및 캠프 주요 인사들에 대한 네트워크 형성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지해범 자료연구실장, 권세빈·변호연·이시준 인턴기자

[🔍평양 돋보기]

경제 정책 대전환과 단한령(斷韓令)

4대 세습 준비 위한 것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 아시아프레스 오사카사무소 대표

통일과나눔 재단은 지난 7월1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김정은 정권의 통치와 경제실태, 그리고 민중의 생활과 인권·인도 상황에 대한 북한 내부조사 및 취재를 바탕으로 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는 북한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치적으로는 반(反)민족·반통일과 ‘단한(斷韓)정책’을 실시하고, 경제적으로는 반시장, 국가통제 경제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상황에서 그 목적과 방향을 진단하기 위한 것이다. 다음은 일본의 북한 정보 전문매체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 오사카사무소 대표의 발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사무소 대표/출처=통일과미래>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북한과 중국 간 무역이 격감했다. 의약품 수입 차단으로 결핵약, 마취제, 항생제 등이 부족해지며 가벼운 병에도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2021년 후반부터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사람과 물건의 이동이 더 강하게 통제됐다. 식량 수입이 차단되고 북한 내 중국 제품이 고갈됐다. 이에 물품 가격이 폭등하고 장사가 부진하게 되어 도시에 사는 주민들의 현금 수입이 급감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 양강도에 사는 아시아프레스의 취재 협력자는 “북한에는 PCR 검사도, 해열제 같은 의약품도 없다. 아파트에 화장을 기다리는 시신 행렬이 이어졌으며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함경북도에서는 최빈층인 ‘절량세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옥수수를 지급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또 농촌에서는 가을 수확 후 이자(6개월에 30%)를 붙여 절량세대에 비상식량을 빌려주기도 했다. 이후 감자, 보리 등의 작물 수확이 순조롭게 되며 상황이 개선됐지만, 팬데믹의 여파로 인해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과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금년 4월 우리 아시아프레스가 북한 내부 취재 협력자와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보다 굶어 죽은 사람이 더 많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굶어 죽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코로나에 걸려서 죽은 사람보다 봉쇄하면서 많이 죽었어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 돈도 다 떨어지고, 개인 돈벌이가 안 되니까 작년 보릿고개 때 많이 죽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 다 어렵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난의 행군 때는 생활력 없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잖아요. 근데 지금은 간부들이나 살지, 다른 사람들은 다 같은 처지입니다. 일할 사람이 없는 집이라든가 혼자 사는 집, 그리고 환자 있는 집은 다 꽃제비 수준입니다. 집 안에 쟁기 다 팔아먹고. 그런 집들이 진짜 많습니다. 어제도 우리 동네에서 늙은이 하나 죽었단 말입니다. 죽은 다음에 집에 가서 봤는데 소금 한 숟가락도 없었답니다. 당에서도 대책을 세우라고는 하는데. 식량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며칠 전에 살기 어려운 집에 깡내(옥수수)국수 1kg을 공급했다는데, 그거 가지고 몇일이나 살겠습니까?”

 

-작년에 죽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는 증거가 있나요?

“작년에는 량곡판매소도 제대로 안 되고 유통도 차단하고 하니까, 있는 거 다 때려먹은 후에 밑천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먹을 게 없어지니까, 영양이 약해지고 설사나 감기 같은 별거 아닌 병에도 막 죽었습니다. 늙은이들은 거의 다 죽은 것 같습니다. 조금 아픈 사람도 약을 못 쓰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하니까. 길주나 김책, 함흥 같은 곳에서는 아파트에서 하루에 두세 명씩 죽어 나갔답니다. 위에서도 급하니까 군량미나 전쟁 물자 풀어서 일주일 정도 식량 배급해 주고 그랬습니다.”


2020년부터 북한 내부서 공산주의로 가자는 구호 나오기 시작

 

2021년부터 북한에서 ‘공산주의로 가자’라는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국의 ‘반(反)시장’ 기조와 경제 통제 경향이 강해지며 식량 전매제와 배급제가 부활했다. 2019년 쌀과 옥수수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국영 식량 판매점 ‘량곡판매소’ 운영을 재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량곡판매소 도입은 김정일이 2000년대 초반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정책이었다. 국가가 식량 판매를 독점하려면 시장과 경쟁해야 하는데, 농촌에 있는 식량들이 계속해서 시장에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량곡판매소가 부활하면서부터는 개인의 시장 판매가 강하게 제한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의 식량 전매제 도입은 ‘칼로리 통치’ 시도로 볼 수 있다. 생활의 기본적 요소인 식량 유통의 주도권을 국가가 장악해 주민들을 통제하려 하는 것이다.

<북한 양곡판매소/출처=아시아프레스>


2020년 하반기부터 여러 공장과 기업소에서 식량 배급제가 부분적으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기업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노동자 본인에게 한 해 월 3~7kg 정도의 식량이 지급된다. 당국은 배급제 운영을 위한 재원을 각 기업소의 ‘자율 경영’으로 충당하도록 하고 있다. 지방 정부에 재량권을 주고 수익을 창출하는 만큼 배급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군량미나 전시물자 등을 활용해 구제 성격의 식량만 지급한다. 2023년부터는 많은 직장에서 경영 간부 선거를 실시했다. 선출된 경영 간부의 능력에 따라 각 기업소 간 배급 격차가 커졌고, 배급이 적은 곳의 간부는 회의 때마다 노동자들의 비판을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 배급이 많은 기업으로의 전직 신청도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이는 식량 배급 부족의 원인을 국가가 아닌 간부 개인에게 돌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무직자 무단결근 강력단속, 개인 수입 줄고 직장 다녀야 식량확보 가능

북한 경제정책 전환 중 큰 특징은 카드로 노임 지불하는 것

 

2022년 하반기부터는 무직자와 무단결근자를 강하게 단속하여 노동단련대나 교화소에 보내기도 한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현금 수입이 많이 줄어 직장에 다녀야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한다. 지난해 말 당국은 각 직장과 조직에 노임을 연초에 비해 일제히 10배 이상 인상하라고 지시했다. 인상한 노임은 직장에서 받는 배급 이외의 생활비로 사용하도록 했는데, 그 금액이 량곡판매소에서 세대마다 구매할 수 있는 식량의 가격과 거의 같다고 한다. 국가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고, 그 노임으로 다시 국가에 식량을 구입하게 하는 ‘칼로리 통치’의 강화인 것이다.

 

이번 경제 정책 전환의 특징 중 하나는 노임을 카드로 지불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이 정책을 도입한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은행통장을 만들어 시장이나 국영상점에서 카드 결제를 하고 있다. 금방 낡아버리는 지폐 대신 카드가 더 편리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부유층들은 가능한 카드를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 은행에 돈을 넣으면 당국이 개인 소득을 파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유통 시장 활동에 대한 제한도 강화됐다. 당국은 2021년 4월경부터 국영상점 이외의 개인 장사를 근절했다. 지난해 8월에는 ‘국가의 통제권 밖에서 물자를 거래하거나 외화를 유통하는 행위를 철저히 금지한다’는 내용을 포고했다. 이를 통해 외화 사용을 일제히 금지하고, 국가의 식량 또는 무역회사가 취급하는 물자를 판매하는 경우 반드시 ‘상업관리소’에 등록하게 하는 등 개인이 물자와 식량을 마음대로 운반, 보관, 가격 책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어길시 최고 사형까지도 처할 수 있다.

 

김정은, 대중 경제의존도 줄이려는 시도 지속

국영상점서 중국 상품 사라지고 북한산 제품이 대체

 

김정은 정권은 경제 부문에서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팬데믹 기간 대중 무역 급감의 영향으로 북한의 시장이나 국영상점에서는 중국 상품이 거의 사라졌다. 그 자리를 국내산 제품들이 대체하기 시작했고 제품의 질도 점점 좋아졌다고 한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위기감을 느낀 김정은은 중국제 차단과 국내산 활용을 통해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수익 창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에서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경부터 무역회사의 재량권이 축소되고 ‘국가무역’이 본격화됐다. 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무역회사가 ‘돈주’와 결탁해 국가 통제 밖에서 시장에 물자를 유통해 왔다며, ‘반사회주의적 행위’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덕훈 내각은 2022년 2월 8일 최고인민회의 각료회의 사업보고에서 ‘대외 경제 부문에서 국가의 유일한 무역제도를 환원 복구하기 위한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무역회사와 산하 조직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감행되고 모든 물품에 대한 수출, 수입 재량권이 국가로 귀속됐다. 특정 기관의 특권과 예외를 근절하고, 부유층이 돈주와 결탁해 개인적 이익을 얻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 정책의 목적이다.

<작년 9월 삭주군 10호 초소에서 주민을 검사하는 보위국 요원/아시아프레스>


김정은 정권은 최근 선대의 통일 정책 기조에 선을 긋고 반한(反韓) 노선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남북 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기도 했다. 김정은 정권의 단한(斷韓) 반통일 정책은 2019년부터 전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후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공격했다. 2020년에는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평양문화어보호법>등 ‘반한류법’을 잇따라 제정했다.

 

‘단한’(斷韓)정책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난 2월 말 재일조선총련(조총련)에 단한령이 내려졌다. 이 지령은 대한민국의 민주적인 인사, 단체와의 관계를 차단하고 민족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앞으로 일체의 통일 교육도 진행하지 못하게 했다. 김정은 정권의 강한 단한(斷韓) 기조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 같은 변화에 평화 통일을 민족 교육의 핵심 기둥으로 삼아왔던 조총련 내에서는 많은 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재일 조선인 사이에서 조총련 이탈 움직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다음에는 지난 4월 아시아프레스가 북한 내부 취재 협력자와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조선은 하나노선의 종언, 반한(反韓) 공포 정치 확대

경제 정책 대전환과 단한령은 4대 세습 준비 위한 것

 

-이번에 (김정은이) 한국은 같은 민족이 아니고 통일 상대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거 관련해서 주민들 반응이 어떤지?

“요즘 여기는 그것 때문에 난리도 아닙니다. 한국이라는 말도 못 꺼내게 하고, 군인들이 뺑끼(페인트) 구하러 옵니다. ‘통일’이란 단어 들어간 구호랑 교시 지우려고. 이전에는 그쪽(남한)에서 쌀도 받고, 판문점 회담도 하고, 한동안 잘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니까. 한국이 우리를 흡수하려고 그러는 건지 사람들이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최근에 주민 통제가 심해졌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한 주민 반응은 어떤가요?

“작년부터 총살이 세 번 있었는데.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주변 사람이랑 친척까지도 멀리해야 하는 세상이 됐어요. 웬만한 일도 터지면 교화 2년씩 보내고, 최근에는 긴급체포라는 것도 생겨서 사건에 관련된 사람을 보면 장소에 상관없이 막 잡아갑니다. 그러니까 오금이 시려서 다니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위에서 하라는 것만 하고, 보라는 것만 보고.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말 좀 잘못하면 감시에 걸리고,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법을 안 지킬 거면 죽으라고, 죄도 짓기 전에 자수하라 신고하라고 그러고. 그런 체계를 딱 만들어 놨단 말입니다. 그냥 걸리면 죽습니다.”

 

‘백두혈통’은 김일성에서 시작해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 씨 일가를 말한다. 오직 백두혈통만이 정권을 계승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현재 김정은의 뒤를 이을 4대 백두혈통 후보로는 김여정, 김주애, 공개되지 않은 어린 아들 등이 거론된다. 2013년 6월 개정된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에는 ‘우리 당과 혁명의 명맥을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 주체의 혁명전통을 끊임없이 계승, 발전시키고 그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해야 한다.’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백두혈통 안에서만 권력을 계승하고, 김 일가의 통치를 영속화하겠다는 선언으로 간주된다.

 

지난해 2월에는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백두의 혈통 결사보위’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김 일가를 보위하는 일이 조선인민군의 임무에 포함된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와 같은 조치들은 4대 세습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노동신문 사설과 조선중앙통신에 백두혈통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4대 세습을 가시화하려는 맥락이 있다. 결국 4대 세습을 위해 경제 정책 대전환, 단한령 등이 필요했고, 이러한 정책들의 부작용으로 인해 북한 내의 인도주의 위기가 생긴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작성·편집=김은송 인턴기자, 김태래 사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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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평안북도 신의주 지역이 또 장맛비로 인한 대홍수가 발생하면서 수해에 고통받고 있다.

북·러 간 밀착 행보에 중국이 거리를 두며 북·중 관계에 이상 기류가 포착되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에서 근무 중인 북한 외교관들에게 “중국 눈치를 보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 '전승절'로 칭하는 정전협정 체결 71주년(7월 27일)을 맞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25전쟁 전사자 묘지를 참전 군인들과 함께 찾았다.

최근 북한 고위급 관리들의 탈북 행렬이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프랑스에 있던 북한 외교관 가족과 비슷한 시기에 북한 쿠바 주재 북한 외교관이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코리아 판도라]

탈북자 혐오와 탈남(脫南) 현상 연구

김용민 건국대학교 교수

이 글은 건국대학교 김용민 교수팀이 통일과나눔 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탈북자 혐오 상태연구(탈남자 문제를 중심으로)’ 최종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주]

한국 사회의 탈북자 혐오에 대한 반작용으로 탈남 현상 발생

 

현재 한국 사회는 혐오와 갈등의 시대에 있다. 이는 단지 한국 사회만의 현상은 아니며 전 세계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와 국제협력의 위기론이 확대되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놓여있다. COVID-19로 인한 감염병까지 전 세계적인 규모로 발생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기존의 혐오와 갈등의 정서가 좌시하지 못할 정도로 확대되는 중이다. 혐오로 인한 위협도 이전까지의 막연한 위기감에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 생활세계의 인간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탈북자에 대한 혐오는 다방면에 걸쳐 있고 한국 사회, 경제, 문화, 외교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반드시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는 탈북자에 대한 혐오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갈등의 시대 극복을 위한 생활 차원의 연구를 모색하고자 한다. 탈북자 동포에 대한 한국 사회의 혐오, 그리고 이에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탈북자들의 한국 혐오, 이로 인해 발생되는 탈북자의 재이민, 이른바 탈남(脫南·남한을 떠남)의 문제는 이미 이 문제가 개개인 차원에서의 대응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한국 사회에 이미 만연하고 있는 탈북자에 대한 갈등과 혐오에 대한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 분류, 분석하고 이를 가시화하여 제시하고 탈남자 문제의 원인, 경향 대책을 연구한다. 연구의 범위는 한국의 탈북자 집단에 대해서 일어나는 갈등과 혐오로 인한 탈남 현상에 대한 연구로 한정하며 특히 탈남자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 연구를 중심으로 한다.


미국 거주 탈북민들, “사용 언어, 상식, 억양의 차이로 차별받았다


미국에 거주 중인 탈북민 10명의 인터뷰를 완료하였다(신분은 밝힐 수 없음). 한국에 정착하려 했던 기간 동안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 세 가지를 묻는 설문에서는 사용하는 언어 및 상식의 차이, 그리고 억양 차이에서 발생하는 차별적인 사회적 인식이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다. 이는 탈북민을 구분하기 위해 언어적인 요소들이 이용됨을 알 수 있으며, 북한에서 통용되지 않는 한국적인 상식과 문화적 공감대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이 하나원 교육과정에 포함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입국 후 고등학교에 취학했던 응답자는 조선족으로 취급당했던 경험을, 바로 대학에 진학했던 분은 대학에서의 차별 경험을 언급하였다. 연구 결과로 유추해볼 때, 차별이 일어나는 공간은 굉장히 일상적인 공간이며, 한국 사회 내 적응이 미비한 시점에서의 기억이 상대적으로 더욱 강렬했다. 한국 사회 내 탈북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는 대체적으로 한국민과 자신의 정체성이 동일화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받았던 지원 서비스나 프로그램 중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교육비 지원이 가장 많이 제시되었다. 이는 취약계층이 사회화 및 자기계발을 통해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데 교육이 가장 근본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국 사회 및 정부가 탈북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을 묻는 질문에 대해, 우선 탈북민만을 타겟으로 정한 정책 자체가 불편으로 다가온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탈북민을 국민으로서 수용했다면, 이들을 특별히 지칭하는 표현을 넣어 정책을 입안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회적 취약계층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을 통해 이들을 지원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또한 탈북 당시 탈북민들의 일반적인 연령대가 한국 내 일반적인 구직 연령 보다 높기 때문에, 나이가 구직구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한국 내 고용문화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 및 구직 관련 정보들을 하나원 교육 과정에서 더욱 심도 있게 다뤄줄 수 있기를 바랬다. 미국으로 이주한 주민들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처음부터 난민 신청을 통하여 미국으로 이주를 지정한 경우도 있고 미국이 가진 세계 최강국의 이미지가 자신들을 안전히 보호해 줄 것이라는 의식이 강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국 거주 탈북 여성들, “영어에 대한 갈망으로 영국 선택

 

영국에서는 한국인들이 밀집해 있는 뉴몰든 지역에 탈남자 분들이 아무 문제없이 동화되어 살고 있다. 이에 10명의 탈남자 분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특이한 점은 10명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으로 이는 역시 탈북 자체가 남성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10명 모두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탈북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영국으로 이주하였으나 놀라운 점은 그 중 8명은 아직도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언젠가는 귀국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한 분은 역이민 귀국 준비중).

특이한 것은 영어에 대한 갈망으로 탈남에 있어서 영국을 선택한 분들도 존재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나선 상황에 있어서 한국어의 대부분이 외래어로 구성되어 있는 점에 충격을 받았고 한글로 써있는데도 해독이 불가능한 경우의 대부분이 영어였다는 사실에 영국이나 미국으로의 이민을 시도하였으나 미국이 어려워 2000년대까지 난민 입국이 쉬웠던 영국을 선택한 사례들이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탈북자로서 받은 차별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토로하였고 특히 한국사회에서 소위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중국출신 동포들 보다도 더 사회적 지위가 아래라는 사실에 분개하는 분위기였다. 이는 탈북자가 “같은 한국인인데 왜 우리가 중국 동포보다도 못하냐”는 정체성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상당한 경쟁의식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8명은 한국에 대해 우호적, 2명은 매우 부정적이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들 2명 가운데 한 분은 탈북자 부부로서 남편이 장애인이라 받은 이중의 혐오가 너무 강하여 다시는 한국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한 분은 한국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사기 피해를 당하여 다시는 한국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개인적인 부정적 경험이 이유로 존재하였다.

영국을 탈남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압도적으로 지인이 이미 존재한 경우나 난민을 잘 받아주는 유럽의 국경관리를 이유로 들었다. 특히 뉴몰든이 아닌 다른 지방에 난민으로 입국한 경우에도 영국 내의 한국교회 등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뉴몰든의 소식을 입수하고 영어가 익숙치 않은 가운데 한국어가 통하는 뉴몰든으로 이동한 경우가 전부 공통적인 상황이었다. 뉴몰든의 재영 한국인 사회가 탈북자 출신이라고 해도 전혀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이 선택의 주된 이유였다. 입국 시기에 따라 난민 인정을 받은 분들은 매우 쉽게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의식주가 해결된 상태에서 적응한 반면, 2명의 젊은 세대 탈남자들은 브렉시트 이후 강화된 난민 정책으로 비자가 잘 발급되지 않아 영국 정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매우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음을 토로하였다.

이를 통하여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 탈남의 이유는 역시 한국사회에서의 탈북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며 자신은 몰라도 자식세대의 미래에 불안을 느껴 탈북한 분들이 많았다. 또한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중국 동포들에 대한 경쟁심도 매우 강하게 전원에게 느껴졌으며 우리는 한민족인데 왜 중국 동포보다도 대접을 못 받는가? 라는 정서가 존재하였다.

 

탈남 이후 차별 문제는 사라지고 한인 교포사회와 원만히 융화

한국 사회의 탈북민 혐오와 차별 인정하고 해결방안 적극 모색해야

 

한국을 떠난 탈북민들은 최종 정착지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차별에 대한 문제는 탈남 이후 급격히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 중 상당 수는, 미국과 영국의 한인 교포 사회에서 한민족으로서 문화적 공감대를 영유하면서 타향살이를 하는 한인들과 전반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가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언어 및 다른 문화적 장벽이 크게 존재하여 적응과 구직에서의 문제를 겪고 있었다. 또한, 정치 및 지리적으로 북한과 멀어진 탓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 및 연락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행정적인 절차 및 체류 지위의 문제를 적잖게 호소했다.

위의 결과들은 북한 이탈주민과 한국 사회가 혐오와 차별없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해외로 다시 떠날 것 마저 고민하는 탈남 고려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마땅히 선제적으로 수정했어야 할 문제적인 요소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우선, 우리는 탈북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한국사회에 존재함을 인정하고 이를 공론화하여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러한 실재하는 차별은 북한 이탈주민의 사회 경제적인 참여를 어렵게 하고, 적응을 더디게 함과 동시에 자신과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도 우려하도록 만들었다. 사회적 인식 자체가 개선되지 않는 한, 북한 이탈주민에게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헌법적 권한을 부여하고, 경제적인 자립을 위한 교육과 자금적인 지원을 수반한다 한들, 탈북민들의 삶은 어려웠고, 같은 민족의 터전은 다른 민족들의 터전 보다 살아가기 힘들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탈남이라는 선택지에 있어서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분명히 적응의 고통이 존재하는 바이며 이를 한국에서 다시 이주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생긴다면 이중 적응의 필요성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혐오의 존재를 부각하였고 이로 인해 발생한 미국과 영국으로의 탈남 현상의 여러 가지 결과를 정리하였다. 물론 20명 밖에 안되는 소수의 사례수가 가지고 있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나 이 연구를 바탕으로 미국, 영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는 탈남자에 대한 비교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정리=강경모 매니저

삶의 닻, 가족

바쁜 나날 속에서도 북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보낸 시간이 가끔 생생하게 떠오른다. 여름날의 기억들이 특히 그렇다. 친구들과 강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해가 지면 마을 어귀에 앉아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식히던 순간들. 전기가 자주 나갔지만, 그 덕분에 가족 모두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별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냉면과 시원한 오이 냉국, 그리고 텃밭에서 갓 뽑은 싱싱한 무 한 조각은 여름날의 더위를 식혀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기억들은 내가 한국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국에서의 여름은 북한과 다르면서도 어딘가 닮아 있었다. 여전히 햇볕은 뜨겁고,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는 모습,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부모들, 바다로 달려가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동시에 친숙하게 느껴졌다. 북한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가족과 별을 보며 나누던 이야기가, 이제는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TV를 보며 수박을 나누어 먹는 시간으로 변형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 지어졌다.


그러나 여름이 되면 늘 마음 한 켠이 아려 온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 때문이다. 여름철이면 농사일로 더욱 바빠질 텐데, 잘 지내고 있을까. 폭염 속에서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장마로 마을이 잠기지는 않았을까. 함께 했던 많은 여름 밤들이 이제는 걱정과 그리움으로 남아, 허전한 마음 한 켠을 채운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은 나에게 평생 안고 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들을 두고 왔다는 죄책감과 미안함, 걱정과 그리움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남한에서 새로운 가족도 생겼다. 낯선 곳에서 일가친척 없던 어머니를 지켜주고, 나와 둘째 동생이 오기를 기다려준 아버지와 막내 동생. 그리고 혈연이나 법적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정서적 유대를 가진 이들도 있다. 탈북 후 알게 된 친구들, 학교 선생님, 교회 목사님, 대학 교수님, 그리고 멘토님들과 선배님들. 이들은 가족으로 얽혀 있지는 않지만, 외롭고 힘들 때, 도움이 필요할 때 가족이 되어주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보호자이기도 하고,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며, 함께 해주는 공동체가 되었다.

가족의 가치는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가족의 행복과 관계는 소중히 여겨진다. 두 곳의 가족들은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도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남북한 모두에서 가족은 삶의 중심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나에게는 북쪽의 가족도, 남쪽의 가족도 다 소중하다. 그러기에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더더욱 일어나서는 안된다.


가족과의 유대는 나에게 큰 힘이 된다. 그들은 나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며, 가치관을 형성하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 준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했던 슬픔과 기쁨, 기억과 추억들이 쭉 이어져 내 삶의 소중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듯이, 북한과 남한에서의 경험들이 나의 가치와 생각, 사상을 형성하며 자양분이 되어 통일의 그날을 그리게 만든다. 언젠가 다시 북한의 가족과 이웃들을 만날 날을 꿈꾸며,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오늘도 살아간다.

글=김나연 인턴기자

 동영상  [탈북민 이야기] 

자본주의도 일없습니다

"통일의 그날, 남북이 건배할 '대한주' 만들 것"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거나 잊혀 가는 한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한국에서 재현하고 싶어요. 어느 나라의 술도 모방하지 않고 오롯이 한국의 고집과 선조의 슬기가 담긴 ‘대한주’를 빚어서 언젠가 통일 건배주로 마시는 것이 제 꿈입니다.”


충청북도 음성군에 위치한 북한 전통술 제조 업체 하나도가는 이북 서민의 향토 문화가 담긴 전통술을 제조, 전파하고 있다. 김성희 하나도가 대표는 남한에서 북한의 대표적인 술로 떠올리는 ‘들쭉술’이나 ‘개성고려인삼술’은 “북한의 특정 계층에 의해 만들어진 술이지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건 아니”라며 “북한 서민들의 뿌리 속에서 전해 내려온 전통술은 북한 당국이 인정을 안 해 줬다”고 말했다.

△김성희 대표가 하나도가에서 제조한 술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시준 인턴


김 대표는 2008년 두 살배기 딸을 목말 태운 채 두만강을 넘었다. 이북에서 사고로 남편을 잃고 딸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고향을 떠났다. 그는 11월 살얼음이 낀 두만강을 건넜던 일화를 회고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2살짜리 아인데 소리라도 지르면 양쪽에서 총알이 날아올 거잖아요. 강은 깊고 살얼음은 꼈고 ‘엄마랑 같이 가야 되는데 조용히 해 줘 봐’라고 말하고 가는데 애가 소리를 안 내는 거예요. 그 강을 다 건널 때까지 조용했어요. 다 건너고 숲에 와서 애를 안았는데 막 떠는 거예요. 그때는 다시 생각하기도 싫고, 제 자식에게 가장 마음이 아팠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남한에 도착한 김 대표는 딸을 홀로 돌보며 식당 주방 보조, 침대 매트리스 회사, 자동차 부품 회사 등 다양한 직종을 전전했다. 안정된 회사 대신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창업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딸을 위한 도전’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탈북민이 남쪽에서 창업한다는 건 탈북과 맞먹는 도전”이라며 “나밖에 할 수 없는 걸 찾자고 보니까 술이었다”고 덧붙였다.

 

하나도가는 북한의 대중적인 가양주 ‘농태기’와 김 대표 집안의 내림주인 ‘태좌주 골드’, 통일을 향한 마음을 담은 ‘삼팔주’를 제조한다. 김 대표는 농태기를 소개하면서 “슬프게도 북한의 가양주나 전통주는 이름이 없다. 인정받지 못한 홍길동 같은 술이라 호적을 만들어 주고자 제일 먼저 상표를 등록했다”고 말했다. 태좌주라는 이름은 김 대표 외조부의 건배사에서 착안했다. 그의 외조부는 술을 마실 때마다 ‘남자는 술을 마실 때 크게 앉아서 느리게 천천히 멀리 내다보면서 마셔야 된다’라고 건배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술 이름 또한 ‘클 태’ 자에 ‘앉을 좌’ 자를 따서 태좌주가 되었다. 삼팔주는 올해 설을 맞아 새롭게 출시한 술로, 지난해 경색된 남북 관계를 보며 미사일 대신 성공을 쏘아 올리자는 의미를 담았다.

 

북한의 술맛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술을 빚어 회사 동료들에게 맛을 보였어요. 처음엔 너무 독하다며 마시자마자 뱉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서 북한 술의 장점은 살리고 남한 사람의 거부감은 줄이자는 식으로 술맛을 찾아 나갔습니다.”

창업 5년째를 맞아 롯데백화점, 농협 하나로마트 등에 납품하는 김 대표는 “북한의 전통문화나 음식을 살리는 것이 탈북민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글, 영상=권세빈, 이시준 인턴기자

📚 신간 도서

『어떤 불시착』 

정서윤|다른|2024.05.30.

저자는 10살에 삼촌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넜다. 가족과 4년간 중국에 숨어 살다가 몽골로 도피하고, 몽골에서 마침내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녀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들을 해나갔다. 초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도착 당시엔 한글도 몰랐지만, 학업에 열중해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이화여대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이어 북한학으로 석사 학위를 이수하고 현재는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NGO 단체 유니피벗의 대표로서 남북 청년의 교류를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어떤 불시착>은 저자의 피난길 과정부터 한국에서의 새로운 도전기가 담긴 책이다. 그녀가 직접 부딪히며 쌓아온 삶의 지혜와 경험이 녹아있다. 이와 더불어,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시선으로 탈북민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전달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국적 없는 불법체류자의 현실, 탈북민으로서 겪은 차별과 편견을 마주할 수 있다. 나아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녀는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살던 시기를 이렇게 말한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집을 구할 수도 없고, 위험은 도처에 깔려있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이웃과 친해질 수 없었고, 친구를 사귀기도 조심스러웠다. 존재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국적 없이는 교육, 일, 주거 등 그 어느 하나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또한, 이는 공동체 안에서 쉽게 융화될 수 없는 문제로 귀결한다.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국적을 얻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었던 이면이다.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 받은 탈북민에 대한 차별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한국 생활이 이제 2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내가 간첩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그 사실을 몰랐을 때와는 다른 아주 미묘한 긴장이 상대에게 생기는 것을 느낀다.” 직접적인 말과 행동뿐 아니라, 그들을 적대시하고 배척하는 태도가 탈북민에게 큰 상처로 와닿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강한 반공교육을 받아오며 탈북민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부정적 이미지가 우리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탈북민이 불쌍해서 한국 사회에 수용한다’는 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탈북민은 남북을 연결하고 앞으로 통일이 될 때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이라는 게 필자의 시각이다. 적대 국가에서 온 안보를 위협할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안보를 지켜줄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탈북민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면 그들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는 데에 공감한다. 


글=권세빈 인턴기자

『동맹의 기원 
스티븐 M. 월트|김앤김북스2024.05.04.

“국가들은 위협적인 국가와 동맹을 통해 편승하려 하기보다는 가장 위협적인 국가에 대해 균형을 이루기 위해 동맹을 추구한다”


국제적 동맹을 형성하는 힘을 이해하는 것은 외교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스티븐 월트(Stephen M. Walt)의 <동맹의 기원>은 동맹 형성의 원인을 상대적 국력 차이로 설명한 전통적인 세력균형 이론과 달리, 위협에의 대응으로 해석하는 위협균형 이론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강대국의 세력에 편승하여 안전을 보장받는 것은 강대국의 변덕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국가들은 편승보다는 위협으로부터의 균형을 택한다. 많은 국가들의 동맹 정책은 초강대국 간의 세력 균형보다는 공격 능력과 인지된 의도, 자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들로부터의 위협을 대응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되어 왔다. 이념적 연대보다는 외부적 위협에 대한 고려가 그 동기에 우선적으로 영향을 행사해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동맹의 사례와 중동 외교를 통해 냉전 시기 왜 전 세계의 중견국가들이 소련이 아닌 미국과 동맹을 맺기로 결정했는지를 설명한다. 미국과 소련 모두 강력한 군사력과 기술을 보유한 초강대국이었다. 소련은 많은 국가와 인접해있으며 비공산주의 국가를 전복 및 지배하고자 하는 이념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반면 미국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유라시아와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자유주의 이념에 기반을 둔 국가였기에, 대다수의 중견국가에게 매력적인 동맹 선택지였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이념을 초월한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이집트 간의 동맹이나, 민주정·군주제·군사독재 정권을 막론한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그 사례로 제시함으로써 필요에 따라 이념적인 문제를 기꺼이 무시하는 동맹의 현실적 측면을 조명한다.  


미국에서 1987년 출간된 이 책은 올해 5월에서야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나, 오늘날의 국제 체제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통찰력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아시아에서 잠재적 패권국으로 등장한 중국의 부상을 언급하면서 어느 때보다 한미 동맹이 가치 있다고 말한다. 중국에 편승하여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미국과 공유하는 안보위협에 집중하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중국의 부상이 한국에 상당한 부담과 위협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은 한국의 안보와 번영, 평화에 중요하다. 동시에 ‘이념’을 정치적 수사로서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위협이라는 동맹 형성의 핵심 요소를 간과하게 만들기에 주의해야 하며, 이 지점에서 저자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리라 생각된다.

글=변호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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