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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8000만 웹진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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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통일과나눔 ‘웹진’은 ‘아카이브8000만’에서 제공하는 북한·통일 관련 정보와 탈북민의 한국 생활기 등 손에 잡히는 정보를 독자의 핸드폰까지 배달하는 ‘택배형 매거진’입니다.

[커버스토리]

강택구 한국환경연구원 북한환경정보센터장

북한의 반복되는 자연재해는 땜질식 처방과

자원 배분의 불균형 탓이다


7월 말 평안북도와 자강도 일대 폭우로 인적 물적 피해 심각


지난 7월 말 북한의 평안북도와 자강도 일대에 쏟아진 폭우로 강이 범람하면서 일대가 침수되었다. 우리 기상청에 따르면, 평안북도 수풍에 7월 27일과 28일 양일 내린 강우량은 356mm에 달했다. 지난 30년간 수풍의 평균 강수량(980.4mm)의 1/3에 맞먹는 비가 이틀 만에 내린 것이다. 북한 매체는 압록강 하류에 있는 평안북도 신의주와 의주의 경우 4천1백여 세대의 살림집과 3천여 정보의 농경지, 공공건물, 도로, 철로가 침수되었다고 보도하였다. 북한은 이들 지역을 특급재해비상지역으로 선포하였다. 북한에서 공개한 영상과 해외의 인공위성 사진 등으로 판단해 볼 때, 이번 홍수로 입은 피해는 2010년 8월 20일과 21일 이틀 사이 북한 수풍 일대에 내린 400mm의 폭우로 발생한 홍수 때만큼이나 인적 물적 피해가 심각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수에 더해 8월부터 30도 넘는 더위가 덮치면서 전염병과 병충해 등에 따른 보건위생과 농작물 수확 감소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김정은까지 홍수 현장에 나타나 현지 지도를 연출하면서 ‘재난 리더십’과 “애민 지도자”를 강조하고 있지만, 복구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7월 말 홍수로 인한 북한 신의주 피해 현황/출처=뉴스1>

 

압록강을 사이에 둔 중국 단둥의 다른 홍수 대응

 

한편, 신의주의 압록강 건너 중국 랴오닝성 단둥 일대에도 이 시기 폭우가 내렸다. 일부 지역의 경우 1951년 관측 이래로 역대 최고 강우량을 기록하였다. 중국 측 압록강 상류 일부 지역에 7월 말 내린 비의 양이 거의 600mm에 육박하였다. 중국 단둥에 압록강과 인접한 연안 일부 지역은 범람하여 논밭과 도로 등이 사람 높이까지 침수되었다. 중국 단둥시는 ‘도시홍수 통제 2급 비상 대응’을 발동하였다. 중국은 도심지역으로의 추가적인 침수를 막기 위해 철제빔과 목재, 자갈 등으로 높이 2.5m의 수방벽 40여 개를 구축하였다. 7월 30일 중국 관영 CCTV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단둥 지역만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8월 초에 들어 침수된 지역을 빠르게 복구하여 일상으로 회복하였다고 중국 매체들이 전하고 있다.

<2024년 7월 말과 8월 초 중국 단동 압록강변 침수 전후 상황/출처=신화사(新華社)>

중국 정부 매체의 보도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홍수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북한과 매우 다르다. 중국은 1995년 8월 압록강 대범람 이후 홍수 대비를 위한 수방벽과 같은 인프라 구축을 포함한 비상대응훈련과 체계를 갖추어 왔다고 한다. 반면 북한은 거의 매년 크고 작은 홍수가 발생하고 있지만, 군중 동원을 통한 복구 등 일회성의 대응에만 그치다 보니 매년 피해도 크고 복구도 더디다.  

<2024년 7월 28일 중국 단동 압록강변 수방벽 설치 현장/출처=중국중앙방송국(cctv)>  

이번 북한 수해 원인과 관련하여 신의주가 중국 단둥보다 지대가 2~3m 정도 낮다거나, 폭우로 압록강 댐 방류가 늘어나면서 하류 지역에 있는 신의주가 지리적으로 취약하다거나, 중국의 홍수 방지를 위한 수방벽 설치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부분적으로 맞는 지적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 주민의 안위를 위해 재해에 대응하는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지 않고 체제 유지에만 주력한 김정은 정권의 탓이 크다.

 

자연재해로 인한 보건위생과 식량난의 악순환 반복

 

북한에서 지난 30여 년간 발생한 자연재난 중 수해를 유발하는 태풍, 호우, 홍수는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빈번하다. 태풍과 집중 호우로 인한 홍수는 7월과 8월에 집중된다. 이번에 수해가 난 평안북도는 지난 30년간 발생한 자연재난 중 호우와 홍수가 절반을 넘는다. 평안북도는 북한의 다른 지역에 비해 자연재난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지는 않다. 그러나 집중 호우로 홍수가 발생하면 피해 규모는 상당하다. 북한의 대기근을 초래한 것으로 알려진 1995년 대홍수뿐만 아니라 2010년, 2016년 평안북도에 쏟아진 집중 호우로 수많은 농지가 침수되고 산사태 발생으로 중국과 북한 모두 큰 피해를 본 바 있다. 북한의 산림 황폐화로 집중 호우가 내리면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하고 농경지와 건물 등 인프라에 막대한 피해를 미친다. 농경지 침수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식량난으로 이어져 주민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진다.

 

폭염 역시 2020년 이후 북한에서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특히 올 8월 들어 평양의 경우 낮 최고 33도 이상이 6일 이상 발생했다. 또한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밤을 일컫는 열대야 현상도 평양에서 올해 7월 25일부터 시작하였다. 8월 15일까지 4일 정도만 새벽 1~3시 사이 24도로 약간 내려갔을 뿐 대부분 시간대는 25도 이상을 보여주었다. 열대야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 평양 역시 이번 한반도 폭염에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경우 이번 폭염으로 온열 질환자의 수가 전년 대비 13.8% 증가하였다는 보도에 근거해 보면, 전력 시설이 열악한 북한은 우리보다 더 심각한 수준일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밖에 가뭄도 거의 매년 발생하여 농산물 수확에 영향을 미친다.

 

북한의 하수도 시스템은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과 UNICEF가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 전체에서 하수는 정화조와 하수관망으로 배출하는 경우가 약 54%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재래식 변소 또는 아무런 처리 없이 그냥 배출하고 있다. 도시와 달리 시골의 하수처리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홍수로 인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하수와 오폐수가 범람하면서 깨끗한 식수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수인성 및 식품 매개 전염병도 빠르게 확산되면서 주민의 보건위생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

<북한의 하수처리율(2017년 추정치)/출처=KEI 북한환경정보(Environmental Information of North Korea)>  

북한은 이번 홍수에 따른 전염병을 막기 위해 예방약을 즉시 공급하고 예방접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기간 북한 영유아에 대한 필수 예방백신 접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심각한 상황에서 전염병을 막기 위해 예방접종을 진행한다는 북한의 보도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핵미사일 개발에 국가 자원 집중, 자연재해 대응은 주먹구구식

 

반복되는 자연재난에 북한은 체계적인 예방과 대비보다는 임기응변식의 대응 및 복구에 급급하다. 물론 북한은 2014년 『재해방지 및 구조, 복구법』을 제정하고 이에 근거하여 ‘국가비상설재해방지대책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제도적 측면을 일부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은 최근 라디오방송을 통한 자연재난 대민 조기경보제를 도입하였지만, 주요 도심지역을 제외한 외지에 라디오와 휴대전화와 같은 통신망이 갖추어지지 않아 제때 전달이 되지 않고 있다.

 

이번 수해로 복구 장비가 당장 투입되어도 부족할 판에, 강제 동원을 통한 주먹구구식의 땜질식 복구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홍수 발생 일주일이 지나 해당 지역 피해복구를 위한 청년 등 30만 명을 동원하였다. 심지어 주민들의 구조활동에 나선 헬기는 추락하였다. 기체 노후화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자연재난 대응을 위해 관리 역량을 제고하고 사회기반시설을 정비하고 주민들의 열악한 위생보건과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체제 유지에 골몰하는 북한은 자연재난 대응을 위한 자원 투자는 여전히 뒷전이다. 김정은은 수십조 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진 핵무기 고도화와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면서 한국과 주변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심지어 8월 초 북한은 250대의 신형 전술 탄도미사일 발사대를 전방 부대에 인도하는 기념식을 하였다.


유럽연합(EU) 산하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INFORM ‘위기 지수(Risk Index)’에 따르면, 북한은 최악 10.0에서 4.1로 191개 국가 중에서 65번째로 위험한 국가이다. 반면 한국은 1.9로 166번째로 낮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북한의 강 범람의 노출 위험도는 각각 7.1과 6.4로 높은 편이다. 자연재난 위해요소와 노출 지수를 보면, 한국과 북한은 각각 3.6과 2.7로 북한이 낮다. 그러나 재난 대응 결여(Lack of Coping Capacity) 지수 중에서 거버넌스의 경우 남북한이 각각 3.0과 8.2로 북한이 매우 취약하다. 참고로 일본과 미국은 각각 2.5와 2.7이며, 아프가니스탄과 콩고는 8.0이다. 한국의 강 범람 등의 재난 노출 위험도가 북한보다 높지만, 우리의 재난 대응 거버넌스가 선진국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분단 이후 우리가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 민생개선 위해 한국과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제안에 호응해야

 

기후변화 등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자원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반복된 자연재해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주민들의 지속 가능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자원 배분과 당국의 체계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북한이 진정으로 소위 ‘인민대중에게 멸사복무’를 하고자 한다면 한국과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도움의 손길에 협조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이번 8·15 경축사에서 ‘남북 당국 간 대화협의체’를 제안하였다. 북한의 자연재해 대응을 위해서는 대규모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건설을 위한 상당수 자재와 운송수단 등은 대북 제재대상이다. 조속한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해서라도 북한은 비핵화와 더불어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행위를 중지하여 우리와 국제사회의 물질적 도움과 역량 강화 지원 등에 호응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북한 주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가 시행되고 자연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기반시설을 갖출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재단 사업 - 2024 교사 독일 통일연수]
24.07.28.(일) ~ 08.07.(수) 9박 11일

"화해참여로 이룬 독일 통일에서

한반도의 희망을 보다"


권여정(경북생활과학고 통합사회 교사)

2024년 교사 독일 통일 연수에 참가한 경험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였고, 통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통일 문제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독일의 통일 경험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 한반도 통일 문제를 이해하고 대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으며,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교훈들은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다가왔다. [2024 교사 독일 통일연수 관련 기사]


통일에 대한 현실적 접근의 필요성 인식

 

연수에 참가하기 전, 한반도 통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소 추상적이고 이상적이었다. 남북 간의 분단이 하루빨리 해소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통일 과정 및 그 이후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그러나 독일 통일 현장과 과정을 직접 방문·학습하면서, 단순히 통일을 하나의 이상적 목표로 삼기보다 통일 이후의 사회적, 경제적 통합과 관련된 복합적인 문제들을 준비하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느꼈다.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서독과 동독 간의 경제적 격차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했다. 서독은 동독과의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했으며, 서로 다른 정치적, 사회적 체제에서 살아온 동서독 사람들 간의 심리적,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통합 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이렇듯 독일이 통일 과정과 그 이후 겪었던 현실적인 문제들을 중요한 지침서로 삼아, 한반도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을지 예측하여 이에 대비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 통일의 바탕이 된 화해를 통한 통일철학

 

연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 중 하나는 독일의 ‘화해를 통한 통일’이라는 철학이었다. 독일은 통일 이전에도 서독과 동독 간의 교류와 협력을 꾸준히 이어왔고, 이는 결국 평화적 통일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화해의 과정이 없었다면 독일의 평화적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즉, 독일의 통일은 정치인 누군가의 말실수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준비와 단계적 접근을 통해 이룰 수 있었다. 동독과 서독 간의 경제적, 정치적 교류와 협력이 통일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동독과 서독 간의 긍정적인 신뢰 관계가 구축되어 독일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는 한반도 통일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단계적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하며, 남북 간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긍정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억에 남는 장소(1)

본홀머슈트라세 - 독일 통일의 순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곳

 

독일 통일의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통일을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는지, 그들이 얼마나 벅찼는지, 사진만으로도 실감할 수 있었다. 통일을 향한 그들의 발자취는 고스란히 바닥과 벽에 새겨졌고, 다시는 분단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본홀머슈트라세/사진=권여정 교사>


기억에 남는 장소(2)

브란덴브루크문과 베를린 장벽 -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의 상징으로

 

오랜 기간 동독과 서독을 분리하던 분단의 아픔과 비극을 보여주는 ‘분단의 상징’인 동시에, 통일 이후 무너진 장벽과 평화롭고 자유롭게 왕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통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통일의 상징’인 장소이다. 한반도에도 언젠가 DMZ와 같은 분단의 상징들이 통일의 상징으로 바뀔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되었다.

<브란덴브루크문과 베를린 장벽/사진=권여정 교사>


기억에 남는 장소(3)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 - 평화적 통일에 있어 시민의 역할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평화 혁명의 출발지로, 독일 통일 과정에서 시민들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는 장소이다. 여기서 시작된 월요 데모는 처음에는 몇 명 안되는 소수의 모임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거대한 평화 시위로 발전하여 독일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독일 통일은 정부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며 이룩한 결과물인 것이다. 이는 한반도 통일에 있어서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수반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사회과 교사로서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통일 문제 및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더욱 힘쓸 것을 다짐했다.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사진=권여정 교사>

맺음말

 

독일 분단 및 통일의 기록이 남아 있는 여러 장소를 방문하면서, 독일 통일의 과정과 그 이후의 과제를 직접 느끼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독일 통일 경험은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통일은 단순한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통합이 필요한 복잡한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통일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와 평화적 접근이 수반되어야 함을 깊이 깨달았다. 독일에서의 경험에서 얻은 다양한 교훈들을 적용하여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고, 남북 상황에 맞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통일의 방향을 모색하는 수업을 계획하여 의미 있는 통일 교육을 실시하고자 한다.

  [🌏코리아 판도라]

독일의 유엔사령부 합류를

둘러싼 동상이몽(同床異夢)

조동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미지=통일과나눔>


2024년 8월 2일 독일의 유엔사령부 합류를 둘러싸고 한미와 북한 간에 이견이 드러나고 있다. 먼저, 유엔사령부와 한국 정부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폴 러캐머라 유엔군 사령관은 “독일의 유엔사령부 합류가 국제안보협력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며, 한반도, 동북아시아,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함께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은 독일의 유엔사령부 가입을 환영하면서, “대한민국과 유엔사령부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북한 위협 공동대응을 위한 새로운 동반자를 얻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6.25 전쟁 당시 유엔군과 교전을 벌였던 북한은 유엔사령부를 “미국 주도의 다국적 침략기구”로 규정하면서 독일의 합류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고 정세를 격화시키는 행위”라고 평가했다. 이어 더하여 북한은 엄중해진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상황’을 핑계로 “자위적인 국방력 강화조치를 보다 더 철저하게 취해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6.25 전쟁의 산물인 유엔사령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남침에 대응하여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6월 27일 회원국이 “북한의 침략행위를 격퇴하고 이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하여” 필요한 지원을 한국에 제공하라고 권고하는 결의 83호를 통과시켰다. 더 나아가 1950년 7월 7일 결의 84호를 만들어 북한의 침략행위를 격퇴하기 위한 회원국의 활동을 유엔의 기치 아래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구체적으로 (1) 북한의 침략행위에 대응하기 위하여 병력 또는 다른 형태의 지원이 미국 주도의 통합된 사령부에 의하여 활용될 수 있도록 권고하면서, (2) 유엔군을 지휘할 사령관을 지명하라고 미국에 요청하고, (3) 유엔군이 파병국의 국기와 유엔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한국군도 유엔사령부에 합류하게 되었다.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의 적대행위가 지속된다는 조건 아래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으로 내정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에게 이양한다는 서한을 발송했다. 7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작전지휘권 이양에 동의하는 답장을 보냈다. 두 서한이 7월 25일 국제연합 사무총장을 경유하여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 전달됨으로써, 한국군의 유엔군 합류가 공식화되었다.

 

유엔사령부는 6.25 전쟁 당시 총 16개 파병국(미국,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에티오피아, 룩셈부르크)의 병력과 국군을 지휘했고, 5개 의료지원국(덴마크, 인도, 이란, 노르웨이, 스웨덴)이 파견한 의료지원단 활동과 32개 회원국의 지원 활동을 조율했다. 또한, 6.25 전쟁 중 정전을 위한 협상에 참여했다.


정전(停戰) 이후 유엔사령부의 두 가지 업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엔사령부는 두 가지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첫째, 정전협정의 명목상 당사자로 정전협정 이행을 담당했다. 즉, 군사정전위원회 구성을 통한 정전협정 이행, 판문점 내 공동경비구역을 경비하는 병력의 파견과 운영, 비무장지대에 있는 경계초소의 운영,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 출입 통제 등을 담당했다. 둘째, 한국군과 해외 파병국의 잔여 병력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했다. 정전 이후 미국은 대규모 병력을 유엔군의 일부로 한국에 잔류시켰고, 일부 해외 파병국도 의장대 병력, 연락장교, 참모를 남겼다. 유엔사령부는 주한미군을 비롯한 해외 파병국의 잔여 병력을 지휘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군도 지휘했다.

 

유엔사령부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었다. 먼저, 1957년 7월 1일 한국에 남은 미군 부대가 주한미군(United States Forces Korea)으로 재편되면서, 주한미군이 유엔사령부로부터 분리되었다. 또한,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의 창설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도 유엔사령부로부터 한미연합사령부로 이전되었다. 이로써 유엔사는 군사적 능력을 사실상 잃었고, 6.25 전쟁 중 파병국 또는 의료지원단 파견국의 연락장교와 참모, 소규모 의장대, 정전협정 관리에 필요한 소규모 병력만을 보유하게 되었다.

 

1990년대 북한과 중국이 정전협정을 무력화하면서 유엔사령부의 역할은 더 축소되었다. 1991년부터 북한은 군사정전위원회에 불참했고 1994년 중국 요원이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했다. 북한의 압력으로 1993년 체코가, 1995년 폴란드가 중립국 감시위원회에서 철수했다. 정전협정이 무력화되자, 유엔사령부는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의 출입 관할, 공동경비구역의 경비 등 축소된 업무만 담당하게 되었다.

 

유엔사령부의 이중성과 정파 간 이견

 

독일의 유엔사령부 합류로 한국의 대외정책을 둘러싼 정파 간 이견도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재인 행정부가 독일의 유엔사령부 합류를 유보시켰고 덴마크의 병력 파견을 반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와 상반되게, 윤석열 행정부는 6.25 전쟁 당시 전투병 또는 의료지원단을 한국에 보냈지만, 현재 유엔사령부에 병력을 파견하지 않는 국가를 유엔사령부의 회원국으로 추가하기 위한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야당과 현 정부 간 이견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유엔사령부를 둘러싼 국내 정파 간 이견은 유엔사령부의 이중성과 관련된다. 먼저 북한의 무력행위가 발생한다면, 현 유엔사령부는 한국의 우방국이 국제연합의 추가적 조치 없이 한국을 위하여 파병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통로가 될 수 있다. 북한의 침략행위가 정전협정의 위반으로 해석되면,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3호와 84호가 법적으로 유효하다고 해석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유엔사령부가 사용하는 일본 내 7개 기지가 지금도 유엔사령부의 관할 아래 있기 때문에, 유사시 일본 내 유엔기지를 통하여 한국을 도울 해외전력이 한국으로 쉽게 투사될 수 있다. 즉, 유엔사령부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한 보험으로 매력적이다.

 

반면, 유엔사령부는 한반도 위기관리와 협력에서 남북한의 당사자성을 침해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우호적인 상황에서는 비무장지대 출입과 관리를 담당하는 유엔사령부가 남북간 직접 대화 문제해결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남북한이 직접 접촉하여 위기를 돌파하려고 할 때도 유엔사령부가 거추장스러운 중간 과정이 될 수 있다. 또한, 유엔사령부의 구성국이 늘어나면, 한반도의 위기관리에 변수가 늘어나는 부정적 효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한국 내 두 정파는 유엔사령부의 이중성 중 한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 내 보수세력은 현시점에서 북한발 위협을 강조하면서, 외부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여 유사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유엔사령부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 반면, 한국 내 보수세력과 대립각을 세우는 정파는 한반도 문제 해결과정에서 한국과 북한의 협력 가능성에 고려하여 남북한의 당사자성에 초점을 맞춘다.


유엔사령부는 동북아판 NATO인가?

 

독일의 유엔사령부 합류를 둘러싼 의견차는 관련국의 속내를 드러낸다. 미국은 유엔사령부의 긍정적 효과가 인도·태평양으로까지 미칠 수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유엔사령부의 지리적 범위를 넓히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런 의혹으로 중국은 유엔사령부의 확대가 대중 포위망이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한국과 북한은 유엔사의 지리적 범위를 한반도 안에 국한시키면서도, 유엔사의 확대를 다르게 해석한다. 한국은 유엔사령부의 확대로 인하여 대북억지가 강화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유사시 한국을 도울 우군이 증가한다고 해석한다. 반면, 북한은 유엔사령부의 확대가 대북제재의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관련국의 의도를 둘러싼 추측과 우려를 잠시 내려놓고 유엔사령부의 출범과 변용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면, 현재 유엔사령부를 둘러싼 여러 의견은 유엔사령부의 특정 측면을 과장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유엔사령부가 “북한의 침략행위”를 격퇴하기 위한 활동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엔사령부가 대중(對中) 포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나 인도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과도한 해석이다. 한반도 유사시 실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할 능력이 없는 국가가 유엔사령부에 합류하는 상황을 대북 억지력의 강화로 해석하는 입장 역시 근거가 약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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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최근 폭우와 지뢰폭발 사고에도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비무장지대(DMZ) 일대 지뢰 및 방벽 설치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고 국방부가 8일 밝혔다.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 일대에 짓고 있는 장벽이 빈틈없이 한 줄로 이어지는 등 구조물 건설 작업이 크게 진척된 것으로 보인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3일 보도했다.
거리의 소리, 삶의 모습



친구와의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향하면서, 휴대폰으로 웹소설을 읽고 있었다. 이야기 속에 몰입해 휴대폰 스크롤을 내리던 그 순간, 갑작스레 낯선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울음소리였다. 멀리서 ‘흐윽’, ‘엉엉’ 하는 울음이 들려왔고,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그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이 머문 곳에는 한 여성이 건물 벽에 기대어 앉아 울고 있었다.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감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지하철 도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지만, 그 울음소리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울음소리를 듣는 일은 나에게 너무도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울음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주변의 다른 소리들이 더욱 또렷하게 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는 ‘띠링’ 소리, 에어컨이 돌아가는 윙윙거리는 소리, 누군가가 전화로 대화하는 목소리,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 소리, 교통카드를 찍는 ‘삑’ 소리까지. 일상 속에 늘 존재했지만 무심히 지나치던 소리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주의를 끌었다.

그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북한에서의 소리들을 떠올렸다. 북한에서는 어떤 소리들이 들렸던가? 그곳의 거리는 이곳과 너무도 달랐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 철이면, 거리마다 수업 대신에 강제로 선거홍보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이 외치는 ‘모두다 선거에로!’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한편, 철길 공사 현장에서는 무보수로 일하는 돌격대원들이 ‘하나, 둘’ 구령을 외치며 힘을 짜내고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김씨 일가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곳에서는 통치 국가의 목소리만이 가득했고, 정작 사람들의 삶의 소리는 억압되어 묻혀 있었다.

그러나 이곳, 한국은 전혀 다르다. 거리 곳곳에 사람들의 목소리와 삶의 소리가 배어 있다. 길을 걷다 보면 가게나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와 방송 소리가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온다. 인기 있는 최신곡이든, 오래된 추억의 노래든, 이곳에서는 사람들의 감정과 추억이 담긴 음악이 자유롭게 울려 퍼진다. 상점에서는 할인 행사를 알리는 방송이 들리고, 버스에서는 다음 정류장을 안내하는 친근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러한 소리들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들의 일상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며 나누는 대화, 식당에서 주문을 주고 받는 말들, 버스나 지하철에서 친구와 나누는 소소한 전화 통화가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그 모든 소리들은 이곳의 생동감을 보여주며,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곳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새삼 깨닫게 한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주변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에어컨 덕분에 시원한 버스 안에서는 사람들의 조용한 대화 소리,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 다음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이어졌다. 그 모든 소리들이 나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나는 이 소리들이 내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 소리들 속에서 나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표현하고 있었다.

동시에, 북한에 대한 생각도 떠오르며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개인의 목소리가 억눌려 있고, 삶의 소리 대신 체제의 소리만이 들려온다. 하지만 언젠가, 북한의 거리에서도 사람들의 삶이 자유롭게 울려 퍼질 날이 올 것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진정한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며, 억눌렸던 감정들이 해방될 때, 비로소 남과 북의 거리는 진정으로 하나가 될 것이다. 그날, 이 땅의 거리마다 울려 퍼질 소리는 단순한 함성이 아니라, 통일의 기쁨과 자유의 환희로 가득 찰 것이다.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를, 이 소리들이 남북을 잇는 다리가 되어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소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글=김나연 인턴기자

 동영상  [탈북민 이야기] 

자본주의도 일없습니다

"세계에 우리의

‘도라지 정과’ 알리고 싶어요"

“저는 잠을 자면서도 도라지 생각하면서 ‘어떻게 내 제품을 좀 더 쉽게 전달하지?’, ‘내일은 또 어떻게 영상을 찍지?’, ‘고객들에게 어떻게 더 보답하지?’ 24시간 그런 궁리를 해요. 도라지에 거의 미친 것 같아요. 하하!”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자윤 식품’은 수제 도라지정과, 과일 양갱, 도라지청 등의 식품을 제조·유통하는 회사다. 김량진 자윤 대표(31)는 도라지정과에 대해 “만드는 데만 열흘이 걸리는 고급 식품으로, 예전에는 궁중에서나 먹던 귀한 간식이었다”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강 식품”이라고 소개했다.  

<김량진 자윤 식품 대표가 사무실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김은송 인턴>


북한에 살던 시절 김 대표는 아침에 눈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종일 끼니 걱정만 했다고 한다. 9살 때부터 산으로 들로 미나리를 캐러 다녔고, 가을이면 이삭을 주우러 다녔다.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2007년, 15살이 되던 해에 김 대표는 어머니와 함께 고향인 회령을 떠났다. “강 건너 중국에 가면 끼니 걱정 없이 진짜 배부르게 쌀밥 먹을 수 있겠지”라는 희망에서였다. 그러나 중국 생활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탈북 브로커가 ‘너네는 중국어를 모르니까 바로 붙잡혀 나갈 거다’라고 위협했어요.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인신매매로 중국 한족에게 시집을 가게 됐죠. 당시 어렸던 저도 따라갔고요. 중국 생활은 철창 없는 감옥 같은 시간이었어요.”

어머니의 뒤를 따라 김 대표가 중국을 탈출해 한국에 온 것은 21살이던 2013년. 중국에서 생긴 뱃속 아이와 함께였다. 한국에서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김 대표는 식당 일, 주유소 아르바이트, 대리운전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다 아이와 함께 좀 더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고정된 수입에서 나아가 넉넉히 먹고 살 수있는 방법은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방송 출연도 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왔는데, 팬분들이 저를 응원해 주시고 도와주셨어요. 그분들께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 싶어 만든 게 도라지정과였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이걸로 사업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윤 식품은 수제 도라지정과, 도라지청 등 도라지를 활용한 식품을 직접 제조해 판매한다. 도라지를 끓이고 말려 맛깔나는 정과로 가공하는 과정은 열흘 정도 걸린다. 정성을 다해 만드는 제품인 만큼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다. 명절 같은 대목에는 1~2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구매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금의 안정된 사업체로 키우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제품이 좋으면 장마당에 들고 나가서 판매하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식품을 판매할 때 거쳐야 하는 허가 과정이 굉장히 많아요. 처음에는 그런 정보들을 하나하나 찾는 것도 쉽지 않았죠.” 수많은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도라지 전문가’가 됐다는 김대표는 “다른 제품 먹고 우리 거 먹어보면 확실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김 대표는 “자는 시간 외에는 하루종일 도라지 생각에 빠져있다”고 한다. 그의 꿈은 죽을 때까지 이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사업에 육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김 대표는 일하는 게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김 대표는 “남북 간 왕래가 자유로워진다면 제가 살았던 북한에서 ‘제1호 도라지 사업’을 하고 싶고, 또 전 세계에 저의 제품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글, 영상=김은송, 오경진, 김나연 인턴기자, 강경모 매니저

📚 신간 도서

『2024 북한인권보고서』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 | 2024.06. 


『2024 북한인권보고서』는 탈북민 508명의 진술 자료와 141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한 문서로, 북한 내 인권 침해 실태를 국내외에 알리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 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올 6월 발표된 보고서는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정책과 노력,정보 통제 및 강제북송과 같은 주요 이슈,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특별사안, 시민적·정치적 권리 침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침해, 그리고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인권 문제를 다룬다.

이 보고서의 장점은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내 인권 침해 사례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생생한 증언을 통해 밝혀진 정치범수용소의 열악한 생활 환경, 강제노동, 공개처형 등의 사례는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명확히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보고서는 국제인권규범에 따라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양한 인권 침해 사례를 명확히 분류하고 분석하는 데 유용하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북한의 인권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김정은 정권 하에서 강화된 정보 통제와 억압이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설명한 부분도 이 보고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이 보고서에는 몇 가지 한계도 눈에 띈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조사 과정에서 편향성과 신뢰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편중된 탈북 시기와 지역, 성별 등에 따른 사례는부분적 진실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내 이동 제한과 인터넷 발달 부족으로 인해 정보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또한, 인권 개념을 충분히이해하지 못한 상태의 한국 정착 초기 탈북민들이 증언할 때, 인권 침해의 심각성이 제대로 전달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필자 역시 2016년에 탈북한 이후 초기 정착 과정에서 수많은 설문조사와인터뷰에 참여했지만, 그 목적이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답변했던 경험이 있다.

이 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널리 알리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지속적
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와 행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이 보고서에 제시된문제의식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김나연 인턴기자  

『김정은 시대 북한의

벼랑 끝 전략』

임성재┃박영사┃2024.07.25.


북한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해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 연설에서 남북이 이제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며 ‘두 국가론’을,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반(反)통일’을 선언했다. 올해 들어서는 주기적으로 오물풍선을 보내면서 강경한 대남발언과 군사적 위협 등 두 갈래의 도발을 병행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김정은 시대 ‘벼랑 끝 전략’의 일환이며, 그 목적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데에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북한의 벼랑 끝 전략이 대체 무엇이고, 왜 이 전략을 선택했으며, 시기에 따라 어떻게 활용·변용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위기상황을 통해 상대방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것이 벼랑 끝 전략이며, 약소국 북한이 미국에 맞설 수 있는 비대칭 위협 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내부 결속의 목적도 있다. 벼랑 끝 전략은 냉전기에는 재래식 무기 도발을 통해 대미관계 및 협상에서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탈냉전기 들어서는 핵 개발을 카드로 체제 보장을 위해 이용돼왔다고 말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으로 북한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미국은 지속적으로 벼랑 끝 전략을 경험하며, 필요할 때는 똑같은 벼랑 끝 전략으로 북한에 대응하기도 했다. 1차 북핵위기 당시 미국이 전쟁 준비에 돌입하자 핵동결을 담보로 경수로 건설을 약속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성사된 것이 그 예다. 또한 벼랑 끝 전략이 결과적으로는 한미동맹의 결속을 이뤄내고 북한의 의도를 간파하는 수단이 되어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이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벼랑 끝 전략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수단이 핵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2017년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성공 선언은 지난 30년간의 미국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증명했다. 북미관계는 전쟁 직전까지의 단계로 치달았으나, 2018년 돌연 북한이 손을 내밀며 평화무드로 돌입했다. 그러나 이는 대북제재로 악화된 북한 내부 경제 개선을 위한 돌파구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로 비핵화 협상이 교착되자, 북한은 각종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며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벼랑 끝 전략을 또다시 실행하고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 유일사상체계, 대북제재, 그리고 중국의 대북 원조 등이 북한의 벼랑 끝 전략을 가능케 한 대내외적 요인이라고 소개한다. 나아가 ‘벼랑 끝에 선 벼랑 끝 전략’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북한이 협상력 효과를 거의 잃은 벼랑 끝 전략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책을 덮으며, 북한도 이제는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서서 고함치는 대신 모두의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오경진 인턴기자

발행처: 재단법인 통일과나눔
발행인: 이종원 | 편집인: 지해범
취재·편집: 강경모, 김나연, 김은송, 구예린, 변호연, 오경진, 이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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