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은 상품광고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살림살이가 상품의 생산과 소비로 연계되고, 기업과 가계가 그 역할을 분담하게 되면서, 광고는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광고가 얼마나 ‘상업성’을 띠고 있느냐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이행’과도 직결되어 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관찰되는 ‘사회주의 광고(socialist advertising)’는 원래 소비자에게 교육과 정보를 제공하고, 당과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지도’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만, 실질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경제개혁이 이루어지면서 광고의 담론, 내용, 형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와 같이,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변화가 상품광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북한경제를 이해하는 데도 그것이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본 연구는 북한상품에 대한 다양한 광고물(advertisement)들을 분석하여, 그 내용과 형식에서 관찰되는 특징을 발견하는 한편, 상품광고가 소비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북한의 상품광고는 ‘사회주의 광고’의 정의와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북한은 자본주의 광고를 ‘근로대중의 생활과 무관한 돈벌이의 수단’이라고 평가절하하며, ‘상품의 용도, 성질, 사용방법 등 대상의 특성과 실용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를 적극 이용’하는 것이 광고라고 정의한다. 물론, 북한의 상품광고도 비대인적(non-personal) 메시지의 전파, 상품 정보 제공, 확인 가능한 광고주(생산자)와 같이 광고로서의 요건을 부분적으로는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북한 상품광고의 본질적인 차이는 ‘상업성’이 약하고, 특히 TV광고의 경우 ‘정치적 선전’과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북한당국의 입장에서 강력한 비대인적 전파 수단인 매스 미디어는 당과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또한, 부족이 만연한 북한경제 현실을 감안할 때, 상품광고를 통해 적극적인 소비를 권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일상 소비재의 공급 증가라는 경제적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북한에서 상품광고의 내용과 형식이 획기적으로 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 상품광고의 내용과 형식은 전반적으로 경직적이고 정체되어 있지만, 특히 소비재 생산과 유통의 측면에서 북한경제의 부분적인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 식료가공품의 포장기술 발전과 브랜드화 진전은 포장지 자체를 클로즈업하는 화면 구성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제품 정보를 제공하는 효과를 갖는다. 또한, 당과 최고지도자의 정책적 관심사에 따라 특정 광고의 내용과 형식, 노출 빈도가 변화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봄향기 화장품’, ‘소나무 가방’과 같은 제품들은 상대적으로 상품광고의 내용과 형식이 다양한데, 여기에는 북한의 개선된 소비 수준이나 교육 정책에 대한 관심사를 환기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주민들도 상품광고를 통해 제품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본 연구에서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TV광고, 인쇄물광고, 제품 포장지 등을 통해 상품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브랜드를 인지하는 효과가 부분적으로 확인되었고, 광고에 노출된 동일한 상품을 구입한 경험도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들은 ‘상품광고가 소비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데 압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판매자 시장(seller’s market)의 지배, 만연한 부족(shortage)으로 인한 소비 결정의 낮은 재량권, 언론에 대한 불신, 광고의 미약한 판매 설득 메시지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북한주민들은 상당 부분 ‘인적 판매(personal selling)’ 방식에 의존하여 상품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소비재의 시장 거래가 지난 삼십여 년 동안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시장은 여전히 비공식적이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상품의 거래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놓여 있고, 적극적인 상품광고가 제한되어 있어 판매자와 구매자간 상품에 대한 정보 비대칭도 높은 수준이다. 이와 같은 시장의 비공식성, 불완전성은 북한시장에 ‘중개인’이라는 행위자를 등장하게 한다. ‘거간,’ ‘데꼬,’ ‘얼도’와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중개인은 위로부터의 검열과 통제를 회피하고, 상품에 대한 정보를 유통시키며 거래를 성사시킨다. 본 연구는 상품광고라는 수단을 통해 북한의 한 단면을 포착하고자 시도했다. 상품광고의 내용과 형식은 경직적이고 정체되어 있지만, 위로부터의 검열과 통제를 회피하여 상품을 판매하려는 개별 생산자의 유인, 낮은 재량권 속에서도 좋은 상품을 찾으려는 소비자의 노력을 관찰할 수 있었다. 상품광고는 그 사회의 경제적 여건과 매스 미디어의 발전, 정보유통 방식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통로이다. 대북제재 장기화에 따른 북한의 민생여건 악화가 우려되는 만큼, 상품광고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북한의 소비 실태를 파악하는 데 활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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